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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 500여두를 비닐도 깔지 않은 채 매몰했다.
 돼지 500여두를 비닐도 깔지 않은 채 매몰했다.
ⓒ 홍영표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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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구제역이 발생한 뒤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 수는 3월 7일 오전 8시 현재  모두 347만968마리(농림수산식품부).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 규모만도 1조 원를 넘어섬으로써, 이번 구제역 사태는 산업적 측면에서 '사상 유례없는 대란'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산업적 피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구제역 사태가 대한민국의 동물복지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하나의 척도가 됐다는 점이다.

천도교와 원불교 등 종교단체와 동물사랑실천협회 등 동물단체는 지난 2월 23일 생매장 위주 구제역 살처분 방식의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공개된 영상은 지난 1월 11일 경기도 이천에서 돼지 1900마리를 산 채로 매몰 처분하는 과정을 촬영한 것이었다. 영상에서 들리는 돼지의 비명소리는 언론에 공개됐고 그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생매장 돼지' 동영상에 충격·경악, "인도적 살처분 해야").

2000년과 2002년, 2010년 초 구제역 발생 때만 해도 생매장 여부를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010년 11월 이후, 생매장은 공공연한 사실로 굳어졌다. 현재 '동물보호법 제11조'에 따르면 '가축전염병예방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동물을 죽이는 경우 가스법·전살법(電殺法) 등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으나 '비인도적인 도살'에 대한 기준과 처벌규정은 없다.

이에 따라 동물자유연대는 "충분히 기절상태에 이른 후 도살하도록"하는 규정을 법개정을 통해 마련하도록 수차례나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법률이 아닌 하위법령이나 지침에서 마련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답변만 할 뿐(2010년 9월 10일 '동물보호법 개정안 의견처리 결과 회신' 중에서), 다른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신속'하고 '용이'하게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건가

질병 발생 시 사용하는 중앙의 매뉴얼 역시 구체화되어 있지 않아 현장에서 비인도적 도살이 행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4년 작성된 '구제역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살처분 시 "사살 전살 타격 약물사용 등의 방법 중에서 '현장에서 사용이 용이하고 신속히 완료할 수 있는 방법'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확산방지'를 내세운 긴급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장에선 '신속하고 용이하게 죽이는 방법'이란 문구에만 방점이 찍힌다.

소의 경우 염화석시닐콜린(Succinylcholine chloride) 주사 후 굴착기를 이용해 매장하고 있다. 탈분극성 근이완제인 석시닐콜린만 단독으로 주사하는 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고통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수많은 수의학 가이드라인들은 마취 없이 '석시닐콜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2010년 초 살처분 방식에 대해 검역원에 직접 문의했다. '소에게 마취제는 사용하지 않은 채 석시닐콜린만 주사하지 않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담당자는 "그러면 그 큰 소를 어떻게 운반하겠냐"는 반응이었다.

그는 마취제 없이 석시닐콜린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건 안락사가 아니라는 사실 자체에 문제의식이 없었다. 사실상 소에게 석시닐콜린을 주사하는 이유는, 소의 인도적인 죽음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운반을 편리하게 하고 매장 후 부패한 사체에서 나오는 가스를 제거하기 위해 내장을 가르는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럼 반나절만에 돼지 2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안락사하라는 것입니까?"

지난 1월, 경기도 한 매몰지에서 살처분을 담당했던 한 방역요원은 생매장 사실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생매장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늘어가는 살처분 두수와 그 현장의 잔혹함에 무감각해져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우슈비츠와 다르지 않은 구제역 살처분 현장

 앉았다 일어나는 정도의 움직임만이 허용되는 어미돼지의 스톨. 감수성이 풍부하고 영리한 돼지는 이 스톨 안에서 평생 새끼만 낳게 된다. 2013년부터 EU에서 이 사육방식은 금지된다.
 앉았다 일어나는 정도의 움직임만이 허용되는 어미돼지의 스톨. 감수성이 풍부하고 영리한 돼지는 이 스톨 안에서 평생 새끼만 낳게 된다. 2013년부터 EU에서 이 사육방식은 금지된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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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경기도 모처에서 목격한 살처분 현장. 트럭에 실려온 돼지들은 그대로 쓸려 구덩이 안으로 떨어졌고 일부 돼지들은 강제로 몰려 구덩이까지 들어가야 했다. 매질과 발길질이 가해졌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돼지들은 굴착기가 찍어 떨어뜨렸다. 물론 모두 살아있었고 돼지들의 꽥꽥거리는 비명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감수성이 풍부한 소와 돼지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다른 동물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현재 동물보호법 7조 1항 2조에 따르면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는 '학대'에 속한다.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들이 사망하거나 다치는 사례들은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정신적 충격의 정도를 쉽게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막상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 이해가 된다.

