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열네 번째로 평화비행기를 타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2차 희망버스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장기 농성하고 있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아래로 전국에서 모여들 때였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비싼 비행기 삯을 마다않고 영도로 가는 대표단을 꾸렸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도 위로하고, '소금꽃' 김진숙 지도위원도 응원하고, 간 김에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도 알리자는 취지였다.

땡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손은 분주했지만 행복한 얼굴이었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그렇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특히 절망 앞에 선 사람들은 또 다른 절망 앞에 선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못한다. 그 저린 마음, 그 설운 마음 누구보다 깊게 헤아리기 때문이다. 앙증맞은 홍보물 몇 개 만들고 흐뭇하게 바라보던 한 주민이 얘기했다.

"아, 우리 강정에도 평화비행기랑 평화배타고 사람들이 찾아와주면 참 좋겠다."

부러워 내뱉은 짧은 한마디였다. 시기심 전혀 없는 순박한 소망이었다. 그 철없는 말 한마디가 순식간에 무거운 침묵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어떤 이는 말없이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섬이란 곳이 그렇다. 스스로 먼저 고립을 자처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섬에서 싸운다는 것이 그렇다. 혹여 소망이 있어도 기대를 크게 하면 안 된다. 끝까지 남아 싸울 이들은 결국 자신들 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슬픈 회상도 이젠 옛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저 부럽기만 하던 소망이 현실로 이뤄져 가고 있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평화배를 타고, 평화비행기를 타고 강정마을을 응원하러 오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육지에서 경찰이 추가로 투입되었다고 해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대규모 공권력이 강정마을을 완전봉쇄했다는 뉴스를 듣고서도 걸음을 거두지 않았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장의 말처럼 "조중동이 외부에서 온 강정마을 종북 좌파들 빨리 척결하고 해군기지 건설하라고 사설을 쓸 정도로 강정은 이제 온 국민의 '평화꽃"이 되었다.

강정마을로 신혼여행을 온 뉴스게릴라 이선미씨 부부.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마련한 잔치에 참석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강정마을로 신혼여행을 온 뉴스게릴라 이선미씨 부부.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마련한 잔치에 참석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 강정마을로 신혼여행 온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이선미씨 부부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간만에 사이렌 소리 대신 웃음소리 퍼진다. 사람들은 여러 색깔 고깔모자를 나눠 쓰고 분주히 움직인다. 볕 가리개 천막을 치고, 화관을 만들고, 이젠 강정의 상징이 된 붉은발 말똥게가 그려진 옷을 선물용으로 포장한다. 참, 어디선가 폭죽도 들어온다.

길이 1.2km가 넘는 너럭바위 구럼비에 2인용 텐트 한 동을 치는 사람들, 얼굴엔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다시 보니 텐트 지붕엔 풍선 몇 개가 아롱다롱 걸려 있다. 지독한 8월 한여름 가시광선이 한풀 죽은 오후 다섯 시의 하늘은 그윽하게 저 아래의 풍경을 보고 있다.

행복한 소동의 이유를 미처 알지 못한 주민들은 "무사(왜라는 뜻의 제주도말)? 무사?"하며 볕 가리개 천막 아래로 모여든다. 한 자원활동가가 마이크를 잡는다.

"그럼 지금부터 강정마을로 신혼여행을 오신 박중구(30)·이선미(32) 부부 환영 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참새 지저귀는 소리처럼 앙증맞은 박수 소리가 터지고, 멀리 강원도 춘천에서 온 신혼부부는 호박꽃처럼 환하게 웃는다. 모든 인연이 그렇듯 두 사람은 알고지낸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최근에서야 급격하게 친해져' 결혼하게 되었다고.

신랑 중구씨는 화천에서 농사를 짓고, 신부 선미씨는 춘천 꾸러기어린이도서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신부 선미씨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강원도 취재를 부탁받을 정도로 열성적인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다.

"작년에도 올레길을 걸으면서 이런 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다들 인정하는 것처럼 올레 코스 중에서도 가장 자연환경이 좋고 인기가 많은 코스가 바로 여기 7코스잖아요. 또 주민들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사업이구요. 절차상 하자도 크다고 들었어요.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하지 말고 주민들과 대화로 잘 풀었으면 좋겠어요."

