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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나들이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고갯길을 올라가는 거였답니다. 해발1000m가 넘는 산이 스무개나 된다는 건 알고 갔지만, 이리도 높은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 거창 나들이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고갯길을 올라가는 거였답니다. 해발1000m가 넘는 산이 스무개나 된다는 건 알고 갔지만, 이리도 높은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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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정말로 기가 막히네. 우리가 저길 잔차 타고 갔다 왔단 말이야?"
"하하하 그러게 말이라.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거라."
"미친 거 맞아여. 안 그러고야 우째 저길 잔차 타고 갈 생각을 하겠나?"
"하하하! 맞네. 맞아. 미친 거 맞아여!"

남편이 몇 해 앞서 여름휴가 때 다녀왔던 경남 거창군을 지도를 펼쳐놓고 보고 있어요. 마침 '다음 로드뷰 지도'에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던 길목이 구석구석 실제로 찍은 사진으로 나오는데 참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더군요. 가는 길 내내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이 펼쳐집니다. 만약에 그때에도 이런 로드뷰 지도가 나왔다면 우리가 과연 그 먼 길, 그 힘든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녀올 수 있었을까? 아마도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을 거예요.

거창 사람보다도 길을 구석구석 더 잘 알아…….

우리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방방곡곡 누비고 다닌 지가 벌써 몇 해인가? 그동안 참으로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마을마다 얽힌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참으로 많은 얘깃거리를 안고 돌아왔지요. 오로지 자전거만 타고서 아무리 먼 곳이라도 겁 없이 다녔어요. 맞아요. 틀림없이 우린 겁도 없이 그렇게 다녔던 거였어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경북 구미시, 이 지역 둘레는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자전거로 돌아볼 수 있는 가까운 곳(?) 군과 군, 시와 시를 넘나드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도와 도 경계까지 넘나들며 참으로 많은 곳을 두루 돌아 달려왔답니다. 때론 우리 자전거를 바라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할 만큼 그렇게 많이 달렸답니다.

우리 나라의 정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심소정,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지요.
▲ 거창 심소정 우리 나라의 정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심소정,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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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면 거창사건추모공원에 갔을 땐, 가슴이 먹먹하였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목숨들,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숨져버린 그들의 넋을 생각하며 한참 동안 먹먹한 가슴을 끌어안고 삭혀야 했답니다.
▲ 거창사건 추모공원에서 신원면 거창사건추모공원에 갔을 땐, 가슴이 먹먹하였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목숨들,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숨져버린 그들의 넋을 생각하며 한참 동안 먹먹한 가슴을 끌어안고 삭혀야 했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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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은 곳,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힘든 길도 마다않고 여러 곳을 두루 다녔지만,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답니다. 보람되고 즐겁기도 했지만, 아마도 오고가는 내내 너무나 힘들었고 고생스러웠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그때를 얘기할 수 있나 봅니다. 무척이나 또렷하게 지나온 과정들이 떠오르네요. 바로 지난 2008년 한여름 휴가 때 35도를 넘나드는, 너무나 뜨거웠던 땡볕과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과 씨름하면서 다녀왔던 경남 거창군이랍니다.

나흘 동안 꼬박 자전거를 타고 거창으로 휴가를 다녀온 뒤, 거창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도 구석구석 길을 더 잘 알 만큼 그야말로 샅샅이 돌아왔어요. 경북 성주군 수륜면 고개를 넘기 시작하여 가야산자락을 타고 합천 해인사를 거쳐 거창으로 들어가 양평리 금용사, 심소정, 일원정, 김숙자사당, 오가는 길목에 있는 문화재란 문화재는 거의 모두 살펴보았고, 이름난 곳도 모조리 둘러보았지요. 무엇보다도 거창군 신원면에 있는 '거창사건 추모공원'까지 가서 함양 용추계곡을 넘어 다시 거창군으로 돌아오기까지 산 고개를 몇 개나 넘었는지 모릅니다.

