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난 11일 광주 도심에 멧돼지가 출몰해 한 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한 후 12발의 총을 맞고 사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함진규(시흥갑) 국회의원에 따르면 2009년 1895마리, 2010년 2069마리, 2011년 2307마리 등 총 6271마리의 야생동물이 로드킬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통계일뿐입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멧돼지, 고라니 등은 유해야생동물로 규정되어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 포획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동물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입니다. 원래 숲에서 살던 동물이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줄어들고, 일부 개체가 멸종위기종이 되면서 생태계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서식지 파괴지만, 사람들이 멧돼지의 먹이를 함부로 가져가는 일 또한 원인일 수 있습니다. 현재 국립공원에서는 멧돼지나 다람쥐 등 야생동물의 중요한 먹이가 되는 도토리 채취를 금지하고 있으나, 등산객들이 무심코 도토리를 주워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 기사는 멧돼지 입장에서 사람들의 무심한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작성했습니다... <기자말>

 멧돼지는 무서운 외모와는 달리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멧돼지는 무서운 외모와는 달리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 전경옥

저는 멧돼지예요. 험상궂게 생겼나요? 그런데 사실, 저는 겁이 많아요. 산에서 사람들이 저를 보고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저는 너무 겁이 나서 막 도망쳐 달려버리거든요. 그런데 워낙 생김새가 험상궂고 무게가 많이 나가고 쿵쿵거려서 그런지 사람들은 저를 괴물처럼 취급하더군요.

이제 곧 겨울이 와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음식은 든든하게 먹어둬야 하는데, 매년 먹을거리는 계속 줄어드는 거 같아요. 옆 동네에 사는 친구는 작년에 배가 고프다며 사람들이 사는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는 숲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내려간 지 하루 만에 그쪽에서 무서운 소리가 났고, 그 친구의 비명소리도 들었죠. 사람들은 우리 이빨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총이라고 하는데, 그 무기에 당한거죠.

저도 이년전쯤 인가에 내려가 고구마를 몰래 캐먹었는데, 그 집의 아줌마가 막 소리를 지르길래 무서워서 얼른 도망왔어요. 다시는 내려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서요. 사람들은 우리가 무섭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람이 더 무섭답니다. 그냥 우리가 싫으면 쫓아내면 되지 죽이거나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를 쫓을 방법은 많아요. 겁쟁이니까요. 우리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이런 우리 성격을 잘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많아서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고 하던데, 사실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가 살던 땅이 줄어들었고, 먹을거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잘 먹지 못해 건강이 나빠진 여자 멧돼지들이 새끼를 잘 낳을 수 있겠어요? 사람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니까 더 눈에 많이 띄는 거죠. 우리도 사람들과 가까이 살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잖아요. 살아야 할 공간도 다르고요. 우리가 너무 많아졌다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총을 들고 산으로 들어와 우리를 사냥하기 시작했어요. 아예 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총소리, 사람말소리, 다 우리에게는 공포의 소리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숲 근처에서 사람들이 길을 만든다고 큰 기계를 가져와 작업을 하는데, 소리가 참 커요. 예전에는 그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엄마가 제 동생을 임신했을 때 유산을 했더랬죠. 그래서 동생은 태어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더 큰 걱정은, 그 기계소리가 점점 자주 난다는 거죠. 사람들은 우리가 점점 많아질까봐 걱정인데, 그럴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거든요.

우리 길 빼앗지 마세요

 멀리서 본 동물이동통로, 멧돼지 전용통로인지 표지판이 재미있다.
 멀리서 본 동물이동통로, 멧돼지 전용통로인지 표지판이 재미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길이 많이 생기면 우린 늘 걱정이에요. 사람들이 모를 뿐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길이 따로 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길이 어디인지, 우리가 어디서 어디까지 다니는지 우리 행동반경같은 것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아요. 우리가 다니는 길 가운데로 그냥 사람들 길을 만들어버리니까 어디로 가야 할 지 난감할 때가 많아요.