중구씨는 주민들의 환영잔치에 놀란 듯 연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싱글벙글이다.

"이렇게 환영잔치와 구럼비 바위에서 신혼 밤 보낼 텐트까지 쳐주실 줄 몰랐어요. 그냥 시간 맞춰 바닷가로 내려와 보라고 해서 왔는데…. 너무 고맙고 재밌어요."

강정마을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김태원·한혜진 부부가 축하사절단을 자처한다. 김씨는 축가로 <사랑이 깊으면>을 불러주었다. 동네에서 손 솜씨 좋기로 소문난 한씨는 예쁜 화관을 만들어 새신부에게 직접 씌워주었다. 선미씨는 감격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인생을 살면서 귀하고 색다른 경험을 했어요. 함께 축해주신 강정마을 주민 분들의 마음과 평생 함께 살아갈 거예요."

결혼식 전날 신부 마사지도 못 받고 신랑과 함께 배추 1만 포기를 심느라 밭에서 일했다는 선미씨. 그는 "신랑이 하는 농사와 도시에서의 활동을 연계하는 도시농업네트워크 운동을 해보는 것이 꿈"이란다.

중구씨는 경기도 파주가 고향이지만 화천에 귀농한 지 벌써 7년 된 어엿한 강원도 사람. 지금은 쌀과 옥수수, 배추를 주로 경작하지만 선미씨가 그리는 비전에 언제든 함께 할 뜻이 있다.

"우직한 그 사랑 오래 갈 것 같아서" 중구씨를 선택했다는 선미씨, "푸근하고 성격이 좋아서" 선미씨와 결혼했다는 중구씨. 서로 바라보는 얼굴에 미소 그치질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모두 첫사랑이 아니었던가.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 장석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중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 신성훈씨도 강정마을을 찾았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 신성훈씨도 강정마을을 찾았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 평화비행기 타고 강정 온 '한진 스머프' 신성훈씨

15년 동안 다닌 회사는 특별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를 정리해고 시켰다. 2011년 2월이었다. 아직 삭풍 차가운 겨울, 아내는 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그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노동자가 다 그러하겠지만 신성훈(43)씨도 자기노동에 대한 긍지가 남달랐다.

"제가 한진중공업에서 했던 일이 건조한 배를 시운전하는 것이었어요. 철판으로 만들어진 배에 여러 가지 장비를 싣고 테스트를 해보는 일이죠. 철판만 잡고 30년 이상을 일한 분도 다 만들어진 배 한 번 타보지 못하고 은퇴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운이 좋았죠. 다 완성된 배를 처음으로 타보고, 또 여기저기 문제없는지 점검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의 살뜰한 점검을 세례처럼 받은 배는 오대양을 누볐을 것이다. 참치떼를 쫓아 서사모아 섬을 지나 알래스카해협에 이르렀을 땐 피로에 잠시 그물을 걷어 올렸을 것이다. 희망봉 돌아 인도양 어느 쯤에선 선적(船籍)이 있는 고향 부산 영도가 그리워 뱃고동 소리 길게 빼며 울기도 했을 것이다.

길고 긴 배들의 첫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시절은 과거가 되었다. 그는 이제 '정리해고 무효'를 외치는 '거리의 투사'가 되었다.

"희망버스를 타고 오시는 분들이나 많은 국민들께서 이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는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노동문제가 투영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서 노동문제가 처음으로 전 국민의 문제가 된 것이죠. 비록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지만 힘이 나는 이유죠.

그러나 강정마을 주민들은 우리보다 더 오래 싸우셨음에도 아직까지는 국민들이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강정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군사기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군사기지가 있으니까 군사적 공격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강정마을만 싸움터로 변합니까? 이 좁은 나라 전체가 전쟁터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죠."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 그 누구보다 직장생활 성실하게 했을 이 착한 노동자는 "강정마을에 미안하다"고 자꾸 말했다. "늦게 와서 미안하고, 사람들이 한진중공업 문제는 알아도 강정마을 문제는 잘 모른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한다.

