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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9시 서울 대학로 해물전집에서 전을 담아내 온 그릇을 잡다 손가락을 데었다. 스치듯 잡은 것 뿐인데 너무 쓰렸다. 그 시각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는 점포 18곳이 불타고 있었다. 거센 불길의 뜨거운 열기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화상을 입힌다. 화재 현장에서 화상을 입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화상을 치료하는 현장과 치료 후 화상흉터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찾았다... <기자말>

흉터 피할 수 없는 중증 화상

지난 2월 21일 오전 11시, 서울 한림대한강성심병원 화상전문센터를 찾았다. 1층 로비에서 한 화상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실내임에도 환자복 위에 입은 후드잠바를 목 위까지 채우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검붉은 피부색과 울퉁불퉁해진 흉터가 중증화상환자임을 알려줬다.

화상은 피부 손상정도에 따라 4단계가 있다. 1도 화상은 햇볕에 그을려 빨개지는 정도이고, 2도는 화상 부위에 물집이 잡히거나 극심한 화끈거림이 느껴지는 단계로 의사의 치료가 필요하다. 심한 경우 피부가 죽어 제 기능을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이를 3도, 전기나 화학물질에 의해 피부 안의 신경까지 죽어버리는 경우는 4도 화상이라 한다.

대개 한쪽 팔 전체나 한쪽 다리 전부에 깊은 2도 화상을 입은 정도면 중증화상환자로 분류한다. 이보다 심하게 얼굴이나 전신에 화상을 입은 경우도 당연히 중증화상환자다. 이들은 상처에 병균이 들어가 죽을 수도 있는 환자들이다. 피부 재생의 특성상 흉터도 피하기 어렵다.

피부는 겉살과 속살이 있는데, 깊은 화상을 입으면 속살까지 떨어져 나간다. 화상치료는 이 부위로 감염되는 것을 막고, 떨어져 나간 속살이 차도록 하는 과정이다. 새로 재생되는 속살은 과도하게 생기기도 하고, 뒤죽박죽 뒤엉킨 구조로 생성된다. 때문에 심한 화상환자의 경우, 피부가 울퉁불퉁해지고, 원래 피부색을 잃기도 한다.

중증화상환자들이 "생지옥"이라 말하는 화상치료실. 오른쪽 커튼 뒤로 의료진 5명이 전신화상 환자를 치료중이었다.
 중증화상환자들이 "생지옥"이라 말하는 화상치료실. 오른쪽 커튼 뒤로 의료진 5명이 전신화상 환자를 치료중이었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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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성 진통제로도 견디기 힘든 화상치료

화상병동으로 올라갔다. 병동에 있는 화상환자들은 붕대를 꽁꽁 감고 있었다. 팔과 얼굴만 (붕대를) 감은 사람, 다리만 감은 사람, 온 몸에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붕대 사이로 보이는 빨간 피부 위에는 노란 진물이 흐른 자국이 보였다.

화상병동 옆에는 화상치료실과 화상중환자실이 있었다. 화상치료실은 붕대를 풀고 화상부위를 소독하는 곳이다. 소독이 끝나면 상처부위에 연고를 바르고 다시 붕대를 감는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소독치료는 간단치 않다. 전신화상을 입은 한 환자를 치료하는데 5명의 의료진이 달라붙어 있었다.

한림대한강성심병원 화상외과 임해준 교수는 "소독치료의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상 환자에게 각종 마약성 진통제를 투약하지만 중독되지 않는다"며 "치료실에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 우는 환자도 있다"고 전했다. 중증화상환자들은 이 소독치료를 매일 받는다.

이렇게 중증화상환자들이 화상병동 입원해 치료받는 기간은 평균 3개월가량. 화상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입원 3주차에 첫 피부이식을 받고, 3~4회 수술을 받은 후 퇴원한다.

치료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고통

초기 입원치료가 끝나도 화상 치료는 계속된다. 상처를 입은 피부나 이식을 받은 피부가 자리를 잡기까지 대략 1~3년 걸린다. 이 동안 피부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는 '떡살'이 생기기도 하고, 피부 조직이 수축되고 굳는 '구축'이 생기기도 한다. 구축은 손가락을 못 움직이게 한다든지, 입을 닫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처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안정화된 피부라도 땀샘이 없고, 뻣뻣해져 화상 전 피부 같지는 않다.

