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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문제를 명랑하게 다룬 코미디 영화 <간 큰 가족>의 한 장면.
 이산가족 문제를 명랑하게 다룬 코미디 영화 <간 큰 가족>의 한 장면.
ⓒ 두사부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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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10만 명이 채워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탈북하여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정착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출간한 '북한 이탈주민의 범죄피해 실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자들의 사기 피해율은 21.5%로 우리나라 전체 사기 피해율(0.5%)의 43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들의 5분에 1에 해당되는 약 4000여 명이 한국에서의 정착을 포기하고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독일, 노르웨이 등 해외로 이주 하고 있다.

심지어 목숨을 걸고 찾은 자유의 땅에서 자살하는 탈북자들도 생기는 현실은 그들의 사회정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편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정착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이고 그 해법은 없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60년 만의 이산가족 상봉보다 정착교육이 더 중요?

2003년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김아무개씨는 최근 6·25전쟁 때 납북된 아버지를 한국으로 천신만고 끝에 입국시켜놓고 통일부와 하나원(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하여 정착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기관. 공식명칭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유는 87세가 된 아버지를 '정착교육'을 시킨다는 이유로 하나원에 입소시켜놓고 61년 만에 만나는 형제들과의 상봉을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의 고모(아버지의 누나, 대전시에 거주)는 현재 91세로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하루라도 빨리 동생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김씨는 고모가 한 달에 한 번밖에 허용되지 않는 가족면회에 참가할 수 없는 형편임을 설명하고, 아버지가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도록 내보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통일부와 하나원은 관련규정을 이유로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를 허탈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원의 가족면회 담당자의 태도라고 한다. 김씨는 "87세가 되어 잘 듣지도 못하는 노인을 거기에 붙잡아 두고 정착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봐도 이해가 되지 않고, 가족들이 연로하여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인데 61년 만에 고향에 온 사람을 가족들도 마음대로 만나게 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가 아닌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담당자는 "한국에 온 지도 꽤 오래된 사람이 아직도 정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한국은 법치국가여서 모든 것을 법대로 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북한식으로 떼를 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2~3개월간의 정규교육과정을 반드시 이수해야만 된다"는 답변만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황당한 김씨는 통일부, 국회,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다니며 "과연 그 법은 누가 누구를 위해서 만들고, 그 법을 만드는 데 우리 탈북자들의 의견이 반영되기나 하는 것인가?"라며 "대한민국에서는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도 가족면회는 하루 한 번씩 가능하다고 하는데 61년 만에 고향으로 찾아온 아버지를 정착교육을 이유로 가두어놓고 가족면회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라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탈북자 교육 관련 하나원 교육기획과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탈북자에게 남한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은 당연히 필요하다"며 "호적이나 주민등록은 물론 주택 등 거주지도 없어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최소한 2~3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는 탈북자라도 직계 가족이 신청하면 1개월에 한 번씩 면회가 가능하고, 전화통화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며 "교육을 받는 고령의 탈북자에게 건강 등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특별 면회는 물론이고 필요한 다양한 조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출한 지 10년 된 탈북자는 탈북자가 아니다?

2007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이아무개씨는 한국정부로부터 '탈북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난민 허가를 받아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그가 탈북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북한을 탈출한지 10년이(1996년 탈북) 지났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탈북자지원법) 제9조 4항에 따르면 "체류국에서 10년 이상 생활근거지를 두고 있는 자는 보호대상자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북한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탈북자지원법 제9조 4항에 의해 탈북자로 인정되지 못하는 경우 한국정부에서 탈북자들에 제공되는 모든 정착지원(주거지원, 생활지원 등)을 받을 수 없다.

통일부 정착지원과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주민이 북한을 탈출하여 해당 체류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는 해당 체류 국가에서 생활하는데 신변 등에 문제가 없다고 보며 따라서 한국정부가 보호해 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설명과는 달리 탈북자들이 체류하는 중국의 경우 탈북한 지 10년이 되었다고 탈북자들에게 거주자격을 주는 것도 아니며, 중국에서 거주한 지 10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체포되는 경우 북한으로 보내진다.

이씨의 난민 심사를 담당했던 웬디(Wendy) 변호사는 "거주 국가를 탈출한 난민이 체류국에서 10년을 경과하였다고 하여 난민지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난민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난민보호규정에 위반되는 행위"라며 '법치국가'로 알고 있는 대한민국에 이러한 규정이 있다는 데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탈북자들에 대한, 원하지도 않는 과잉 신변보호

10년간 대북'삐라' 활동을 진행해온 탈북자 이민복씨. 이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신변보호 담당 형사들이다. 담당 경찰관들이 그의 사업과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침해하여 괴롭다는 것. 이씨는 자신의 사업과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신변보호는 '보호'가 아닌 미행과 감시, 인권침해이며, 따라서 이를 철회해줄 것을 여러 차례에 거쳐 요구하였으나 그 요구는 지금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는 차 꽁무니에 거머리처럼 따라다니는 신변보호 경찰들과 도로에서 따라오지 말라고 다툼질을 벌어기도 했다. 그래도 이씨의 요구를 무시하고 경찰들이 계속해서 따라오자, 이씨는 자신의 차를 후진하여 신변보호 경찰이 탑승한 차를 들이받아버렸다. 경찰은 이씨를 공무집행방해죄와 상해죄로 고소하여 현재 재판 중이다.