연대는 원래 그렇게 가난하고 착한 것일까. 4년 넘는 세월을 공권력에게 당하고만 산 강정마을 주민들이 희망비행기 타고 영도로 가듯 15년 제 목숨 줄보다 소중히 여겼던 직장에서 쫓겨난 착한 노동자는 자기들만 주목 받는 것 같아서 미안하단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은 국가와 정부를 상대로 하는 투쟁이니까 더 고생스럽고 힘들 것입니다. 정권을 바꾸지 않으면 해결방안이 없는 그런 싸움인 거죠. 말도 안 되는 해군기지 사업을 철회하는 정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정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여론이 형성되어야 하구요. 어느 정권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어요. 알리면 해결됩니다. 많은 국민들이 알면 해결됩니다. 저부터 부산에 돌아가면 강정마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게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들을 사람들은 '한진 스머프'라고 부른다.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착하게 웃고 아픔을 겪고 있는 벗들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철없는 스머프들. 한진 스머프 신성훈씨가 평화콘사트가 열리는 강정천 축구장으로 들어가며 한 마디 남긴다.

"오늘 9월 3일에 처음 열린 평화콘서트엔 저랑 몇 사람 못 왔지만 2차, 3차 평화콘서트에는 우리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부산 시민들이 함께 올 것입니다. 힘내라 강정!"   

전진경 작가를 비롯한 파견미술팀이 1회 강정평화콘서트에 맞춰 선보인 작품. 모두 구럼비 바위 탁본을 떠서 만든 작품들이다.
 전진경 작가를 비롯한 파견미술팀이 1회 강정평화콘서트에 맞춰 선보인 작품. 모두 구럼비 바위 탁본을 떠서 만든 작품들이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 구럼비 바위 탁본 떠 탈 만든 전진경 작가

예술을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문구 중 하나는 '자연 그대로가 예술'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섬세한 조각가도 뭉게구름 사이를 지나는 바람을 새길 순 없다. 제아무리 필력 좋은 시인도 들썩이는 파도의 한숨을 담아내진 못한다.

전진경 작가를 포함한 6명의 작가가 공동 작업한 <구럼비의 신>. 이 작품을 보면 그 오래된 문장이 영속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구럼비의 신>은 종이로 만든 탈에 인간의 형상, 바위의 형상을 그려놓은 작품이다. 화가와 판화가, 조각가, 인형작가 등이 한 팀을 꾸려 공동 작업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파견미술팀'이라고 부른다. 현장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들은 대추리는 물론 기륭전자, 대우자동차, 한진중공업에도 함께 있었다.

이 작품에서도 그들의 현장성이 오롯이 담겨 있다. 탈의 기본형상은 구럼비 바위를 탁본으로 뜬 것이다. 구럼비는 직경 1.2km가 넘는 단일바위지만 바위의 면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작가들은 바로 이점을 주목했다.

"제주에는 3주 전에 왔어요. 제주도에 사는 이승민 작가랑 강정 이야기, 바다이야기, 구럼비 이야기를 하다가 이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제주도가 그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잖아요."

9월 3일에 첫 강정평화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매우 중요한 행사가 될 것 같다는 것을 예술가의 직감으로 알았다.  전 작가는 '탈 뜨듯' 구럼비 바위 탁본을 떴다. 여름 땡볕에 열사병이 걸린 것처럼 어지럽고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4일에 걸쳐 작품을 제작했다.

"이 아름다운 강정바다를, 이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를 해군기지를 짓는다는 이유로 폐쇄하고 파괴하고 있잖아요. 이런 현실을 바라보는 구럼비의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끝내 이룰 평화로운 마을공동체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첫 평화콘서트가 열린 강정천 축구장에 <구럼비의 신>이 등장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 작품들이 풍물패와 함께 축구장으로 들어서려하자 경찰들이 제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유는 탈을 떠받치고 있는 대나무가 시위용품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이 "육지에서까지 경찰을 끌고 와 1천명이 넘는 병력이 지키고 있으면서 고작 대나무 작대기 네 개를 가지고 시비 거냐"고 힐난하자 해프닝은 마무리됐다. 전 작가가 바람에 흔들리는 탈을 보면서 말했다.

"구럼비의 신이 좋은 역할을 해줬어요. 경찰들이 저렇게 많이 몰려 와 있는데도 전국에서 또 제주도 각지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셨잖아요. 구럼비의 신이 길조인가 봐요. 이 작품을 만든게 너무 뿌듯해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