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자들이 "교수님 사랑합니다.힘내세요."라고 외치며 좁은 병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교수님은 행복해 하셨다. 꼭 건강이 회복되시길 기원합니다.
 제자들이 "교수님 사랑합니다.힘내세요."라고 외치며 좁은 병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교수님은 행복해 하셨다. 꼭 건강이 회복되시길 기원합니다.
ⓒ 손창연

관련사진보기


한양대학교 신방과 80년대 학번을 중심으로 리영희 교수님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원래
연희동 아드님 댁으로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23일
교수님이 입원하신 병원으로 직접 방문하게 되었다.

오후 3시 반쯤 일행이 병실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자 도움을 받아 미음인가를 드시고 계시던 교수님께서는 드시던 것을 중단하시고 한명 한명 찬찬히 우리들의 얼굴을 보셨다. 그리고 하신 첫 말씀.

"(제자들의 방문이) 너무나도 감격스럽다. 참 고마운 일이다."

교수님께서는 "고마운 일이야"를 몇 번이고 반복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방문한 제자들도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펜과 말씀으로 유신독재와 전두환 정권의 폭압과 싸우고 국민들에게 빛을 주셨던 거인 리영희 교수님은 단지 제자들 몇 명의 병문안에 그만 감동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너무나 인간적이신 분이셨다.

바로 그런 인간적임이 야만적이었던 역사적,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서 오직 인간적이고자 했던 인간 리영희를 대한민국의 '사상적 은사'로 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영희 교수, "많은 이들 깨우치고 진실 알게된 건 보람된 일"

"'내일 10년 20년은 더 사실 것'이라고 보도 나갈 것입니다. 오보가 되지 않도록 곡 쾌유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교수님께 하이파이브를 권유드리자 유쾌하게 손을 맞대셨다.
 "'내일 10년 20년은 더 사실 것'이라고 보도 나갈 것입니다. 오보가 되지 않도록 곡 쾌유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교수님께 하이파이브를 권유드리자 유쾌하게 손을 맞대셨다.
ⓒ 손창연

관련사진보기

교수님께서는 "노자가 말하듯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육신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존재의 한계에 대한 순응을 말씀하신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준비해간 아주 작은 꽃 하나에도 감동하셨다. 한참 동안을 꽃을 보시면서 많이 행복해 하셨다. 작은 꽃에는 '대한민국의 양심을 깨우신 교수님! 꼭 쾌유하셔야 합니다!!'라고 써져 있었다.

"세월이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라는 필자의 질문에 머뭇거림 없이 즉각적으로 "팔십 평생이 나에게는 짧지 않았다. 아주 아주 길었다. 반복된 강제해직과 수감 등 힘든 시간이 있었다. 출세도 못하고 성공도 못한 바보였다" 라는 역설적인 말씀을 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아닙니다. 교수님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대화>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셨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깨우침을 주셨기 때문에 가장 성공한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늦었지만 저희들이 교수님을 뵈러 온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깨우치고 진실을 알게된 것은 보람된 일이었다"면서 한 지식인으로 일평생을 정직하게 사신 지난 과거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하였다. 참 평화로워 보였다. '지식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가장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정답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또 제자들은 "그동안 선생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책과 강연 등 끊임없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2004년 여의도에서의 이라크 파병반대 말씀, 2009년 인권위 강연 등에 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건강 회복하셔서 더 좋은 말씀 해주십시오"라고 했고 교수님께서는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교수님께선 2009년 인권위 강연에서 '지금은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파시즘 시대 초기'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산 사람으론 내가 처음인 김삼웅 선생 평전, 걸맞은지 모르겠다"

리영희교수님께서 자신의 저서<대화>에 사인하고 계신다. 2000년 중풍으로 심하게 떨리는 손을 자신의 왼손과 주변의 도움을 받은 채 서명을 이어 나가신다. 옆에는 제자들이 준비해간 '대한민국의 양심을 깨우신 교수님! 꼭 쾌유하셔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꽃이 놓여있다.
 리영희교수님께서 자신의 저서<대화>에 사인하고 계신다. 2000년 중풍으로 심하게 떨리는 손을 자신의 왼손과 주변의 도움을 받은 채 서명을 이어 나가신다. 옆에는 제자들이 준비해간 '대한민국의 양심을 깨우신 교수님! 꼭 쾌유하셔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꽃이 놓여있다.
ⓒ 손창연

관련사진보기

어떻게 나의 상황을 알게 되었냐는 교수님의 물음에 필자가 "<민중의 소리> 기사와 김삼웅 전 독립관장의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답하자 교수님께서는 "김삼웅 선생이 쓴 리영희 평전이 연말에 나올 것이다. 김삼웅이 평전을 쓴 인물로는 죽은 사람 중에 안중근, 장준하, 김대중 등이 있고 산 사람으로는 내가 처음인데 내가 그만한 위치에 걸맞은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준비해간 교수님 저서 <대화> 10권에 저자 사인이 가능하신지 여쭙자,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2000년 중풍 후유증으로 심하게 떨리는 손으로, 10권의 책에 모두 저자 사인을 해주셨다. 사인이 끝나고 "교수님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외치면서 병상에서 사진 촬영을 하였다. 필자는 "교수님! 앞으로 10년, 20년은 더 사실 수 있다고 보도가 나갈 것입니다. 오보가 되지 않도록 반드시 쾌유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교수님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면회 후 우리는 교수님이 평생동안 거대한 야만과 싸워온 힘이 무엇일까를 이야기하다 평생을 함께하신 사모님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사모님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면회하는 동안 중간중간 도움말씀을 주시면서 여러 부분을 배려해주셨다. 교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난다고 면도도 하셨다고 일러 주셨다. 교수님은 저서와 인터뷰 등에서 사모님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표현하시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과 사모님의 건강을 마음 속 깊이 기원한다.


태그:#리영희, #대화, #한양대 신방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