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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지난 5월 14일 "50년 맞은 5·16 조갑제·김호기의 심층 토론"을 보도했다(관련기사 "박정희는 자기 성공의 희생자였다"). 이 토론기사의 사회는 중앙 SUNDAY 김종혁 편집국장이 맡았다.

보통 나는 중앙일보를 잘 읽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 이 기사에는 눈이 갔다. 그 이유는 사회를 맡은 김종혁 국장의 기사에 나오는 질문 때문이었다. 그는 토론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함석헌
ⓒ 함석헌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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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인사인 장준하·함석헌씨가 사상계에 5·16을 지지하는 글을 썼던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나는 지난 30여 년간 함석헌의 글을 한 자도 빠짐없이 읽었다. 몇몇 책은 10여 번 이상 읽었다. 함석헌에 관한 학사, 석사, 박사 논문을 썼고 국문과 영문으로 함석헌에 관한 책도 몇 권 냈다. 그에 관한 논문이나 에세이는 수십 편을 썼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10년째 1970년 함석헌이 당시 박정희 군사독재 하에서 언론자유를 증진시키기 위해 창간한 잡지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직을 맡고 있다. 그런데 나는 함석헌의 글 어디에도 그가 5·16을 지지하는 글을 썼던 것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함석헌은 5·16쿠데타가 일어난 직후 장준하가 주간으로 있는 잡지 <사상계>에 '5·16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을 기고하여 박정희의 잘못된 쿠데타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제 발이 5천년 아파도 아프다는 소릴 못하고, 슬퍼도 목을 놓고 울어도 못 본 이 민중을…… 이제 해방이 되려는 이 민중을 또다시 입에 굴레를 씌우지 마라. 정신에 이상이 생겼거든 지랄이래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둬야 할 것이다. 4·19이후 처음으로 조금 열렸던 입을 또 막아?…… 혁명은 민중의 것이다. 민중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 군인은 혁명 못한다. 어떤 혁명도 민중의 전적찬성 전적지지 전적참가를 받지 않고는 혁명이 아니다. 그러므로 독재가 있을 수 없다. 민중의 의사를 듣지 않고 꾸미는 혁명은 아무리 선의로 했다 해도 참이 아니다.…… 학생이 잎이라면 군인은 꽃이다. 5월은 꽃달 아닌가? 5·16은 꽃이 한번 핀 것이다. 잎은 영원히 남아야 하는 것이지만 꽃은 활짝 피었다가 깨끗이 뚝 떨어져야 한다.…… 박정희님 내가 당신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고도 육군대장이라고도 부르지 않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여러분은 아무 혁명이론이 없었습니다. 단지 손에 든 칼만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무력만으로 얻지 못합니다." - <사상계>1961년 7월호.

중앙 SUNDAY 김종혁 편집국장이 1961년 함석헌이 목숨을 걸고 쓴 위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 봤으면 감히 "함석헌씨가 사상계에 5·16을 지지하는 글을 썼던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은 기억보다 무섭다. 문제는 인터넷상에 '함석헌이 5·16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기록이 끊임없이 재생산 유포되고 퍼져서 '함석헌이 5·16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여러 학자들이나 세인들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또 새로운 '사실'과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5월 17일 나는 중앙 SUNDAY 김종혁 편집국장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 기사에서 함석헌씨가 사상계에 5·16을 지지하는 글을 썼던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정보도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신다는 답장을 제게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답이 없으면 제가 일간지에 부장님의 글을 비판하는 글을 곧 기고하려고 합니다. 함석헌연구회와 유족들이 함석헌 선생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심각하게 검토 하고 있습니다. 답장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김종혁 국장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답장을 받았다.

"함석헌기념사업회 회장(사무국장)님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정보도는 기사가 잘못됐을 경우 언제든지 할 겁니다. 만일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로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들에게 사과도 할 겁니다. 선생님이 일간지에 무슨 글을 쓰던 그건 선생님의 자유이니 상관 없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답을 드리는 건 선생님도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 중 하나이겠다고 생각해섭니다."