해는 넘어가고 길은 잃어버렸고

거창 다녀온 이야기를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길을 잃어버려서 고생을 무척이나 했던 거랍니다. 휴가 첫째 날, 구미에서 시작하여 성주군 수륜면을 거쳐 합천 해인사를 돌아보고 거창으로 넘어가려고 온종일 땡볕과 씨름하며 끈적끈적한 오르막길을 올라왔는데, 해인사 꼭대기 '고불암' 쪽에서 그만 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땐, 구글어스 위성지도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갔는데, 그다지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아 자전거 모임 식구들한테 거창으로 넘어가는 길이 100m쯤 나 있다는 얘기만 듣고 왔는데, 아뿔싸! 아무리 찾아도 그 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온종일 무더위와 오르막과 씨름하며 합천 해인사 꼭대기까지 와서 거창으로 넘어가는 산길을 찾아야 하는데, 바로 코앞에다 두고 두 시간이나 헤매고 다녔어요. 겨우 찾아냈지만 길은 가로막혀있고,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메고 넘어옵니다.
▲ 해인사에서 거창군 가북면으로 넘어가는 길 온종일 무더위와 오르막과 씨름하며 합천 해인사 꼭대기까지 와서 거창으로 넘어가는 산길을 찾아야 하는데, 바로 코앞에다 두고 두 시간이나 헤매고 다녔어요. 겨우 찾아냈지만 길은 가로막혀있고,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메고 넘어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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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 이곳저곳 헤매다가 길도 아닌 곳에 들어가서 나뭇가지에 긁히고 거미줄만 잔뜩 뒤집어쓰곤 다시 나오고, 이거 큰일 났습니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려고 하고, 여기서 길을 찾지 못하면 온종일 고생하며 올라왔던 그 길을 다시 돌아 성주까지 내려가서 다른 길로 거창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아야만 했어요. 어쩌면 오늘 안에 거창 땅을 밟는 건 꿈도 못 꿀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어요. 길을 아는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전화로는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대답만 돌아왔지요.

하는 수없이 산 아래 있는 마을까지 다시 내려가서 마을 사람들한테 물었더니, 그 분들 역시 설명이 시원찮았어요. 대신에 옛날에 거창군 가북면으로 넘어가는 그 길이 있었는데, 해인사에서 가로막았다는 얘기만 들었답니다. 어쨌거나 몇 달 앞서 자전거 모임 식구들이 그 길을 넘어서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기에 다시 길을 찾기로 했어요. 우리한테는 그 길밖에 없었거든요. 또 다시 같은 오르막길을 타고 올라가는데 그야말로 죽을 맛이에요. 이러다가 거창 땅은 밟아보지도 못한 채, 길도 못 찾고 밤을 맞을까봐 얼마나 초조하고 걱정이 되던지….

끝내 산꼭대기에 있는 파프리카 농장 임자한테 길을 물어 찾을 수 있었는데, 얼마나 어이없고 기가 막히던지, 글쎄 바로 코앞에다 두고 무려 두 시간이나 헤매며 찾아다녔던 거였답니다. 한여름이라 잡풀이 무릎까지 자랐고 워낙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서 눈에 띄지 않았던 거였지요. 다행스럽게도 해지기 전에 길을 찾을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해발1000m가 넘는 산이 무려 스무 개?

신라시대 때부터 있었다던 무촌리 은행나무(경남기념물 제124호)
▲ 무촌리 은행나무 신라시대 때부터 있었다던 무촌리 은행나무(경남기념물 제124호)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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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거창군 구석구석을 다닐 때, 가장 힘든 건 쉼 없이 올라가야하는 오르막길과 한여름 뜨거운 해였답니다. 여름이니, 땀 흘리는 것쯤이야 각오를 한 일이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은 참으로 힘들게 하더군요. 고개 하나를 겨우 넘어서면 또 다른 고개가 기다리고 있고, 오른 만큼 신나게 보상이라도 받듯이 내리막을 달려 내려오면 또 다시 오르막이 가로막고 있고…….

그야말로 나흘 내내 지겹도록 오르막을 올라 다녔답니다. 거창에는 산이 많고 그 높이가 거의 1000m가 훨씬 넘는 것들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가는 곳마다 고갯길이고 길을 따라 그 곁으로 우뚝 솟아있는 높은 산봉우리들을 며칠 동안 지겨울 만큼 보고 달렸답니다. 이틀 동안은 낯 선 곳에 가서 보고 듣는 즐거움 때문에 그나마 힘들어도 참고 이겨낼 수 있었지만, 사흘 째 되던 날, 거창 나들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엔 정말 힘들었어요.

구미까지 다시 돌아오려면, 못해도 큰 재를 서너 개는 더 넘어야 하는데 거창을 벗어날 때쯤, 고제면 궁항리까지 올라가는 고갯길에서는 우리 둘 다 지칠 대로 지쳐버리고 말았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먼저 지쳐서 투덜거리며 더는 못가겠다고 떼라도 쓰곤 했을 텐데, 이번에는 남편이 몹시 힘들어합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무척이나 힘들었나봅니다. 고개를 올라가다가 쉬다가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있네요.

덜컥 겁이 났어요. 그렇지 않아도 얼마 앞서 뉴스에서 한여름 무더운 날, 자전거를 타다가 죽은 사람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이 먼 곳까지 와서 큰일이라도 나겠다 싶어 두려웠답니다. 본디 계획에는 거창에서 이틀을 보내고 사흘째 되는 날엔 구미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무리였어요. 벌써 오후 3시를 넘겼는데, 아직도 100km는 더 가야하는데, 그것도 큰 재를 몇 개나 넘어서 가야하는 길이었기에 힘들다 싶었답니다.

