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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실시된 한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월 생활비로 평균 42만 원을 지출한다고 한다. 전국 대학생 3637명 중 32.7%는 월 '10만 원~30만 원'을 지출했으며, '30만 원~50만 원'을 지출하는 대학생은 29.9%였다. 50만 원 이상을 지출하는 대학생도 32.4%에 달했다. 특히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 및 하숙을 하거나 기숙사에 사는 경우 생활비는 월 58만7천 원에 달했다.

"학생이 무슨 돈이 필요해?"

대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하는 데는 분명 돈이 필요하다. 그것도 꽤 많이 든다. 수도권에 사는 대학생 황연지씨, 권인혜씨, 최성찬씨의 이야기를 통해 대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점검해봤다.

지난 7월 서울시립대 학생 고 황승원씨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마트 탄현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 사진은 유족들의 기자회견.
 지난 7월 서울시립대 학생 고 황승원씨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마트 탄현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 사진은 유족들의 기자회견.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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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와 보니... 알바로는 감당이 안 돼요


"1학년 때는 30만 원으로 충분했어요. 지금은 그거 갖곤 안 되죠."

대학생 황연지(가명·25세)씨는 1학년 때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기숙사비는 한 학기에 30만 원 정도로 사립대로서는 파격적으로 싼 편이었다. 거의 학교에서만 지내고 밥도 학생식당에서 먹었다. 학교 밖으로 나간다 해도 특별히 돈 쓸 일이 없었다. 새내기의 특권으로 선배들에게 얻어먹는 일도 많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편의점 알바를 해서 월 30만 원 정도를 벌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어떤 때는 수업 사이사이 단 몇 시간 동안에도 일을 해야 해요. 이럴 때는 정말 날아다니는 거죠. 일 끝나고 나서 쉴 틈 없이 바로 수업 들어야 하니까 지쳐서 졸게 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고. 알바 마치고 나서 급하게 수업 들어가느라고 택시를 타기도 했죠."

편의점 일을 그만둔 뒤에는 주말마다 예식장에서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다. 평일에 일하는 것처럼 수업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지만 주말을 통째로 빼앗기니 여유가 없었다. 하루 아홉 시간씩, 이틀을 꼬박 일하면 월 40만 원을 받았다. 힘들었지만 스스로 번 돈으로 용돈을 충당하는 기분은 보람찼다. 지방에서는 그걸로도 살 만했다.

4학년이 되어 서울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하니 그 돈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인천에 있는 집에서 서울까지 통학하는 교통비부터 시작해 모든 물가가 더 비쌌다. 특히 주변 친구들과 어울리려니 돈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돈을 쓰려 해도 쓸 곳이 없었던 지방과 달리 서울은 온통 상업시설 투성이였다. 그래봤자 밥 사먹고, 가끔씩 커피 마시고 술 마시는 정도였다. 사치랄 것도 없는 소소한 소비였지만 모이니 큰돈이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별 수 없이 부족한 용돈은 부모님한테 타서 쓰게 됐다.

'저렴한 학생 장사'를 하는 가게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대학가와 번화가가 구분되지 않는다.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인 신촌, 홍대, 이대, 대학로, 건대 등등이 대학가를 기반으로 한다. 대학생들은 직장인들과 똑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똑같은 가격의 커피를 마신다.

음주 문화는 한국 대학의 특징이지만, 이제는 술값도 결코 저렴하지가 않다. 술자리에 한 번 나가면 회비 1, 2만 원쯤 걷는 것은 기본이다. 비싼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려 해도 일인당 1만 원 이상은 든다.

