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의 생존과 치유를 지지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2006년에 시작된 영화제입니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여성인권영화제 '탐정'(9월 20일~23일)을 통해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과 그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점을 나누고자 합니다. 국내외 영화들과 함께 자신의 삶과 인권을 찾아가는 용감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활짝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기자말>

 메리츠화재 올리브온라인자동차보험 '전용핫라인' 편 광고 중
ⓒ 메리츠화재

여자가 벽에 기대어 있다. 그 앞에서 남자는 여자의 눈을 보며 묻는다. "키스해도 돼?"라고. 그리고 배경음악과 함께 내레이션이 나온다.

"여자들은 묻는 걸 싫어한다."

리조트로 M.T를 간 사람들. 산행 중 허리를 다친 남자와 그를 돌보기 위해 남은 여자. 저녁에 남자는 여자의 방으로 급습해서 여자를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꼼짝 못하게 껴안는다. 반항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쫑알거리면 확 덮친다."

 sbs에서 방영된 <시크릿가든>
ⓒ sbs

첫 번째는 2010년 메리츠 화재의 <올리브 온라인 자동차보험-전용 핫라인 편> 광고이며 두 번째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한 장면이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바로 남성들은 스킨십을 할 때 여성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메리츠 화재 광고는 남성의 일방적인 스킨십과 여성의 묵인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심지어 스킨십을 할 때 여자에게 물어보면 '찌질한 남자'이고 그냥 밀어붙이는 것이 '남자답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런 문화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인 문화를 비롯해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미디어가 생산해 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이 중 특히 드라마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강제 키스, 기습 키스 등은 이러한 메시지의 확대 재생산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고, 드라마에 이어 기사까지

다음을 보자.

두 남자가 있다. 그 둘은 고교 동창이며 패션계에서 서로 라이벌이다. 남자 A는 남자 B의 약혼녀를 만난 자리에서 "솔직히 말해봐라. 나 보고 싶어서 온 거지?"라고 하며 강제로 키스한다. 또 남자 B도 남자 A가 마음에 둔 여자를 술에 취해 찾아가 다짜고짜 키스를 하고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기려고 한다.

위는 드라마 <패션왕>에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장면은 비단 몇몇 드라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신사의 품격>, <빅>, <해변의 연인들>, <아름다운 그대에게> 등 비교적 최근 드라마뿐만 아니라 <꽃보다 남자>, <역전의 여왕>, <아이리스> 등 과거 드라마에서도 빈번하게 찾아 볼 수 있으며 이제는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장치가 되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 품격의 한 장면.
 드라마 <신사의 품격> 품격의 한 장면.
ⓒ SBS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이렇듯 드라마에서 보이는 강제 키스, 기습키스 장면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들이 낭만적 사랑으로 포장되어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의 마음을 확인시켜 주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 그러한가? 내 주위의 남자가 어느 날 나를 벽에 밀어붙이고 힘으로 제압하면서 나에게 키스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백번 양보해서 이 남자에게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상황이 마냥 좋을까?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상황을 굉장히 공포스럽게 느낄 것이다. 또 그러한 행위를 한 남자에게 더 이상 호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장면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상대 여자의 반응이다. 기습 키스, 강제 키스를 당한 여자는 한결같이 '멍'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조금 나아가 따귀를 때리는 정도로 일을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 이 장면을 회상하며 부끄러워한다. 이는 여자들도 이러한 강제적인 스킨십을 좋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극히 남성적 시각이 담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따귀를 때리는 것을 상대방의 일방적인 행동이 자신에게 진심으로 폭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니라 순순히 키스를 당하면 너무 '쉬운' 여자로 보일지 모르기 때문에 자존심 차원에서 한 제스처로 포장해 버린다.

마지막으로 남성들의 이러한 일방적인 스킨십을 낭만적 사랑으로 확대 재생산 하는데 일조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다.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바로 그 다음 날 언론은 "너무 멋있는..", "남성미 물씬", "짜릿한", "여심을 뒤흔든" 등의 수식어로 미화시킨다. 이러한 기사들은 남성의 일방적인 스킨십을 남성다움으로, 그리고 사랑을 확인하는 필수 과정인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이렇듯 남성의 일방적인 스킨십과 여성의 묵인을 자연스럽고 낭만적 사랑으로 그리는 드라마, 그리고 그것을 미화시키는 언론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성문화를 왜곡시키고 성폭력을 유발하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남성의 느낌을 상대가 똑같이 느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며 오해다. 이는 폭력이며 이러한 폭력은 어떤 순간에서도 결코 정당화 되지 못한다. 이러한 폭력이 사랑으로 둔갑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성폭력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성폭력을 정당화 시켜주는 문화가 공고화 될 것이다. 이를 드라마 제작자들과 언론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입니다.


제6회 여성인권영화제는 9월 20일(목)부터 23일(일)까지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개최된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11개국 33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며, 영화예매는 여성인권영화제 홈페이지 www.fiwom.org 에서 상영시간 확인 후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면 된다. 각 현장매표소 운영시간 내 예매자 이름, 휴대폰 번호 확인 후 입장권을 수령할 수 있다. 현장예매도 해당 상영 5분 전까지 입장권 발권이 가능하다.



태그:#여성인권영화제, #여성의전화
댓글

한국여성의전화는 폭력 없는 세상,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1983년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이주여성문제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으로부터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