어차피 휴가 날짜는 하루가 더 남아 있으니까 이 고개를 넘어가서 대덕에서 하루를 묵고 갈 생각을 했지요. 가만 돌이켜 생각하니, 어쩌면 우리가 휴가 계획을 너무나 빠듯하게 잡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나흘밖에 안 되는 휴가 동안 경남 거창군의 크고 작은 문화재와 이름난 곳들을 거의 빠짐없이 다 돌아보겠다고 계획을 잡았으니 처음부터 너무 잘못된 계획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거기 사는 사람들보다도 더 자세하게 돌아보고 왔으니 원은 없을 만큼 돌았지만 말이에요.

경남 거창에는 크고 작은 문화재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무릉리 정씨고가 안주인께서는 낯선 이가 느닷없이 들어왔는데도 무척이나 반겨주셨지요. 나흘 동안 거창 구석구석을 자전거를 타고 돌면서, 참 많은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이런 즐거움 때문에 힘든 것도 참고 다니나봅니다.
▲ 무릉리 정씨고가(경남유형문화재 제287호) 경남 거창에는 크고 작은 문화재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무릉리 정씨고가 안주인께서는 낯선 이가 느닷없이 들어왔는데도 무척이나 반겨주셨지요. 나흘 동안 거창 구석구석을 자전거를 타고 돌면서, 참 많은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이런 즐거움 때문에 힘든 것도 참고 다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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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구 타다가 죽었다는 얘기도 못 들었는교!"

하는 수 없이 고제면 궁항리 쉼터에서 잠깐이라도 쉬었다가 가자고 들어섰는데, 마을 사람들이 구미에서 와서 거창을 돌아보고 이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는 우리를 보고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넵니다.

"아이고 대단하네요. 그래 며칠씩 자장구 타고 그래 댕긴단 말이라요."
"자장구 타다가 죽었다는 얘기도 못 들었는교! 이 땡볕에 우짤라꼬 그리 댕기는교."

마을 사람들 걱정 소리를 들으니, 마치 못할 짓을 하다가 혼난 사람처럼 뻘줌하기까지 했답니다. 큰 가방을 하나씩 짊어지고 지칠 대로 지쳐서 자전거를 끌고 고갯길을 터벅터벅 올라오는 우리 꼴을 봤으니 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나흘 동안 휴가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왔을 때, 일터 식구들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내 얼굴을 빤히 봅니다. 그러면서,

"아니, 휴가를 아프리카로 다녀왔어요?"
"얼굴이 왜 그래요? 완전히 시커멓게 탔네요?"

나흘 동안 땡볕과 오르막과 싸우면서 쉼 없이 흘러내리는 땀에 범벅이 되어 무려 330km나 달리고 달려 돌아 왔으니, 그야말로 내 꼴이 얼마나 우스웠겠어요? 더운 나라 원주민이라도 된 듯 시커멓게 된 얼굴이 부끄러워 손으로 가려야만 했답니다.

벌써 두 해 앞서 다녀왔지만 우리한테는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휴가였답니다. 처음부터 계획을 너무 빠듯하게 잡아서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오르막길과 땀 흘리며 싸웠던 휴가였지요.

비록 몸은 고생하고 많이 힘들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거창 땅을 구석구석 밟으며 많은 얘깃거리를 담아온 여행이라서 더욱 값지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 일을 했을까? 싶을 만큼 우리 부부는 그렇게 자전거에 미쳐 있었네요. 아니, 어쩌면 이번 여름휴가 때에도 그렇게 미친 듯이 또 어느 지역 어느 고갯길을 두루두루 넘나들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아마도 몇 해 뒤에 또 지금 이 때를 추억하고 있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자전거에 미쳤는지도 모릅니다. 휴가 내내 쉼 없이 흐르는 땀과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에 지칠 대로 지쳤어요. 하지만, 그렇게 달려가서 만나고 보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값진 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달려갑니다. 아무리 높은 오르막이 우리를 가로막는다고 해도...
▲ 오르막과 무더위와 싸우며 어쩌면 우리는 자전거에 미쳤는지도 모릅니다. 휴가 내내 쉼 없이 흐르는 땀과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에 지칠 대로 지쳤어요. 하지만, 그렇게 달려가서 만나고 보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값진 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달려갑니다. 아무리 높은 오르막이 우리를 가로막는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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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자전거를 타고 거창 나들이를 다녀와서 쓴 기사가 세 꼭지 있습니다. 힘들었지만 무척이나 값진 경험이었지요.

거창 나들이 기사 보기 ☞ "자장구 타다 죽었다는 사람도 있다카던데..."
                                  "관상 보니 잘 살겠구나, 어디 손 좀 줘봐"
                                  골짜기마다 배인 피눈물을 어찌 씻을까?


태그:#여름휴가, #거창나들이, #오르막, #무더위,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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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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