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숨은 야당표'가 10~15% 씩 나왔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부터 '숨은 여당표'가 새누리당을 살린 지난 총선까지, 선거만 끝나면 결과와는 크게 달랐던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에 대해 '돈만 아깝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올 12월 대통령선거에서는 어떨까. 여론조사와 출구조사를 믿어도 될까.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 업무를 거쳐 현재는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는 한귀영 박사는 "대선이나 지방선거 광역단위에 비해 총선 조사는 정말 어렵다"며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인 대선과 달리 총선은 선거구가 작아서 누가 어떤 후보가 말실수를 한다든지 하는 작은 사건에 의해서도 당락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여론의 변화를 잡아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한국정치조사협회 주관으로 열린 '19대 총선 여론조사의 한계 및 가능성 진단'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 박사는  총선 여론조사의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그동안 부정확한 여론조사의 원인으로 지적돼 온 요인들의 근거를 제시했다.

"비등재가구에 자영업자, 화이트칼라 등 여론주도층 많아"

먼저, 많이 지적돼 온 KT 등재 집 전화에 의존한 조사가 여론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한 박사는 "실제 인천의 한 지역구에 대한 선거 여론조사의 경우, KT 등재가구와 비등재가구의 인구특성이 달랐다"며 "비등재가구에서 화이트칼라, 자영업 등 여론주도적 성격이 강한 층의 비중이 높았고, 학력도 훨씬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 박사가 제시한 '인천의 한 지역구' 수치에선 비등재가구의 자영업자가 19.4%, 화이트칼라가 26.5%로 등재가구의 자영업자 15.8%, 화이트칼라 21.5% 보다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직업간 여론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KT 등재 집전화와 비등재 집전화 보유 가구간 여론 분포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학력분포에서도 등재가구는 대학대학 이상이 48.0%인데 비등재가구는 57.8%로 더 높았다. 한 박사는 "집전화 없이 손전화만으로 생활하는 층, 외부 활동이 많아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적은 40대 이하 젊은 층이 과거와 같은 KT 등재전화 중심의 여론조사 방식에선 체계적으로 누락될 수 있다"며 "지금 정치 변화의 핵은 바로 이 층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선 땐 RDD 전화조사+휴대폰 패널조사 가장 정확"

한 박사는 또 "대부분의 여론조사들이 집전화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평일 조사의 경우 직장인층이 체계적으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며 "주말 조사에 비해 평일 조사에서는 자영업층, 주부층, 무직자들이 과대 표집되고, 화이트칼라층이 과소표집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총선 여론조사에선 주말에 실시하는 RDD(Random Digit Dialing : 무작위 번호로 전화걸기) 전화조사가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중앙일보-엠브레인'이 RDD 전화조사와 휴대폰 패널 조사 결과를 혼합했던 방식이 대안일까? 한 박사는 "대선이나 광역단위의 선거에선 RDD전화조사+휴대폰 조사가 가장 정확하지만 총선에선 적용하기 어렵다"며 "여론조사 기관에서 보유한 전체 패널이 30만 명 정도라고 할 때, 이를 지역 단위로 쪼개면 한 지역의 패널이 2000~3000명 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이들 위주로 수십번 조사를 하니 갈수록 조사가 흔들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선거 당일에 조사되는 출구조사도 이번 총선 뒤 '60억원이 아깝다'는 뭇매를 맞았지만, 한 박사는 "총선 출구조사는 예측조사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며 "당락이 몇 백표, 몇 천 표에서 결정되는 경합지역이 많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이번 총선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중 1위·2위 순위가 틀린 곳은 17곳으로 많지 않다"면서도 "문제는 틀린 곳 17곳이 모두 민주통합당 우세로 예측됐지만, 실제 결과는 새누리당 우세로 일정한 방향성이 있었다. 출구조사 과정에서 체계적인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보이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선거일 직전 사고도 예측하라는 건가?"..."출구조사는 절반의 성공"

언론사에서 여론조사 업무를 맡고 있는 전문가들도 이날 토론자로 참석해 '총선 여론조사·출구조사는 어렵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신창운 중앙일보 여론조사 전문기자는 "왜 선거만 끝나면 이런 세미나를 해야하는가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신 기자는 "김용민 막말 사건은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선거일 일주일 안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서울 노원갑을 선거일 10일 전에 여론조사를 했다면 그 결과를 맞출 수 없는 것"이라며 "17대 총선 때 정동영 의원의 노인폄하발언도,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파기도 선거일 직전에 나온 것인데, 사람들은 '여론조사가 못 맞췄다'고 얘기한다"고 푸념했다

신 기자는 중앙일보가 'RDD집전화 + 휴대폰 패널' 조사방식을 쓰고 있는데 대해 "현 단계에선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기자는 "현재 집 전화를 7, 휴대전화를 3의 비율로 반영하고 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서울지역은 5 대 5, 부산지역은 8 대 2 정도로 반영 비율을 변화시키는 등 정확한 조사를 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경보 SBS 여론조사 전문기자는 "60억원이 든 총선 출구조사가 실패했다고 하는데 내 평가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며 "비례대표 득표율은 거의 완벽하게 맞혔다"고 말했다.

현 기자는 "246개 지역구 중 1·2위 순위를 틀린 게 17개인데, 1~2%p 차이가 날 것으로 예측된 곳은 민주당이 당선될 것으로 봤다"며 "수도권 지역의 경우 새누리당이 마이너스 2%p 정도 과소예측이 됐고, 민주당은 1.9%p 플러스 예측이 됐다"고 밝혔다. 여당을 과대예측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소예측을 한 탓에 예측치와 결과의 차이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하청공장"..."갑 언론사, 가격 후려치기"

다른 토론자들이 여론조사 방법과 분석 기술에 초점을 뒀다면 여론조사 회사인 리서치플러스 대표를 맡고 있는 임상렬 협회장은 여론조사가 기획단계에서부터 정확도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지적했다.

임 대표는 "여론조사를 실행하는 직원은 '실시 전에 고객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하고, 의뢰하는 고객은 '무슨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 시키는 대로 빨리 싸게 해서 달라'는 식으로 계속 여론조사가 돼 왔다"며 "예전부터 여론조사기관을 '공장'이라고 불러왔는데 지금은 거의 하청공장 비슷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기관이 여론조사 의뢰자에 유리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얘기다.

한귀영 박사도 "특히 언론사와 같이 하는 여론조사에선 언론이 갑이고 조사기관이 을"이라며 "기사에 여론조사 기관 이름이 들어가는 게 광고효과라며 비용도 후려치고, 여론조사기관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게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태그:#여론조사, #하청공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