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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우리는 돈에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돈이 실제로는 얼마나 독특하고 이상한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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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날, 허리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통증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식은땀을 비질비질 흘릴 만큼 커다란 고통이 되었습니다. 속도 메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심하게 한 것도 아니고, 잠자리가 불편했던 것도 아니니 갑자기 허리가 아픈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허리가 아플 이유를 생각해봤지만 딱히 잡히는 게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려 나서다가는 옆구리를 움켜쥔 채 웅크리고 주저앉을 만큼 아팠습니다. 이 정도의 통증이라면 허리 부분 어딘가는 심하게 절단 났을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 자주 다녀 내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동네 병원으로 가 증상을 말하니 요로결석 때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의사의 진단은 정확했습니다. 주사 한 방을 맞으니 하늘이 노래지도록 아팠던 허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합니다. 요로에 있던 결석은 며칠 후 초음파로 파쇄해 배출시켰습니다.

병원에 가기까지는 허리가 아프다는 통증을 절감하고 있었지만 허리가 왜 아픈지, 허리가 아픈 근본적 이유는 알지를 못했습니다. 만약 의사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했다면, 다시 말해 통증과 속 메슥거림이라는 증상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요로결석 때문이라는 것을 단박에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면 증상으로 나타나는 고통을 언제까지나 괴로워하며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나타나는 증상은 있는데 그 증상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아주 생소할 때가 많습니다. 괴롭기는 괴로운데 왜 괴로운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허리의 통증이 요로결석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단박에 치료할 수 있었듯이 괴로움의 원인을 정확하게 안다면 그 괴로움 또한 단박에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괴롭게 하는 '고'를 제대로 알려면...

인생은 고해(苦海)하고도 하고, 고해를 이루는 '고(괴로움)'의 종류를 여덟 가지로 말해 인생팔고(人生八苦)라고도 합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굴레,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생·노·병·사의 고에,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과도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갖고 싶은 것이 있으나 갖지 못하는데서 오는 구불득고(求不得苦),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져야 하는 애별이고(愛別離苦), 5기관, 눈·귀·코·입·몸이 좋은 것만을 원하는 데서 오는 오온성고(五蘊盛苦), 이렇게 8가지 고통을 팔고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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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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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덟 가지의 고통은 대부분 다섯 가지 욕심, 색욕(色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에서 기인합니다.

팔고(八苦), 괴롭다는 증상은 누구나 잘 자각하고 있고 있습니다. 괴롭다는 증상이 오욕과 칠정에서 기인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오욕이 무엇인지, 오욕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분명하게 이해시키고 있는 문헌은 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돈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돈이 무엇이며 돈이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지, 즉 돈의 실체를 명료하게 설명하는 문헌도 흔하지 않습니다.

섹스라는 말이 좀 거슬린다면 부부관계라고 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는 물론 신라의 붓다로 칭송되고 있는 원효, 근대 한국불교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성철 스님이나 청담 스님도 가진바 있는 부부관계가 출가 수행자들에게는 왜 금기시 되는지에 대한 이유역시 똑 떨어지게 설명하고 있는 문헌도 흔치 않습니다.   

고(苦)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유하려면 팔고의 원인이 되는 오욕의 실체를 먼저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고, 그것들의 역할과 기능도 이해해야만 될 것입니다.

데이비드 로이(David R. Loy)가 쓰고, 허우성이 옮기고, 불광출판사가 펴낸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는 오욕(五慾)의 근원인 돈, 섹스, 명예(권력), 재물욕에 대한 정의와 역할, 기능 그리고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돈'

나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부자가 계속 돈을 원하는 이유는?
왜 우리는 명성에 매달리는가
언어로부터의 자유란 무엇인가
섹스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붓다라면 어떻게 했을까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를 구성하고 있는 차례의 일부입니다.

돈이란 무엇인가? 불교는 우리가 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돈을 사용하고 있으니 돈이 무엇인지 분명 기본은 알고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우리는 돈에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돈이 실제로는 얼마나 독특하고 이상한지 알지 못한다. - 본문 48쪽

저자는 차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돈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명성과 시간, 언어와 업에 이어 섹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왜 성과 관련한 계율이 그렇게 엄격할까?'이다. 불교는 대체로 아주 실용주의적 종교(혹은 영적인 길 또는 영성)이다. 반드시 복종해야 할 큰 신도 작은 신도 없으며, 붓다 스스로 자신을 신으로 내세우지도 않았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고 하는 대신에, 우리의 불선한 의도와 행위가 나쁜 업을 쌓는다고 했다. 그 결과 더 많은 고통이 오긴 한다. 그런데 성적 행위가 하나의 위반이라면 그것은 보통 희생자 없는 범죄다. - 본문 110쪽  

우리는 1960년대까지 믿을 만한 피임도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그리고 불교가 낙태와 유아살해를 금지했으므로 섹스는 곧 아기를 낳고 돌보고 양육하는 일을 의미했다. - 본문 115쪽

섹스는 생리적 욕망이다. 우리가 성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기가 우리를 이용한다. 바로 그 때문에 낭만적 사랑과 성적인 충족에 대한 신화에는 우리를 기만하는 뭔가가 있다. 섹스는 자연의 길이고 결혼은 종을 재생산하기 위한 사회의 길이다. 섹스를 하는 당사자들의 진정한 행복, 다시 말해 고의 그침은 섹스와 관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거의 없다. - 본문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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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고해이며 팔고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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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수행자들에게 섹스가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돌봐야 할 가족이 딸림으로 발생하는 부작용(부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즉에 믿을 만한 피임도구가 존재했다면 섹스를 엄금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해결됐을 수도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설명입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생태계파괴, 유전자 변형식품, 교육, 불멸이 되어버린 대기업, 언론매체가 발생시키고 있는 폐해, 제도화 된 탐욕, 제도화 된 악의, 제도화 된 망상, 집단적인 전쟁 중독 등,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거나 고민하고 있는 사회적 실상과 병리를 날카롭게 진단하며 이에서 유발되는 고를 처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근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붓다가 이해한 것이 고(苦)이고, 고의 성격, 고의 원인, 고의 원인을 끝내는 방법이듯이 저자가 제시하는 것 역시 고(苦)이고, 고의 성격이며, 고의 원인, 고의 원인을 끝내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출가승단이 경청해야 할 말

한국의 출가승단이 로이에게서 경청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깨달음은 사회적 깨달음으로 보완되기 전제 불완전한 것으로 남게 될 것, 사회적 고통에 관심을 기울일 때 승단이 빠져 있는 구복 불교와 같은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의 출가자들은 재가자와 함께 할 일이 많아 보인다. - 본문 236쪽

경희대 철학과 허우성 교수가 책 말미에 '역자의 말'로 남겨놓은 글의 일부입니다.

역자인 허우성 교수가 한국의 출가 수행자들이 로이에게서 경청해야 할 말로 정리하고 있는 '사회적 고통에 대한 관심'이야 말로 출가 수행자들이 한국 사회와 중생 개개인이 안고 있는 고(苦)를 덜어 줄 수 있는 원인 분석이며, 고의 원인을 끝내는 방법이 아닐까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