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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 누구는 '위장노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닌, 하는 일은 노동자인데 법적으로는 사업자인 사람들.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 택배기사, 퀵서비스 배달원, 대리운전자, 화물차운송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의 보호에서 배제돼 왔다 <오마이뉴스>는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시리즈를 통해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지를 살펴보고 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충남 공주에서 덤프트럭 운전을 하는 채재흥씨
 충남 공주에서 덤프트럭 운전을 하는 채재흥씨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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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마이뉴스> 기자가 왔는데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들 보슈."

취재하러 간 기자가 취재를 당했다. 지난 11일 4대강사업이 한창인 충남 공주 금강유역 공사현장에서 덤프트럭을 타고 취재 중인 기자에게 무전기를 통해 질문이 쏟아졌다. 하루 종일 차 안에서 혼자 일하는 덤프트럭 건설노동자들은 일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무전기로 대화를 나눈다.

"<오마이뉴스>도 광고주 같은 외부 압력을 받나?"라는 진지한 질문에서부터 "<딴지일보>를 재밌게 보고 있다. 아는 분 있으면 재밌다고 좀 전해 달라"는 엉뚱한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기자를 요리조리 구워 삶던 노동자들은 "기자라는 직업에 우월감을 가지고 있나?"라는 질문으로 결국 기자를 케이오(KO)시켰다. 무전기에서 들려온 마지막 음성은 "우리 덤프트럭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잘 알려 주시길 바란다"는 당부였다.

8200만원짜리 벤츠트럭... 하지만

새벽 어스름이 완전히 물러난 오전 8시, 차재흥(46)씨의 25톤 덤프트럭에 올라탔다. 운전석은 성인 남자의 머리보다 높았다. 손잡이를 잡고 사다리를 타는 기분으로 발판 세 개를 딛고 올랐다.

차씨는 지난 1997년 대형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이듬해부터 대형트럭 운전을 시작해 올해로 경력 14년차가 됐다. 그는 전국건설노동조합 공주지회 사무장을 맡고 있다.

"처음 사회생활은 서울 구로동에서 시작했어요. 인천에 살면서 5년 정도 일했는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고향인 공주로 내려와서 세탁소를 하게 됐어요. 세탁소를 하면서 결혼도 하게 됐죠. 그 뒤에 누님이 계신 서울 잠실에서 세탁소를 하게 됐는데 영 수지가 안 맞았어요. 도저히 안 돼서 몇 달 만에 다시 내려왔고 돈을 많이 까먹어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시작한 게 대형트럭 운전입니다."

사람 키보다 높은 25톤 덤프트럭 운전석.
 사람 키보다 높은 25톤 덤프트럭 운전석.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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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 'SK에너지'에서 유류차 운전기사로 일하다가 15톤 덤프트럭을 구입해 사업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덤프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덤프트럭 노동자들 중에는 차씨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 운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면허만 있으면 다른 사업자의 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로 일할 수 있고, 트럭을 구입하는 비용이 웬만한 장사를 하는 것보다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돈을 주고 트럭을 구입해 사업자로 등록해서 일을 하는 덤프트럭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일하면서 건설사에서 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여서 차량과 관련된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차씨가 현재 몰고 있는 벤츠 25톤 트럭은 2009년에 85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일명 '앞사발이'(앞바퀴가 4개인 트럭)로 불리기도 한다. 이 트럭의 새차 가격은 1억6000만 원에서 1억8000만 원 정도다.

차씨는 2002년도에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25톤 트럭을 새 차로 구입한 적이 있었다. 당시 돈이 부족했지만 마땅한 담보가 없던 그는 금리가 비싼 캐피탈에서 융자를 받아 트럭을 구입했다. 그는 5년 가까이 매달 수백만 원씩 이자와 융자를 갚아나가며 온전한 자기 차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2006년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일할 수 있는 현장이 줄어 돈을 갚으려면 트럭을 다시 되파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와 비슷한 사정에 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중고 트럭을 내놓으면서 값이 폭락해, 결국 처음 트럭을 구입할 때 냈던 초기 인도금보다 못한 가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현금이 많이 있겠습니까? 대부분이 캐피탈에서 융자를 끼고 할부로 구입하게 되죠. 2억짜리 벤츠 트럭을 인도금 3000만~5000만 원 내고 구입하면, 매달 이자까지 합쳐서 300만~500만 원 정도를 5년 동안 내야 해요. 저도 이 일 14년 동안 하면서 아들, 딸 하나씩 키우고 하는 데 돈 다 썼지 저축 하나 못했습니다."