결국 화상으로 인해 뻣뻣해진 피부는 신체적 '장애'가 된다. 2000년 겨울 목부터 가슴, 오른쪽 어깨 부근에 화상을 입었던 이창호씨는 지금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없다. 목과 가슴의 피부가 화상 상처로 굳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5년 전 오른쪽 겨드랑이의 굳은 피부를 쪼개주는 수술을 받기 전까지 오른팔을 머리 위로 들 수도 없었다. 피부가 굳으면서 오른쪽 팔과 가슴이 붙어서다. 수술 후에야 오른팔은 자유를 얻었다. 이처럼 화상환자들은 일상생활을 위해 수차례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양희택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2010년 "화상 장애인의 현실적인 문제와 그에 따른 욕구 조사" 발표에 따르면 화상 장애인 평균 의료비는 6997만 원 가량이다. 이중 환자가 부담해야할 금액은 평균 3234만 원에 달한다. 조사는 화상장애인 500명을 대상으로 화상치료시부터 조사 당시까지 측정한 값이다.

화상 장애인은 법적으로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화상으로 인해 신체적·사회적 장애를 겪는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창호씨는 20살 때 입술 밑 턱부터 가슴, 오른쪽 팔까지 화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매일 1시간씩 비비크림으로 흉터를 가리고 나서야 집밖으로 나온다.
 이창호씨는 20살 때 입술 밑 턱부터 가슴, 오른쪽 팔까지 화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매일 1시간씩 비비크림으로 흉터를 가리고 나서야 집밖으로 나온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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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흉터 때문에 경찰에 연행, 목욕탕도 못 가

움직임에 불편함을 주지 않는 화상 흔적도 삶에 '장애'가 된다. 얼굴, 손, 발 등 노출부위에 화상을 입은 사람은 화상흉터 때문에 차별을 당한다. 지난해 4월 화상을 입은 한 사람은 "억울하고 분하다"며 한국화상협회 상담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얼굴에 화상흉터가 있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그는 지하철역 앞에서 담배 피우는 여고생 3명을 쳐다봤다. 이후 여고생들이 자리를 뜨더니, 경찰이 지하철 시간표를 보던 자신을 찾아와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는 것이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방 안에서만 살아야 하나요?"라며 울분을 토했다.

얼굴 흉터로 면접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도 많다. 2살 때 오른쪽 몸 절반에 화상을 입은 김해용씨는 "면접 전에는 (흉터쯤은) 상관없다고 이야기 했다가 실제 면접장에선 '생각보다 상처가 크네'하면서 채용이 안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화상협회 김성결 사회복지사는 "경찰공무원 면접에 응시한 여성이 팔에 살짝 화상흉터가 있었는데 탈락한 적도 있다"며 "면접장에서 '그 팔로 경찰 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단다"고 전했다.

목욕탕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이창호씨는 친구와 목욕탕에 갔다가 쫓겨난 경험이 있다. 입구에서는 막지 않았지만 옷을 벗고 가슴부위 화상흉터를 보자 목욕탕 주인이 다가와 "(입장료 4천 원보다 많은) 만 원 줄테니 나가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차별로 대인기피증 시달려... 화상은 '사회적 장애'

사회적 인식이 이렇다보니 치료 후에도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화상 장애인들이 많다. 김해용씨는 "지금은 괜찮지만 20대에는 자살생각을 많이 했었다"고 말했다. 이창호씨도 "퇴원해서 1년간 방안에서만 있었다"며 "이후에도 사람들이 보는 게 싫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화상협회에서는 이런 '사회적 장애'(사회의 인식과 차별에 따라 장애를 겪는 것)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상흉터가 사실상 일상생활에 장애로 작용하지만, 법적 장애로 인정받지 못해 지원이 어려운 사각지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화상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흉터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해도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으면 장애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현행 장애인 복지법상 화상으로 인해 팔다리 사용이 불편해지거나 시각청각에 이상이 생기면 해당 신체장애를 인정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화장 장애인'은 따로 없다. 다만 얼굴 주변에 화상을 입은 경우 '안면 장애인'으로 인정한다. 흉터가 얼굴의 45%를 넘거나 코 혹은 귀가 1/3이상 녹아내렸을 때만 가능하다. 즉 얼굴 절반이 화상을 입으면 장애인이지만, 볼 한 쪽 전체에 화상을 입으면 장애인이 아니라는 식이다.

김성결 사회복지사는 "이 기준 때문에 흉터가 얼굴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 자로 재는 일까지 있다"며 "흉터의 크기가 조금 작다고 해서 사회적 차별도 조금 적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지적했다.

이어 김 사회복지사는 "몸이 불편해야만 장애인 것이 아니다"라며 "흉터를 괴물취급하는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는 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은 사회적 차별과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연간 화상환자 진료인원은 47만 3천 명, 화상협회에 가입한 화상 장애인은 전국 4만 명에 이른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한국화상협회 사무실 벽에 붙은 포스터. 한국화상협회는 2001년 창립돼 화상환자의 의료비지원과 사회적응을 돕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한국화상협회 사무실 벽에 붙은 포스터. 한국화상협회는 2001년 창립돼 화상환자의 의료비지원과 사회적응을 돕고 있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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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선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화상장애인, #한국화상협회, #한림대화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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