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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 안에서, 수첩에 이렇게 끼적거렸다.

"사막의 뙤약볕을 받아 나의 태양을 달궈 와야지. 햇빛 사냥이다!"

햇빛 사냥을 떠나다
 햇빛 사냥을 떠나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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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무덥고 게다가 습하고, 연일 내리는 장맛비로 기분까지 눅눅해졌다. 덥고 습한 건 둘째치고, 대낮에도 밤처럼 어둑신한 게 싫었다. 퍽, 시들시들했다.

건조한 사막으로 간다. 그래서 여행이 더욱 기대됐다. 더운 거야 서울에 못지않겠지만, 아니 여기보다 더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거기선 쨍한 태양을 만날 수 있겠지. 이글이글하고 뜨거운.

북경을 거쳐 난주(蘭州, Lanzhou)로.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지명이었다. 그곳에서부터 열흘간, 실크로드의 자취를 따라간다.

동서양 문화의 교역로 실크로드로, 햇빛 사냥을 떠났다.

동서양 문화 교류한 비단길 '실크로드'

실크로드는 때로 한국과 일본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지도는 중국 감숙성 박물관에 있는 것.
 실크로드는 때로 한국과 일본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지도는 중국 감숙성 박물관에 있는 것.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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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이 내리쬐는 모래언덕. 기나긴 낙타의 행렬에 흰옷을 입은 아라비아 대상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비단길 '실크로드'의 이미지다. 실크로드는 중원에서 발원해 사막을 가로지르고 중앙아시아를 지나 지중해의 로마에 이른다. 때로는 한국과 일본에까지 이 무역로가 이어졌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실크로드의 시작점은 우리가 흔히 '장안'이라고 알고 있는 중국의 옛 수도 서안(西安, Xian)이다. 자연발생한 길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열리게 된 교역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실크로드는 무역보다는 이웃 국가와의 교통로 성격이 강했다. 당시 한을 비롯한 중원 지역 국가들에게는 북방의 흉노족이 큰 골칫덩이였기 때문이다. 흉노를 정벌하고자 했던 한 무제에게는 이를 공모할 세력의 규합이 필요했다.

한 무제는 장건을 밀사로 파견했다. 그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서쪽으로 가는 길을 개척한다. 이후 한 무제가 이란, 아라비아, 로마 등지로 사신을 파견하며 서역과 교류하게 되면서 장장 6400km에 이르는 엄청난 교역로가 열리게 된 것이다.

무역을 통한 동서양의 문물 교류는 육로뿐 아니라 해상으로도 이어졌고, 중원의 번영을 가져왔다. 돈과 물자, 사람이 이동했다. 중요한 교역 품목 가운데는 비단이 있었다. 이에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은 이 길을 실크로드(Silk Road)라고 명명했다.

실크로드에서 만난 현장법사
 실크로드에서 만난 현장법사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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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전 소설 <서유기>는 현장법사 일행이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날아라 슈퍼보드>라는 만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 때 일행이 지나간 길 역시 지금의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곳이다. 실제로 당시에는 불경을 구하기 위해 평생이 걸릴 여정을 떠나는 수도자들이 있었다.

남한보다 넓은 청해호, 끝도 없이 펼쳐진 치리엔산의 만년설, 자갈과 모래로 이루어진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운 모래를 품은 고비 사막, 만리장성... 실크로드 여행에서는 멋진 경관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중요한 곳이다. 휴양지라기보다는 역사 탐방 형식의 여행이 더 어울린다. 가이드북보다는 역사책이 필요한 곳이랄까.

역사·문화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 실크로드

난주 중촨공항에 도착한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한국에서 북경까지 1시간 40분, 공항에서 환승 대기 4시간 후 북경에서 난주까지 또 2시간. 북경이나 상해처럼 바로 갈 수 있는 곳도 많은데, 어쩌다 이렇게 복잡한 곳에 오게 되었나 싶다.

픽업을 나와준 중국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시내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렸다. 버스의 실내등까지 소등이 되고 나자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희미하게 창 밖을 눈길로 더듬어본다. 희붐한 달만이 높게 걸려 있다.

난주가 위치한 감숙성(甘肅省, Gansu Province)은 중국 서북부 내륙에 위치한다. 내몽고자치구와 접하며,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어 몹시 건조하다. 중국 동부의 도시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 서북부 지역은 여전히 낙후돼있다. 주민들의 소득이나 생활 수준도 대도시와 비할 바가 못 된다.

난주의 첫인상은 흙빛이었다. 웅장하지만 투박했다. 뭐든 큼직큼직하다. 건조한 산맥이 씩씩하게 힘줄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곳이야말로 정말 중국다운 중국이 아닐까? 주눅이 든다. 금세 정이 가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밤에 도착해서 그래. 해가 뜨면 달라질 거야.

걱정 반 기대 반. 어수선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난주의 밤
 난주의 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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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중국 난주에 가는 방법
1. 한국에서 난주까지 가는 직항 비행기편이 없기 때문에 북경이나 상해에서 국내선으로 환승해야 한다.
2. 중국은 워낙 나라가 크기 때문에 국내선 항공 교통이 꽤 발달한 편이다. 에어차이나, 이스턴차이나(동방항공) 등에서 난주로 가는 국내선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3. 인천에서 북경이나 상해를 거쳐 난주로 가는 경우 왕복 비행기삯은 유류세를 포함해 한화로 약 80만 원 정도 예상해야 한다.
4. 난주는 감숙성의 성도로서 항공, 철도 등 교통이 매우 발달돼 있다.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많은 여행자들이 거쳐 간다. 하지만 난주 자체에 둘러볼 곳이 많지는 않다.(황하 모자상, 난주 물레방아 정도)

덧붙이는 글 | '햇빛 사냥'은 바스콘셀로스의 소설 제목입니다. 실크로드의 역사와 관련한 내용은 <반주류 실크로드사(김영종, 사계절)>를 참조하였습니다. 박솔희 기자는 2011년 7월 11일부터 21일까지 재학 중인 숙명여대와 중국 난주대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중국 서북부의 실크로드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실크로드, #난주대학교, #중국난주, #중촨공항, #중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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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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