후배한테 밥 사준다 했는데, 체크카드에 잔액이...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자료사진)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자료사진)
ⓒ 김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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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원체 비싸니, 과외를 해서 용돈을 많이 벌어도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대학교 3학년인 권인혜(가명·23세)씨는 입학 이후로 지금까지 과외 알바를 놓은 적이 없다. 과외를 2개씩 꾸준히 하면서 월 75만 원을 벌었다. 월 20만 원씩 적금을 붓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썼다. 하지만 월 55만 원으로도 언제나 빠듯했다.
"학자금 대출을 한 학기 받았는데 이자만 월 2만 원씩 나가요. 집이 부천인데 서울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하니까 차비만 10만 원 이상은 드는 것 같고, 밥값도 한 20만 원쯤? 수업 교재 사고, 가끔 친구들 생일이면 선물 사고, 하다못해 휴대폰에 붙이는 필름 하나 사는 것도 몇천 원씩 하죠.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그 활동비로도 한 달에 몇만 원은 들었어요. 임원을 맡았기 때문에 회비 부족한 걸 때워야 하는 경우도 있었구요. 그리고 휴대폰 요금 내고, 등록금에도 보태야 하기 때문에 남는 게 없어요."

집안이 넉넉한 친구들은 고급 화장품을 바르고, 명품 가방을 들고 학교에 온다. 하지만 인혜씨는 한 번도 사보지 못했다. 명품은커녕 몇 만 원 안쪽의 저렴한 옷이나 신발도 거의 못 사는 형편이다. 서점에서 사고 싶은 책이 눈에 띄어도, 그 자리에서 사본 일은 한 번도 없다. 욕심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 학생이지만 "뭐 하나 배우고 싶어도 다 돈"이라 하지 못한다. 지난달에는 특히 힘들었다. 휴대폰 요금을 못내 전화가 끊겼던 것이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금전적 여유가 없으니까 만나고 싶은 친구한테도 쉽게 만나자는 말 못하고, 연락하려 하다가도 못하고 그런 적이 많아요. 그럴 때가 제일 서글프죠. 후배한테 밥을 사주겠다고 하고서 만났는데 막상 계산을 하려고 보니 체크카드에 잔액이 없어서 무안했던 적도 있고…."

특별히 비싸고 좋은 것을 먹거나 사치를 부려서 돈이 모자란 게 아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최소한이다. 친구와 밥 한 끼만 먹어도 최소 5천 원이 들고,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그때마다 만 원이 넘는 회비를 내야 한다. 엠티라도 가려면 2만 원, 3만 원이다. 입학 전에 가졌던, 패기 넘치는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는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깨어졌다.

"저도 대학생으로서 하고 싶은 공부가 있고, 동아리나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경험하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하다못해 남들 다 하는 영어 공부라도 하고 싶고. 하지만 과외를 계속하다 보니까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부족해요. 수능 시험을 앞둔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데, 그 친구들의 앞날에 제가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부담이 많이 되고 스트레스도 받는 게 사실이에요."

그나마 인혜씨는 과외를 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고, 부모님의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았기에 쉽게 과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연고가 없는 대학생들은 고액의 수수료를 떼어가는 과외중개 사이트에 주로 의지한다. 그나마도 명문대생을 선호하기 때문에 과외 자리를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시급 4천~5천 원을 받으며 고된 아르바이트에 공부할 시간을 빼앗겨야 한다.

돈 많아서 예체능 한다? 쉽게 말하지 마세요

전공 수업이 실습 위주로 이루어지는 대학생의 경우 부담은 더하다. 사진을 전공하는 최성찬(가명·27세)씨는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2천만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체능 계열의 경우 등록금 자체가 다른 전공에 비해 비쌀 뿐더러 실습 비용도 많이 들어 부담이 크다.

결코 여유가 있어서 사진을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사진 하는 사람들은 돈이 많다'는 편견이 성찬씨에게는 스트레스다.

"바디랑 렌즈 두 개 합치면 제 카메라가 한 8백만 원 하거든요. 전공 하려면 거의 이 정도는 써야 해요. 확실히 카메라가 좋아야 사진이 잘 나오거든요. 저보다 비싼 카메라 쓰는 사람들도 많죠. 그리고 사진 전공자들은 아이패드를 많이 써요. 사진 찍고 나서 바로 크리틱(평가)할 수도 있고, 특히 4학년 때는 업계 관계자 만나서 바로 포트폴리오를 보여줄 수 있어서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쉽게 '돈 많네' 해버리면 기분이 좀 그렇죠. 이거 할부로 산 거거든요."

