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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정부는 2011년 예산안에서 '결식아동 방학 중 급식지원' 부분을 전액 삭감했다. 지방으로 이양된 지방자치단체 사업이지만, 2009년과 2010년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시적으로 정부가 지원했을 뿐이라는 이유였다. 그러자 시민들이 움직였다.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의 제안으로 '결식 0(제로) 캠페인'이 시작된 것이다.

모금 시작 일주일 만에 1억여 원이 모였고, 한 달 후에는 총 5686명의 시민들이 3억여 원을 내놓았다. 캠페인 참여단체 중 하나인 '함께걷는아이들'에서도 흔쾌히 1억 원을 보탰다. 그렇게 만들어진 돈이 총 4억여 원. 그 돈으로 1월과 2월 두 달간 총 163개소의 지역아동센터에서 4000여 명의 아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시민들이 자신의 밥값을 기꺼이 나누어 만들어 낸 '작은 기적'이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아름다운재단에서 '결식 0(제로) 캠페인'의 평가 토론회가 열렸다. 두 달간의 성과를 정리하며 사회자와 5명의 참석자들은 "우린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 "그 숟가락으로 밥만 얹어먹었다" 등 훈훈한 분위기 속에 덕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이들은 "결식 문제는 결국 아동복지의 문제"라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데 동의했다.

"두 달간의 캠페인, 밥을 제공하는 우리들도, 아이들도 행복했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아름다운재단에서 열린 '결식 0(제로) 캠페인' 평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결식 0(제로) 캠페인' 평가 토론회 참석자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아름다운재단에서 열린 '결식 0(제로) 캠페인' 평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아름다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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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는 임오윤 아름다운재단 간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결식 0(제로) 캠페인'의 성과를 크게 '아이들에게 부족하지 않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것'과 '현장에서 친환경 급식 사업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차경애 전남 장흥 지역아동센터 사무국장은 이번 사업을 '두 달간의 로또'로 비유하며 "두 달간 먹은 삼천 원짜리 밥이 아이들에게는 명절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며 기뻐했다.

"아이들이 밥상을 매일 받을 수 있다는 것, 풍족하다는 것, 믿고 먹일 수 있다는 것에 가장 놀랐다. 아이들이 계속 '얼마 만큼 먹을 수 있냐'고 묻더라. 두 달 동안, 밥을 제공하는 우리들도, 아이들도, 너무 행복했다."

정경훈 아름다운재단 간사는 "지금까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준 적은 없었다"고 흐뭇해했다. 강혁 함께걷는아이들 사무국장 역시 "그동안은 급식 문제에 대해선 '주어진 예산 안에서 최대한 많이 먹이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번 캠페인으로 '친환경 급식 사업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현장에 보여주었다"고 미소지었다. 

"정부, 지자체에 책임 떠넘기지 말고 책임있게 나서라"

이내 참석자들은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방학 중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밥을 챙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급식사업은 장롱에서 아이들이 굶어 죽은 사건에서 시작됐다"며 "한국의 아동복지사업은 체계가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만큼 받은 후에야 '땜빵 정책'이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에 아쉬움을 느꼈다는 참석자들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강 사무국장은 "중앙정부는 자신들은 국회에서 할당받은 예산이 없다며 지자체에 일을 넘기고, 지자체는 당장 쓸 예산이 없다고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 간의 책임 떠넘기기를 비판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굶고, 이것이 무한 반복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성 위원장도 "결식의 기준이 어느 만큼이냐 하는 사회적 기준이 없어 (지원 대상) 발굴이 힘들다"고 말하며 정부의 주도로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정부가 해야 할 관리 책임을 다 하지 않으면서 지자체와 핑퐁게임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라며 정부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일 것을 촉구했다. 

이번 캠페인에서 식자재 보급을 맡은 아이쿱 생협의 김대훈 대외협력팀장도 정부에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있음에 동의했다. 그는 "(생협) 조합원들과 굶는 아이들이 존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보호하는 체계가 없는 나라에 무슨 국격이 있냐"는 말을 했다며 "(급식사업에 대한) 지자체의 정책이 다 다르다는 게 문제다. 중앙정부로 예산을 다 모아 필요한 곳에 재분배를 하거나, 지자체에서 부족한 예산을 정부가 보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 사회 곳곳의 멍든 부분을 치유하고 보듬는 것에는 소홀한 것 같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 번 선심 쓰자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는 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식 문제, 단순히 밥 굶는 것 아닌 기본적 돌봄의 문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아름다운재단에서 열린 '결식 0(제로) 캠페인' 평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결식 0(제로) 캠페인' 평가 토론회 참석자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아름다운재단에서 열린 '결식 0(제로) 캠페인' 평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아름다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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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참석자들은 결식의 문제를 단순히 저소득자 대상의 복지의 문제로 보아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이 밥을 굶는 것은 '가정 형편이 어렵다' 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돌봄'의 문제라는 것이다.