정정보도를 하고 사과문까지 발표한다는 김종혁 국장에게 나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즉시 이런 답신을 보냈다.

"답장 감사드립니다. 정정보도를 하신다면 제가 언론에 국장님을 비판하는 글을 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모쪼록 이번 일이 잘 해결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나는 정정보도를 기다렸다. 매일매일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고 평소에 전혀 읽지 않는 중앙일보 홈페이지에도 들어가서 기사 검색을 했지만 김종혁 국장이 약속한 함석헌에 대한 정정보도나 사과문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함석헌기념사업회와 유족들에게도 문의 했지만 김종혁 국장으로부터 정정보도나 사과문을 받아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김종혁 국장은 오히려 미안해하기보다는 불쾌한 반응을 보이더라고 전한다. 나는 일주일을 기다려도 아무 답이 없는 김종혁 국장에게 지난 5월 24일 이런 메일을 보냈다.

"정정보도 건 어떻게 되었는지 답장을 바랍니다."

그리고 그날 밤 김종혁 국장은 내게 이런 답장을 보냈다.

"그 기사가 나간 게 중앙SUNDAY고요, 바로 잡는 내용도 지난주 일요일 중앙SUNDAY에 나갔습니다."

짧고 건조한 답변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함석헌 선생이 5·16을 지지했다는 기사는 인터넷에 검색이 4편이나 되는데 바로잡았다는 내용은 인터넷에 1편도 검색이 안됐다. 그래서 나는 함석헌기념사업회와 유족들에게 문의했다. 혹시 김종혁 국장으로부터 위 기사와 관련한 정정보도나 사과문을 냈다는 통보를 받은 적이 있었는지를. 답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상식이나 인간관계의 예절은 이렇다. 허위사실을 기사화했다면, 그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인터넷 검색이 되게) 언론에 정정보도나 사과문을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함석헌기념사업회(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도 공문으로 김종혁 국장에게 정정보도를 요청했다)에 그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 인간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고 예의이다.

나는 30일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이 글의 사본을 함석헌기념사업회에 보냈다. 함석헌기념사업회는 내 글을 요약하여 김종혁 국장에게 다시 추가공문을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함석헌기념사업회는 아래와 같은 메일을 김종혁 국장으로 부터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함석헌 기념사업회 귀중

5월22일자 중앙선데이 2면에

'지난주 5 16 50주년 조갑제 김호기 대담기사 중 '함석헌씨가 사상계에 5 16을 지지하는 글을 썼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기에 바로잡습니다. 1961년 사상계 7월호에 실린 함씨의 글은 5 16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함석헌 기념사업회는 "함 선생님은 5 16 군사 쿠데타를 일관되게 비판했다"고 알려왔습니다. 관계자들께 사과드립니다"

라고 정정기사가 나갔습니다. 인터넷에 올라가지 않은 건 아마 담당자의 소홀같네요.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는 5월 30일 오후 2시 6분자로 비로소 정정기사가 인터넷에 검색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함석헌에 대한 잘못된 기사는 미주판 중앙일보를 포함하여 국내외로 빠르게 유포 확산된 데 반해 정정기사는 '담당자의 소홀' 때문인지 열흘이 다 되어서야 몇 번의 정정요청 후에 비로소 인터넷에서 검색되게 된 것이 그저 기쁘지만은 않다.

이번 일과 관련하여 안타까운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유력한 일간지의 편집국장조차도 한국현대사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나 인터뷰인 경우에는 사전에 사실 확인을 했어야 마땅한 것이 언론인의 당연한 책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실에 대한 판단이나 의견, 해석 등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본질은 판단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실 그 자체에 대한 문제다. 더군다나 그리 멀지도 않은 우리 현대사의 사실 말이다. 함석헌은 결코 5·16을 지지하지 않았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리고 그로인해 엄청난 수난을 받았고 그것이 기록으로 남아야 할 사실이다.


태그:#함석헌, #박정희, #김성수, #김종혁, #5.16, #삼성불매운동,사카린 밀수기업삼성,조중동 찌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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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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