졸업작품을 준비하다 보니 돈 들어갈 데가 더 많다. 충남 아산에 살고 있지만 촬영을 위해서 일주일에도 몇 번씩 서울에 올라와야 한다. 차비만 한 달에 20만 원이 넘게 든다. 사진 촬영에 쓰는 소품과 약품 등을 사는 데도 월 15만 원 정도 들어간다. 게다가 매달 30만 원씩 학자금 대출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고 있는 형편이다. 촬영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적게는 10여만 원, 많게는 1백만 원까지도 벌지만 남는 건 없다.

"사진은 확실히 돈을 들이는 만큼 결과가 잘 나오거든요. 여유 있는 친구들이 스튜디오 빌리고 시간당 얼마씩 줘야 하는 모델 데려오고 좋은 카메라, 조명 써서 과제나 졸업작품 찍는 걸 보면 부럽죠. 편해 보이고.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이 나도, 번번이 돈이 걸리니까 꺾일 때가 많아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대학생 촛불집회가 6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앞에서 열리는 가운데,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한 여학생이 "오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이곳에 왔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감정이 북바쳐 눈물이 난다"며 울먹이고 있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대학생 촛불집회가 6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앞에서 열리는 가운데,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한 여학생이 "오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이곳에 왔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감정이 북바쳐 눈물이 난다"며 울먹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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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도 힘든데... 결혼, 독립을 어떻게 해요?"

가난한 대학생은 연애 하기도 힘들다. 밥 먹고 차 마시고 술이라도 한 잔 할라치면 4~5만 원쯤은 우습다. 특별한 데이트도 아니지만 만나는 일 자체가 큰 돈이다. 돈 안 드는 데이트 공간 자체가 없는 탓이다.

"20대가 돈 없어서 연애 못한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닌 거 같아요."

인혜씨의 말이다. 성찬씨도 어려움을 토로한다.

"여자친구랑 밥 한 끼만 먹어도 만 원, 2만 원이에요. 저도 남들처럼 선물도 사주고 하고 싶지만 형편상 그렇게 잘 못하죠. 여자친구가 이해해주고, 데이트 비용도 반씩 내고 해주니까 고마울 뿐이죠."

가난하지만 데이트는 직장인들과 비슷하게 하게 되는 게 요즘 대학생들이다. 캠퍼스 안에서 만난다고 해서 돈이 덜 드는 것도 아니다. 번화가에 있는 것과 똑같은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커피 전문점들이 이미 캠퍼스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인 성찬씨는 장래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저도 집회에 나갔지만, 반값등록금 집회가 그렇게 커진 이유가 있다고 봐요. 등록금은 물론이고 모든 게 다 너무 비싸요. 지금도 간신히 버티는 건데, 언제 돈 모아서 집 사고 결혼할 수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지금이 마지막 학기인데, 졸업하면 아마 서울에 고시원 얻어서 살 것 같아요."

그나마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형편이 낫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연지씨는 "절대 독립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1학년 때부터 가능하면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으려 노력했을 만큼 독립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취업이 바로 된다 하더라도 집세를 감당하는 일까지는 자신이 없다.

"주변에 자취하는 친구들을 보면, 아무리 알바를 해도 절대 돈을 못 모으더라고요. 월세로만 한 달에 몇십만 원이 그냥 나가고 생활비도 더 많이 드니까. 집이 인천이라 다니기가 좀 멀긴 하지만, 취업해도 독립할 생각은 없어요. 부모님께는 좀 죄송하지만 별 수 없이 얹혀살아야죠."


태그:#대학생, #물가, #반값등록금, #반값생활비, #생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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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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