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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이마트 피자'
 이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이마트 피자'
ⓒ 이마트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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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피자 논쟁'이 있었다. 이마트가 기존 브랜드 피자(지름 33cm)보다 훨씬 크고(지름 45cm) 값도 저렴한(1만1500원) '이마트표 피자' 판매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지난 7월 역삼점에서 이 피자를 팔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자 피자 판매 매장을 40여 곳으로 늘릴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마트의 이런 영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영세업자나 누리꾼들 사이에서 "대기업이 피자까지 팔아서 동네 피자집 다 망하게 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일었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직접 누리꾼들과 설전을 벌이며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정용진 부회장은 "우리 목표는 서민들이 저렴하게 드실 수 있는 피자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마트에 가면 떡볶이, 국수, 튀김 안 파는 게 없는데 왜 피자만 문제 삼느냐"고 반격했다. 이어 그는 "고객의 선택이다,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냐? 님이 재래시장을 걱정하는 것만큼 재래시장이 님을 걱정해 줄까요"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논쟁은 일방의 승리도, 합의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시간의 흐름에 묻혔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그 '피자 논쟁'의 승자가 누군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일부에선 비판하고 있지만, '이마트 피자'는 예약을 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야만 먹을 수 있는 '값싼 명품 피자'가 됐다. 아울러 이마트는 단 며칠의 트위터 논쟁으로 광고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누렸다.

반대로 브랜드가 아닌 소위 '동네피자' 또는 '시장피자'에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상인들은 심각한 생존의 위협에 봉착했다. 아울러 정 부회장과 논쟁을 벌였던 누리꾼들은 '제 뒤치다꺼리도 못 하면서 남 걱정이나 하는 이념 추종자'가 돼버렸다.

9월 이마트 피자 논쟁의 승자, 이미 난 예견했다

지난 2007년 1월 광명시장 한가운데 들어선 이마트 메트로 탓에 광명시장 유동인구가 40% 급감했다. 사진은 지난 7월 27일 촬영한 광명시 이마트 메트로 매장
 지난 2007년 1월 광명시장 한가운데 들어선 이마트 메트로 탓에 광명시장 유동인구가 40% 급감했다. 사진은 지난 7월 27일 촬영한 광명시 이마트 메트로 매장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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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이 착잡한 논쟁이 벌어질 때, 이미 승자가 누군지 예견했다. '윤리와 법리'의 논쟁. 상생해야 한다는 윤리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자본의 법리를 넘어 설 수 없다. '동네피자집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상생의 논리는, '당신들이 우리보다 더 좋게 해서 싸게 팔면 되지 않느냐, 소비자의 선택권을 왜 제한하려고 하느냐'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 지상주의를 넘어설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대형마트, 대형자본이 투자된 슈퍼(SSM)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손님을 잃어버린 재래시장, 동네슈퍼, 동네피자집은 가계 임대비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몇 달을 버티다 빚만 떠안은 채 문을 닫고 만다. '사장님'이었던 이들은 대리운전기사로, 그들의 아내는 비정규직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줄서야 하는 무서운 자본의 질서가 우리 사회에 점점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며칠 전 저녁 늦게, 동네 골목에서 작은 문방구 겸 서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을 집 가까운 대형마트 앞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자전거 뒷자리에 생필품, 식료품을 가득 싣고 나오는 길이었는데, 외면하고 말았다. 서점에 갈 때마다 "인터넷 서점, 대형마트 문구 판매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하소연을 연발하던 사장님. 하지만 그도 조금이라도 값싼 물건을 사기 위해선 자신의 생계 수단을 옥죄는 대형마트에 발을 들여 놓아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었던 것이다.

어디 이 사장님 뿐이랴. 아들까지 내세워 대형마트에서 소주를 박스로 떼다가 다시 동네 손님에게 파는 동네 슈퍼 아저씨. 삼겹살이 라면 값보다 싸다는 할인행사엔 정육점 위층에 사는 아줌마도 줄을 선다. 주말마다 찾던 피자집을 '언제 그런 곳이 있었냐'는 듯 쉽게 외면하고 대형마트 피자를 찾는 사람들. 한동네에서 서로의 손님으로 지내던 사람들은 이제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대형마트 할인행사 전단지에서 소비를 설계해야 하는, '마감세일 인생'들이 돼버렸다.

소비자에게 가장 싼값에 가장 좋은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는 대형자본과 대형마트들(실제 그러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싸게 사는 것이 미덕이고 카드로 계산하고 포인트 받고, '1+1행사'는 당장 필요 없어도 사 놓는 것이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하는 소비문화. 이 런 대자본과 소비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민의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대형자본들은 날마다 비대해지며 또 한축의 서민들은 대형자본의 팽창에 생계 수단마저 잃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상생이 무너진 지금, 유일한 길은 법과 제도 보완

대자본에 상생을 위한 윤리도, 합리적이고 이념적인(상생의 이념) 소비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 돼버린 지금, 유일한 치유책은 상생을 위한 법과 제도의 제정과 보완이다.