우리도 먹이를 구해야 하고, 여자친구도 사귀어야 하는데, 길을 막아 버리면 어떻게 하나요. 사람들은 길을 만들어놓고 그냥 걸어만 다니지 안잖아요. 빠르고 무서운 기계를 타고 다니는데, 거기에 몸을 부딪히면 우리같은 큰 몸집을 가진 동물도 살아남지 못해요. 친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길을 건너다가 많이 죽곤 했죠. 물론 사람들도 다칠 거예요. 그 큰 기계가 아주 망가지더라고요. 그나마 우리는 빨리 뛸 수도 있지만, 가끔 그 길에는 작은 개구리들이 납작하게 눌려서 죽어있는 것을 보곤 해요. 개구리는 빨리 못 뛰니까 그냥 기계에 눌려 죽는거죠.

물론 우리가 사람들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사람들도 우리 말을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가 어느 길로 다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이 노력하면 우리가 어느 길로 다니는지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우리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안다면 지금처럼은 하지 않겠죠.

우리가 못생겨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매력을 줄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 영리하고 우리만의 세계가 있어요.

한번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크고 못생긴 동물이 왜 사람들 세상으로 내려올까. '에이 더럽고 못생겼어 이 괴물아' 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생각해 주세요. 우리도 기계에 몸이 부딪히면 아프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 무섭고 총에 맞으면 죽죠. 죽을 때는 누구나 아프고 괴로워요. 우리도 고통을 느낄 수 있어요.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언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거예요.

지금 저 멀리 보이는 길도, 사람들 집이 있는 곳도, 논도 밭도 원래 우리가 살던 숲을 깎아서 만든 것인데 사람들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죠. '여기서 우리가 살아도 될까?' 하고 말이죠. 그래도 괜찮았어요.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조금씩 서로 양보하면 되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욕심이 참 많아요. 하루 종일 쳐다봐도 쌩쌩 달리는 기계 하나 거의 안 보이는 그런 길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길은 왜 만든 거죠? 그 길을 만드느라고 예쁜 꽃도 작은 벌레도 풀숲도 다 사라지고 있는데 말이죠.

도토리, 우리의 식량이에요

 산책중에 다시 만난 멧돼지들. 녀석들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겼다.
 산에서 만난 멧돼지들. (자료사진)
ⓒ 최오균

예전에 엄마에게 들었는데 우리가 살던 숲에는 정말 많은 도토리가 있었대요. 숲이 울창하니까 열매도 많고, 벌레도 많았고. 숲이 점점 줄어드니까 먹을거리도 줄었지만, 요즘엔 사람들이 도토리를 많이 주워가서 더 먹을 게 없어요. 친구에게 '사람들도 먹을 것이 없어서 숲으로 들어오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래요.

우리가 사람들 사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은 배가 고파서인데, 사람들이 도토리를 가져가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니. 그럼 '도토리가 사람들 주식이냐'고 했더니 그것도 아니래요. 사람들은 도토리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우리는 아닌데. 우리는 그 도토리가 없다면 겨울 내내 굶어야하고 그러다 보면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내려갈지도 몰라요.

숲에 서서 하늘을 보고 또 나무와 풀들을 보면 참 아름다워요. 가만히 보면 우리는 서로 협력관계예요. 우리가 나무 열매를 먹고, 배설물이 나무를 키우고, 우리 몸에 붙어 씨앗이 여기저기 옮겨져서 싹을 틔우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정말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리고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면 지금부터라는 이점을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숲에 아주 많은 동물이 있고, 그 동물과 나무, 꽃, 벌레, 풀은 서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우리도 그렇고 고라니나 다람쥐 등 산에 사는 동물들은 그 도토리에 생명을 의지하고 있어요. 아주 간절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겨울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필요한 밥은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우리, 함께 살아가면 안 될까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상업적 동물원과 동물쇼 등 무분별한 동물이용산업에 반대하는 국내 최초의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전문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