강 사무국장은 민간단체에서 지속적인 감시를 통해 "양극화나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이라는 것을 정부에 증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 팀장은 "아이들을 대변해야 하는 입장에서 지역아동센터가 적극적 행위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며 "같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을 위한 캠페인을 준비해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이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 위원장은 "국민의 최소한 1/4이 아이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전체 정부 예산의 1%라도 사용해 아동기라도 보장해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며 "국민들이 '우리로 하여금 어른의 노릇을 하게 해 달라'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절실하게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였다. 김 팀장은 "한 두 번은 민간단체에서 할 수 있지만, 정부의 지원 확충이 시급하다"며 "다가오는 여름방학에 추경예산을 편성해 지원이 중단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성 위원장은 이를 위해 "국회의 세미나 등을 통해 정부에 문제를 알려, 현재의 학교 급식법을 확대하든 별도의 법을 만들든 지원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 간사 역시 "보람된 일이었지만 모든 아이들을 지원하기엔 모금액이 턱없이 모자랐고, 지원 사업도 민간단체에서만 운영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정부의 제도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회자인 임 간사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 "단순히 아이들이 밥을 먹는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보호, 나아가선 아동의 건강과 행복을 생각하는 복지의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라고 정리했다.

"이번 캠페인 끝났지만, 더 큰 의미의 캠페인은 계속 진행될 것"

'결식 0(제로) 캠페인'을 통해 지난 겨울 163곳의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에게 제공한 상차림
▲ 3천원으로 차려진 밥상 '결식 0(제로) 캠페인'을 통해 지난 겨울 163곳의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에게 제공한 상차림
ⓒ 아름다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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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막바지, 강 사무국장이 "지자체마다 지원하는 비용의 격차가 크다"며 말을 꺼냈다.

"어떤 지역에선 천 원도 급식비라고 생각하는데 지하철에서 껌 하나가 천원이다. 사람이 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사실 그건 진정한 의미의 지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캠페인을 진행하며 (아이들이 밥을 먹도록 지원받는) 권리를 (지역아동센터에서)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돈으로만 지원하고 마는 게 아니라 현장이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받은 김 팀장은 "지역의 힘을 받아 성장해 온 생협의 사회적 책임은 그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본다"며 "앞으로도 지역에 필요한 일들에 생협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에는 충분히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성 위원장은 "(토론회가) 끝날 때 되니 가슴이 울컥하다"며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아동센터에서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저희 지역아동센터에서 활발하던 아이들이 정작 학교에서는 굉장히 조용하다는 말을 들었다. 기가 죽었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센터에서 먹는 밥이 그 아이들에게는 마음 편하게 먹는 첫 번째 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순간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뒤에서 토론회를 지켜보던 한 활동가는 눈물을 글썽였다. 긴 침묵 끝에 사회자가 말을 꺼냈다.

"4천여 명의 아이들을 먹여 다행이었고, 4천여 명만 먹여 미안했고, 4천여 명만 먹일 수 있어서 화났던 캠페인이었다. 오늘 토론으로 이 문제가 당장 밥만 먹이면 될 줄 알았더니 사회 구조적 해결이 필요한 다양한 문제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캠페인은 마무리되겠지만, 더 큰 의미의 캠페인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토론회 후, 김 팀장이 그간의 행적이 갈무리된 동영상을 참석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모두 말없이, 혹은 간간이 웃으며 이를 지켜봤다. 그렇게, 아름다운재단에 모였던 이들은 다시 '희망'을 나누고 건물을 나섰다. 그 희망은 아이들에게 맛있고 안전한 밥을 먹이겠다는 희망이었고, 나아가선 어른들이 나서 돌봄이 결핍된 아이들을 감싸 안겠다는 희망이었다.


태그:#결식 제로 캠페인, #아름다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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