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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 당선되고 나서 집사람이라든가... '혹시 자리 어떻게 되나'(걱정하면서) 지금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300여 직원들이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희 직원들이 (전임) 시장님을 보고 일한 게 아니다. 한강에 찾아오시는 6000만 명의 시민들을 보고 열심히 일해 왔다. 시장님의 생각을 조속히 빨리 (정리)해주셔야지 저희도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 14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강당에서 열린 '서울시 직원과의 원탁회의'. 박원순 서울시장을 직접 만난 한강사업본부의 한 직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불안감을 나타냈다. 박 시장은 지난 10일 2012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한강르네상스 등 오 전 시장이 추진했던 대규모 전시성 토건 사업예산을 미반영하거나 삭감했다. 한강사업본부는 한강르네상스사업의 주무부서다.  

 

이에 박 시장은 "본부장이 대변인으로 왔잖아요"라고 웃으면서 말한 뒤, "한강이 연간 60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연인원이 다녀오는 최고의 공원인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과거의 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공원으로서 시민들의 휴식처로서 한강이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박 시장은 "물론 부서 개편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당직원을 안심(?) 시켰다.

 

이날 직원과의 대화에 참석한 서울시 직원 250여명은 대부분 5급 이하 공무원들. 2시간이 넘는 대화시간 동안 직원들은 신임 시장에게 자신들의 요구사항이나 고민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했다. 

 

"시장 100% 전능한 사람 아냐...말한다고 무조건 따르지 말라"

 

 

앞서 박 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시장이 말한다고 무조건 따르지 말라, 시장이 100% 전능한 사람입니까?"라고 물은 뒤,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쌓아왔던 경험과 지혜가 있는데, 제가 좋은 이상적인 안을 내놔도 현장에서 안 될 수 있다, 저도 쉽게 굽히지 않겠지만 몇 번 토론하는 과정에서 상식적으로 지혜로운 결정이 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저는 여러분들이 기꺼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공무원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박 시장은 '수평적인 관계'를 거듭 강조했다. 박 시장은 "영혼 없는 공무원 이야기가 들리지만, 시장이 시키는 것만 하다보면 그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늘 스스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신뢰' 역시 박 시장이 힘주어 말한 덕목이다. "언론에서 이상하게 보도하는 것도 있어서 도대체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운을 뗀 박 시장은 "(언론이) 저보고 협찬인생이라고 했다, 대기업도 안철수씨도 이번에는 2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협찬해줬다"면서 "왜 많은 시민, 시업들이 저를 협찬해줬겠나, 저는 신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나의 돈과 재능과 시간을 투자해주면 제대로 잘 쓸 것이다라는 신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저는 직원 여러분의 동의와 협력을 얻어내는 데 신뢰가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간부들 인성교육 시켜 달라", "일 너무 많다" 고민 쏟아져  

 

 

신임시장과의 첫 만남이었지만 직원들은 업무상의 고충부터 육아문제까지 그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장애인 복지과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함께 행복한 서울을 고민하고 파트너로서 직원들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하다"면서 "파트너로서 인정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여기에 역행하는 중간간부들이 있다, 과장이 될 수도 있고 본부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어머, 어머"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서류를 던져서 모멸감을 주는 방법, 언어순화가 안 돼서 심한 '쌍말'을 하는 관리자, 창피한 말이지만 점심저녁을 (법인)카드로 먹는 관리자, 더 심한 경우 업무추진비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간부도 있다. 이렇게 인성교육 안 된 간부들의 인성교육을 건의 드리겠다."

 

해당 직원의 발언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뜨거운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박 시장 역시 "그런 어려운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면서 "그런 분들이 계셨다고 하더라도 이 순간부터는 없을 것이다, 제가 어떤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여러분께서 이야기하고 있는 중간간부들도 알 것이다"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이 살다보면 옛날에 가졌던 생각이나 습관이 바뀌기도 하지 않나. 저는 여성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완고한 경상도 시골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좀 뭐랄까. 잘못된 생각을 가졌다. '남편은 하늘'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이 여성단체들과 활동하면서 생각을 많이 교정했다. 새로운 시대가 왔고 새로운 시장이 수평적 관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아마 그런 말씀하신 그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변화가 없다면 다음 모임에서 말해 달라."

 

"일이 너무 많다"고 피로감을 호소하는 직원도 있었다. 기획조정실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격무에 시달려서 12시까지 일하고 취임이후에 주말에 쉬어본 적이 없다"면서 "쉴 수 있어야 피로가 쌓이지 않는데 휴가 쓰는 걸 눈치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박 시장은 "일을 많이 했으면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실제로 서울시청 공무원들이 얼마나 쉬는지 지표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박 시장은 "휴가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얼마나 쓰는지, 안 쓴 부서가 있는지 확인 한 후 안 쓴 부서는 불이익을 주겠다"면서 "제가 1998년에 미국을 방문했는데 감사원 직원 10% 이상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더라, 그 전날 10시, 12시까지 일 하고 그 다음 날 똑같이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절대 비밀 보장' 직원-시장 '핫라인' 11월 중 오픈

 

 

이날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인사' 문제. 서울시 본청과 사업소 사이의 승진의 형평성을 맞춰달라는 의견도 있었고, '자녀가 4명인 직원은 특별 승진시켜 줄 생각은 없느냐'는 요구도 나왔다.

 

맑은 환경본부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서울시에서 근무한 지 만 20년이 지났는데 서울시 직원 대부분은 초보"라면서 "가장 큰 이유는 4월과 10월 정기인사가 있는데 인사철마다 각 과와 국마다 몇 자리 안 되는 승진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업무 호불호와 관계없이 인사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서울시 인사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 직원은 "인사도 역발상이 필요하다"면서 "지금의 과 단위, 국 단위 근무 평정이 아니라 서울시 전체를 놓고 누구에게나 시간이 되면 승진 기회를 주되 역량평가를 통해 승진여부를 결정한다면 전문가를 많이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박 시장은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공감을 나타냈다.

 

박 시장은 "오세훈 서울시장 있을 때 4급 이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이 있는데 요코하마 사례를 말한 적이 있다, 도시 디자인 실장이 한 자리에 37년인가 있더라"면서 "여러 분야를 돌아보면서 행정의 경험을 높이는 분도 있겠지만 동시에 어느 한 분야에 깊이 천착해서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거듭나는 투트랙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날 원탁회의는 직원들과 박 시장이 노사연의 <만남>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박 시장은 "절대 비밀이 보장된다는 전제 하에 직원과 시장 사이의 '핫라인'을 11월 중에 오픈하겠다"고 밝혔다.


태그:#박원순, #서울시장, #원탁회의,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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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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