그래서 자영업자와 시민단체들이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전통시장 반경 500m 안에 SSM 입점을 막는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과 대기업 지분이 50%를 초과하는 가맹점 형태의 SSM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대기업·중소기업상생법(이하 상생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런 요구와 속절없이 무너지는 영세자영업자 현실 앞에 정치권이 가세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유통법과 상생법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여당인 한나라당도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인 홍준표 최고위원이 나서서 추석 명절 전인 9월 13일 두 법안의 국회 조속 처리를 담은 서민 대책 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유통법과 상생법의 국회 통과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추석 이후 분위기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유통법과 상생법의 분리 처리를 주장했던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 10월초부터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법안 가운데 유통법만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고 슈퍼마켓(SSM) 팽창을 규제할 수 있는 상생법의 처리를 미루자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주장이 표면으로 드러나자 정부와 여당은 이곳저곳에서 상생법 연기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10월 1일 정부와 한나라당이 SSM 규제 2대 법안 가운데 상생법 처리를 유보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산교섭본부장은 지난 3일 한-EU FTA 정식 서명이 있기 전 기자들을 만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진입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SSM 쌍둥이법'이 모두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2011년 7월 1일 발효될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6일 "이번 정기국회에서 유통법과 상생법은 분리 처리한다는 것이 당의 방침"이라며 상생법 처리 유보를 기정사실화 했다. 이렇게 며칠 만에 상생법 처리는 물 건너가는 듯했다.

그러나 또 한번 반전이 있었다.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인 홍준표 최고위원이 13일 특정 외국계 대형유통회사가 훼방을 놓아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 관련법이 처리되지 않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특정 대형마트 업체가 자국인 영국 정부에 로비를 해서, 영국 정부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시비를 걸고 있으며, 이 업체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상생법 통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폭로를 하고 나선 것이다.

<한겨레>는 홍 최고위원이 지목한 외국계 대형유통업체는 현재 대형마트 홈플러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기업형 슈퍼(SSM)을 확장하고 있고, 영국 테스코가 대주주(지분 94.56%)인 삼성 테스코라고 보도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이 말한 사실만으로도 우리나라 대형 자본이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야기한 '상생의 기업문화'를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홍 최고위원의 이런 주장이 정말 사실이라면, 정부와 여당도 '상생법 연기 운운'이 국가를 위한 것이었는지, 압력에 대한 굴복이었는지 밝혀야 한다.

18일엔 대형마트들의 로비에 대한 또다른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법사위에서 "특정 대형마트의 L회장이 협력업체인 D건축사무소의 C대표를 시켜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캠프에 한 달에 상당 금액의 월정액을 보냈고 에쿠스 차량과 기사를 제공했다는 제보가 입수됐다"고 주장했다. 이를 지켜보는 영세 자영업자와 재래상인들은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헤비급과 라이트급 간 불공정 경쟁를 심판하고 조정해야 할 정부나 정권이 이와 같이 자본과 유착관계를 형성했다면 이는 운동경기에서 심판 매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수사기관의 철저한 진명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기업들의 이런 모습, 대통령 말에 배치되는 행위

광명시장에서 10년째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윤철(50)씨는 "이마트 메트로 때문에 매출이 40% 급감했다"며 "방법이 없어 체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명시장에서 10년째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윤철(50)씨는 "이마트 메트로 때문에 매출이 40% 급감했다"며 "방법이 없어 체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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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자본의 이런 처사야말로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하는 '상생의 기업 문화'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이며, 국민의 요구를 수렴해서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 장치를 만들자는 국회의 입법 행위를 가로막는 행위다. 정기국회에 맞춰 생겨나는 이익집단 간 압력 관계와는 전혀 다른 이번 사태는 국정 유린에 버금가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유통법과 상생법은 SSM 등 대형 마트의 확장을 막고 자영업자의 최소한의 생존을 지킬 수 있는 쌍둥이법으로 이야기된다. 상생법이 없는 유통법만으로는, 아무런 규제 효과도 볼 수 없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직영점과 체인점을 규제할 수 있는 상생법 처리를 미루고, 전통시장 500m 안을 전통시장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유통법만 처리한다는 것은 생색내기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지난 15일 보도에 따르면 홍준표 최고위원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유통법과 상생법 모두 통과시키는 것에 여야가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변석개하는 상생법 처리 논란이 이번 국회에서 순조롭게 처리될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소비는 이념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더불어 사는 것, 상생 운운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 하라고 한다. 사기 싫으면 안 사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절대 위기를 맞은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 재래시장 상인들, 서민들이 우리 옆에 있다. 소비는 이념이다. 인간의 노동이 국가와 기업과 개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념적 행위이듯, 소비 또한 나누어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상생 이념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

상생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상생 기업 문화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상생을 위한 제대로 된 상생법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태그:#상생법, #SSM, #친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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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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