그가 일하는 4대강 공사현장의 하루 임금은 35만 원. 한 달 내내 일한다면 10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수입의 대부분을 차량 할부금을 갚는 데 써야 한다. 건설현장 일을 매일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기가 좋지 않으면 한동안 아예 일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도 할부금은 매달 갚아야 한다. 거기다 차량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혹여 사고라도 나면 일을 못해서 돈을 벌 수도 없고, 엄청난 수리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앞타이어가 하나에 65만 원 정도고, 뒤에도 바퀴가 8개 있는데 하나에 44만 원이에요. 7~8개월마다 갈아줘야 하는데, 보통은 한꺼번에 다 바꾸게 됩니다. 그럼 그 비용만 생각해 보세요. 사고라도 한 번 나면 정말 큰일이죠. 이 트럭 가져와서 열흘 만에 조금 기울어진 땅에서 덤핑(적재함을 기울여 화물을 쏟는 것)을 하다가 트럭이 옆으로 넘어졌어요. 수리비만 1000만 원이 들었습니다."

덤프트럭 노동자들은 차씨처럼 업무 중에 사고가 나도, 차량 수리와 본인 치료에 드는 모든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산업재해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차씨는 "개인적으로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25톤 덤프트럭과 같이 사고 위험이 높고 수리비용이 많이 드는 대형트럭은 자차 보험료가 연간 1500만 원 정도"라며 "위험하고 사고가 많이 나는 도로 위에서 일을 하지만 비용이 부담돼 대부분은 자차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할부 끝나면 내 차를 만들려고 일하는 건데, 사고라도 한 번 나면 다 날리게 된다"고 씁쓸해 했다.

산재가 적용되지 않으면서 생기는 문제는 트럭뿐만이 아니다. 오랜 운전으로 운전자들의 무릎, 허리 등 관절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도 많지만 직업병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위험한 공사현장에서 다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지만 현장의 건설사와 국가 모두 이들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

차씨는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사람들도 일하는 동안은 그 현장의 노동자이지 않냐"며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들도 산재 혜택을 받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하루도 쉬지 않는 4대강 공사... 굴착기는 24시간 맞교대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 중인 충남 공주 4대강 사업 현장.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 중인 충남 공주 4대강 사업 현장.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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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차씨는 기자를 인근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내심 요즘 화제인 '함바집'을 가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그가 기자를 데리고 간 곳은 일반 식당이었다. 논란이 많은 4대강 공사 현장이고, 아무래도 이런 취재를 건설사 측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덤프트럭 노동자들은 각자가 하나의 사업자로 등록돼 있지만, 건설사에서 임금을 받기 때문에 일반 기업의 노사관계처럼 종속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쉽게 말해 일반 제조회사의 하청업체 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원하청 관계의 회사들처럼 덤프트럭 노동자들도 건설사의 횡포에도 쉽게 반발하지 못한다. 건설사가 배차를 내주지 않으면 일 자체를 할 수 없다. 건설사 쪽에서 보면 고용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업무를 보장할 필요도 없고 해고(계약해지)를 해도 아무런 법적 부담이 없다.

차씨가 일하는 4대강사업 금강 사업 구간의 덤프트럭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뺀 하루 10시간을 일하고 2시간 야간작업까지 해야 한다.

"4대강 공사가 엄청 서두르고 있는 건 맞습니다. 공사를 빨리 진행하려고 하니까 노동자들에게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죠. 우리는 하루 10시간 일하고 굴착기은 24시간 맞교대로 쉬지 않고 일합니다. 지난 1월 1일 신정 때도 쉬지 않았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공사를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차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이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매달 28~29일을 일했다. 공사현장에서 준설토 적치장까지 5km 정도 구간을 하루에 약 30번을 왕복해야 하는 일을 세 달 동안 쉼 없이 한 것이다.

그는 "다른 현장 같은 경우는 한 달에 많아야 20일 정도 일하지만 4대강 현장은 쉬지 않고 일한다"며 "이 공사가 끝나면 또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 일을 해야 하고, 건설사에서도 그렇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여가 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는 차씨에게서 찾아 볼 수 없었다.

건설노조는 현재 하루 10시간, 추가 작업까지 많게는 12시간 이상을 일하는 건설현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

하청의 하청업체... 경유 대신 보일러 등유 넣기도

공사현장 함바집에서 음식을 가져다가 먹는 천막 안. 식사가 끝난 후 촬영이 가능했다.
 공사현장 함바집에서 음식을 가져다가 먹는 천막 안. 식사가 끝난 후 촬영이 가능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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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나고 또 다시 강가에서 흙을 싣고 들에 가서 붓는 같은 업무가 반복됐다. 인근 도로에는 수십 대의 덤프트럭이 분주하게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동료들의 무전기 수다도 그치고 무료한 시간이 계속될 무렵, 차씨는 자신의 차 유리에 붙어 있는 빨간 건설노조 스티커를 가리켰다.