2월 23일 언론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는 내내, 1월에 목격한 악몽의 현장이 다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생매장 현장을 종종 아우슈비츠에 비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문명건설 이면의 야만적 학살에 대한 반성이 유럽에서 전개되었다. 나치는 유대인을 비롯 동성애자, 집시, 공산주의자, 장애인 등 600만 명을 학살했다.

니얼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에는 1차 대전에서 2차 대전, 그리고 그 이후 행해진 인공청소로 1억 6700만에서 1억 8800만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무서운 것은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뿐 아니라 학살이 진행될수록 무감각해지는 사람들의 심리다. 처음에는 구토를 하며 괴로워하던 병사들도 나중에는 학살을 하며 농담을 하고 음악을 듣게 된다는 점이다. 늘어가는 살처분 가축의 숫자는 이제 사람들에게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동물들의 복지는 안중에 없는 대한민국 정부

동물단체들의 이런 염려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동물복지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안타까운 수준이었다. 지난 1월 26일 국회소회의실에서는 대한민국 구제역방역 정책에 대한 평가와 개선 방향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관은 동물복지에 대해 묻자 "동물복지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정부와 방역담당 공무원들 역시 정신적으로 힘이 듭니다. 이럴 때일수록 온 국민이 힘을 합쳐야..."

외부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온 국민이 정부를 믿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외침은 역사적으로 결코 낯선 장면이 아니나, 정부의 주장 자체가 매우 비과학적이고 근시안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숨겨진 진실을 모른 채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으니 안심하고 우리 축산물을 더욱 사랑하자"는 공허한 정부홍보문구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수많은 시민들이 생매장 사실에 경악하고 있고 많은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한국은 구제역이 없는 지역'이라는 전제를 깔고 문제 분석을 시작한다는 데 있다. 때문에 외국에서 유입된 바이러스는 완벽하게 막아내기만 하면 청정지역유지는 가능한 것이고 설사 발병하였더라도 빠른 시간 안에 살처분하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국제교류는 일반화되어 있고 매년 2000만 명이 드나들고 결혼이민자의 수가 16만 7000명이며 4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있는 한국. 과연 완벽하게 바이러스를 차단할 수 있을까.

'조속한 시일 안에 비발생국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는 정부와 정치권, 축산업자들의 강한 의지는 언론을 통해 공공연하게 보도돼 왔다. 빠른 시일 안에 동물보건기구(OIE)로부터 구제역 비발생국 지위를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에 빨리빨리 살처분하는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후진국 질병인 구제역이 발병하는 것은 선진국 대한민국으로서는 명예롭지 못한 일이고 국제기구를 통해 수출허가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OIE의 지침에 따라 살처분을 한다는 정부는 왜 2005년에 발표된 OIE의 도살관련 보고서는 모른척하는 것일까?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지침이 명시되어 있다.

"살처분 시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이나 스트레스는 최소화되어야 한다. 살처분에 이용되는 방법은 반드시 인도적이고 효율성이 있어야 하며, 사람과 환경 모두에 안전해야 한다. 살처분 작업은 수의공무원의 감독 하에 적합한 훈련을 받은 충분한 수의 인원이 이를 보조해주어야 한다. 살처분 작업에서는 살처분 대상인 모든 동물들이 죽음에 이른 상태, 즉 심장이나 호흡기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좁은 국토에서 너무 많은 가축을 키우고 있다