이씨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신변보호 경찰을 경찰에 신고해봐야 소용도 없고, 신변을 보호해준다는 경찰이 자신의 활동계획을 함부로 누설하고 사업상 만나는 대상자들에 대해서도 시시콜콜 조사하는 등 인권침해 정도가 도를 넘어서도 어디에 가서 해결받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민복씨뿐만 아니라 모든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해당 거주지역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아야 하며, 본인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의 일방적인 경찰의 신변보호는 탈북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탈북자 청년의 삶을 그린 영화 <무산일기>의 한 장면.
 탈북자 청년의 삶을 그린 영화 <무산일기>의 한 장면.
ⓒ 세컨드윈드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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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정착에 실패하고 다시 '탈남'하는 탈북자들

한국에서의 정착을 포기하고 해외로 이주하는 탈북자들은 자녀교육문제와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을 '탈남'의 가장 큰 이유로 든다.

2010년 캐나다로 이주하여 한인거주 지역에서 식당 일을 하고 있는 탈북여성 한아무개씨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사는 것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좋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는 고향이 아니기는 한국이나 캐나다나 매한가지다. 그러나 여기서는 한국에서 살 때처럼 무시(차별)당하는 일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고 이야기하였다.

2009년 한국에 입국한 한씨는 다니던 교회의 집사에게 크게 망신을 당한 후 해외 이주를 결심했다고 한다.

3명의 자녀를 둔 한씨가 "한국에서 애들 과외 교육시키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힘들다"라고 이야기했더니, "탈북자들은 (입국을) 받아주지 말아야 한다. 중국 조선족들은 국적을 주지 않아도 와서 열심히 일해 돈 벌어가지고 중국 가서 잘사는데, (탈북자들은) 정부에서 주민등록증을 주고 집까지 배정해주고 모든 생활보장을 해주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불평만 하고. 정부는 왜 저런 사람들에게 국민의 세금을 쓰는지 모르겠다"며 많은 교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망신을 줬다는 것이다.

한씨는 "한국에서 우리는 마치 큰 빚을 지고 죄를 지은 느낌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같은 국민으로서 한국인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중국에서 죽지 못해 살던 사람들을 그만큼 해줬는데 거기에 만족하고 살아야지 무슨 불평만 하냐'라고 이야기 한다"며 "중국에서 숨어살 때는 나라 없는 신세라 무시를 당해도 할 수 없다 생각하고 서러운 걸 몰랐는데, 친정집같이 생각한 한국에 와서 외부인으로 취급받으며 무시를 당하는 게 가장 서러웠다"고 그는 이야기하였다.

캐나다에 살아가면서 무시당하거나 차별받는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나는 영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릴 무시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전혀 그런 것은 없고 오히려 학급에서 공부를 제일 잘해서 선생님들의 칭찬만 받는다"며 "한국에서 살 때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잘해도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학급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아서 애들이 많이 위축된 생활을 해 속상했는데, 여기 와서는 같은 반 외국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학업성적도 좋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일 캐나다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해도 중국에서 살 때처럼 내 조국이 아니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한국에서처럼 서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물론 중국에서 국적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탈북자들을 한국정부가 수용해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지만 한국사회에 탈북자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한국 국민들은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해외로 이주하는 탈북자들을 비난하는데, 그러기보다는 대한민국을 탈북자들이 다른 나라에 가지 않아도 되는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비록 우리는 해외에서 살아가지만 남북통일의 희망인 대한민국을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정착, 대안은 없나

해외 체류 탈북자들을 전격 수용하기 시작한 김대중 정부로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부는 탈북자들의 사회 정착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아직도 탈북자들에 대한 정착지원에는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탈북자들의 자유적 의사에 반하는 강제적인 정착교육은 중지되어야 한다.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의 경우에도 우리와 같이 정착교육을 강요하는 나라는 없으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주어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범죄자도 아닌 탈북자들을 강제적으로 수용하고 주입식 정착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명확한 인권침해이다.

북한에서 주입식 교육만 받는 데 신물이 난 그들에게 또 다시 주입식의 정착교육을 시키는 것은 별로 효과도 없다. 필자 역시 하나원의 정착교육을 받았지만 그때 뭘 배웠는지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고, 다만 세탁소를 운영하던 선배 탈북자가 자신의 정착 경험담을 이야기 하던 강의 내용은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의 표정과 말투까지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오히려 탈북자들의 취업, 창업을 위주로 교육하는 교육기관인 '굿피플대학'의 1년 과정이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교육과정은 하나원과 같이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정착에 필요한 교육을 원하는 탈북자들의 자발적인 수요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적이다.

북한을 탈출한 지 10년 된 탈북자에 대하여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한 탈북자지원법 제9조 4항은 삭제되어야 한다. 우선 이 조항은 대한민국 헌법 제3조와 해당 법 제1조 "이 법은 군사분계선이북지역(이하 '북한'이라 한다)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북한주민이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생활영역에 있어서 신속히 적응·정착하는데 필요한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의 내용과 모순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의하면 북한주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가지며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한 북한주민들은 대한민국의 실제적 지배권이 미치지 못하는 북한을 탈출하여 체류국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되었건, 20년이 되었건 해외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과정은 통일 후 통합의 시험과정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당사자들인 탈북자들에게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모두 탈북자들에게 돌리기에는 우리사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북한주민이기도 한 탈북자들을 어떻게 포용하는 가 하는 것은 통일 후 남북 사회통합에 대비하는 시험과정이기도 하다.

탈북자 지원의 문제는 결코 재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 연구기관이 탈북자들을 상대로 한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어떤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조사에서 거의 모든 탈북자들은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남한사회가 탈북자들을 남한사람과 똑같이 이웃으로 받아들여주는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남한 사회정착은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정부와 탈북자지원단체 그리고 우리사회가 다같이 우리와 다른 사회환경에서 살아온 탈북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우리 사회에 흡수해나가려는 노력을 해나갈 때에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최승철 기자는 2003년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입니다.



태그:#탈북자지원, #탈북자, #정착지원, #탈북자정착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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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북한)사람 입니다. 그래서 나는 조선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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