"여기 다니는 덤프들은 저 스티커를 붙인 차와 안 붙인 차가 있습니다. 노조에 가입 안한 사람들 가운데는 업체를 끼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건설노조는 노조가 직접 건설사와 교섭을 맺어서 배차를 받고 수수료 내는 거 전혀 없이 임금을 다 받아 가지만, 다른 차들은 6% 정도 업자에게 수수료를 내야 해요."

차씨의 말에 따르면 '하청의 하청'이 있다는 것이다. 덤프트럭 두 대를 가진 업자가 건설사와 10대를 운용하는 계약을 맺고 나머지 8대를 다른 운전자들에게 알선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형식이다.

건설사가 수십 대에 달하는 덤프트럭 노동자들과 계약을 맺지 않고 대량으로 한 업자와 계약하면서 이런 구조가 발생했다. 개별적으로 일을 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은 불리한 조건이지만 다른 곳에서 일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알면서도 그냥 일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이 다른 모순이 건설현장에서도 발생한 것이다.

이런 형태는 업자들 사이에 단가경쟁을 일으켜 또 다른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으로 업무량이 많지만 그전에는 업자들 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업자들은 공사를 따기 위해 단가를 낮췄고 개별 노동자들은 더 불리한 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낮은 단가로 공사를 따낸 업자들은 자신들의 수익을 보존하기 위해 수수료를 올리거나 적은 인원으로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게 했다. 노동자들에게 과적을 지시하기도 해 사고 위험을 높였다. 결국 건설사는 낮은 단가로 덤프트럭을 사용하며 이득을 보고, 업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덤프트럭 노동자들만 피해 보는 구조다.

지난해 말 언론에 보도됐던, 화물차에 경유 대신 경유와 실내등유를 섞은 보일러 등유를 주입하는 문제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일어났다. 단가를 낮게 계약한 업자들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경유보단 싼 보일러 등유를 공급한 것이다. 차씨도 이 같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현장에 오기 전에 세종시 건설현장에서 일했는데, 거기서도 보일러 등유를 넣었습니다. 그 자체가 불법이지만 대부분의 덤프트럭 운전자들은 업자가 주는 기름을 그냥 넣을 수밖에 없죠. 그러면 차도 금방 망가집니다. 공해도 더 발생하겠죠. 업자들이 싼 기름 넣고 세금까지 아끼려고 하는 일에 피해는 다 우리가 받습니다. 여기 현장에서는 건설노조가 경유만 넣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얼마 전에 근처 현장에서 주유할 때 시료검사 해보자고 하니까 업자가 거부하고 도망친 적이 있어요. 그러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노동자 뭉쳐야 변할 수 있는데..."

차재흥씨의 업무 일지.
 차재흥씨의 업무 일지.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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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해가 어둠을 재촉하기 시작할 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발 속에서도 굴착기와 덤프트럭은 쉼없이 움직였고, 차씨의 업무가 기록돼 있는 '준설토 이동기록지'도 거의 다 채워지고 있었다.

오후 6시. 정해진 업무가 끝나는 시간이지만 그는 야간작업으로 두 시간을 더 일해야 한다. 저녁 식사로는 빵과 우유가 나왔다. 차씨와 기자가 덤프트럭에서 내린 것은 단 두 번, 점심 먹을 때와 소변을 보기 위해서였다. 취재를 마치려는 기자에게 그가 말했다.

"건설노조 공주지회가 조합원이 많을 때는 280명까지 됐습니다. 지금은 무늬만 조합원까지 180명 정도예요. 예전에는 업자들이 나눠주는 일자리가 태반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업자들이 사람들한테 노조에 협조하지 말라고 하면서 윽박질렀죠. 요즘에는 노조에서도 사업장을 따와요. 조건도 업자들보다 좋고 그러다 보니 다시 노조를 하려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하는 노조가 안 됐으면 좋겠는데... 더 많이 모이고 우리가 뭉쳐 있으면 변할 수 있는데 말이죠."

야간작업을 가는 차씨를 두고 먼저 트럭에서 내렸다. 다시 현장으로 달려가는 그의 커다란 트럭 뒤로 다른 트럭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차재흥씨의 25톤 덤프트럭이 기자를 내려놓고 현장으로 떠나고 있다.
 차재흥씨의 25톤 덤프트럭이 기자를 내려놓고 현장으로 떠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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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특수고용노동자, #특수고용, #덤프트럭,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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