 A4 크기의 공간에 세 마리가 빼곡히 들어가 있는 전형적인 배터리 케이지. 2012년부터 EU에서는 이와 같은 비인도적 사육방식이 전면 금지된다.
 A4 크기의 공간에 세 마리가 빼곡히 들어가 있는 전형적인 배터리 케이지. 2012년부터 EU에서는 이와 같은 비인도적 사육방식이 전면 금지된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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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 역시 심각하다. 매몰지역의 침출수 유출 문제는 최근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환경단체는 정부의 구제역 가축 대량 살처분 조치에 반대하며 구제역의 실제 치사율이 낮은데 비해 대량 살처분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매몰지의 침출수 유출 피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생매장을 금지하고 침출수가 유출되지 않도록 고강도 폴리에틸렌 필름(HDPE)을 매몰지에 깔아야 하지만 현행 '구제역 긴급 행동 지침'엔 생매장 금지 조항조차 없는 상황이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동물은 당연히 비닐을 찢을 수밖에 없고 침출수가 지하수나 하천으로 흘러들어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비록 치사율은 낮지만 구제역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선 살처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 시각엔 돼지와 소는 가축이고 사람이 먹기 위해 죽음이 예견되어 있는 동물이라는 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일상적으로 먹기 위한 소·돼지의 인도적인 도살에 대한 논의 역시 대한민국에서는 매우 낯선 개념이다. 인도적인 도축에 대한 기준과 법조차 미비한 사회, 건강한 가축을 죽이는 문제에도 무감각한 사회에서 병든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 얼마나 윤리적인 태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동물의 희생을 딛고 산업을 이루고 삶을 영위하는 만큼, 그에 따른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 때문에 인도적인 죽음과 삶의 질 문제를 동물에게 확대해야 한다. 300만에 달하는 동물들의 비명이 헛된 죽음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선 한국축산업의 근본적 반성이 필요하다.

이번 대량 살처분 사태는 좁은 국토에서 너무 많은 가축을 키워서 비롯된 것이다. 질병이 발생했을 때 500m 혹은 3km 내의 모든 가축을 전멸시키는 것은 양돈단지, 양계단지 등 축산농가가 한 곳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8일 대표적인 동물복지축산 달걀농장인 청솔원을 방문했을 당시 정진후 대표는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농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을 깎을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유럽에서 동물복지가 가능한 이유는 이 때문

더 빨리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동물의 최소한의 복지조건조차 왜곡하는 시스템, 부자가 먹던 고기를 서민이 먹게 되었다는 육류소비의 '왜곡된 평등' 안에 숨겨진 진실. 육류 위주의 서구식 식단이 근대화이고 선진화일까. 그러나, 이를 위해선 동물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1년 중 350일을 돌아 눕기도 힘든 길이 2m, 폭 60cm 크기의 우리(스톨)에서 지내야 하는 번식용 돼지들, A4 한 장 크기의 철망 안에서 여러 마리가 함께 사는 산란계 닭들까지….

특히 닭들은 지나치게 높은 밀도에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데 농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닭의 부리와 발톱을 잘라내기까지 한다. 또 살코기를 많이 생산해 내는 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수정하기도 하는데, 때문에 유전자의 다양성이 결여됐다. 또 질병예방을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항생제로 인해 동물들은 면역력을 상실했다. 질병은 이렇게 이미 예견돼 있었다.

우리는 구제역 사태를 통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시스템의 냉정한 진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생매장된 동물들이 나오게 된 데에는 좀 더 맛있는 고기를 싸게 많이 먹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이 한 몫 했다. 이런 축산시스템의 성격 때문에 제레미 리프킨은 현대축산업을 '차가운 악'이라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소비가 줄어들면 생산시스템도 당연히 변화하기 때문이다. EU에서 2005년 2만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Eurobarometer 2005)에 의하면 대상자의 57%가 복지가 잘 유지된 산란계가 낳은 달걀에 대해 더 비싼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유럽의 동물복지는 이런 소비자 의식이 있기에 가능했다.

'슬로 라이프'를 최초로 제창한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 교수는 <행복한 경제학>에서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 없게 만드는 소비자본주의의 성장이 아니라 나눔의 불편함을 강조했다. "경쟁을 하듯 하루하루를 급박하게 살기보다는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과의 조화를 되찾고, 주변 사람들과 유대를 쌓고, 느린 시간을 살 때 비로소 행복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삼겹살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줄이고 맛있는 입맛만을 추구하려는 욕심을 줄이는 작은 실천이 더 이상의 비극을 막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작은 촛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명에 대한 배려와 나눔을 통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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