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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은 <버리고 떠나기>에서 이렇게 썼다.

"<닥터 노먼 베쑨>은 이른바 실명 소설인데, 한 의학도의 희생적인 인간애가 수행자인 나 자신을 몹시 부끄럽게 한다. 의학도라면 <소설 동의보감>과 함께 꼭 읽어둬야 할 책이다."

 

그리고 책 뒤표지의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닥터 노먼 베쑨>을 읽어보라고 한다. 자신의 직업에 투철한 사명감과 열정을 쏟고 있는 주인공의 삶이 전류처럼 우리 가슴속에 전해 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현재의 삶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중에서

 

그저 책으로 만났을 뿐인데 이따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노먼 베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노먼 베쑨의 존재도, 그의 삶을 쓴 <닥터 노먼 베쑨>이란 책이 있다는 것도 법정 스님의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마도 2003년? 그때부터 가끔 큰 의사 노먼 베쑨의 숭고한 삶의 궤적들이 떠오르곤 한다.

 

노먼 베쑨(1890.3~1939.11)은 할아버지를 따라 의대에 입학한 후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학비를 번다. 그는 24세 때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자 프랑스로 가는데, 이때의 그에게는 전쟁에 대한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처참해진 프랑스에서 전쟁은 학살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부상을 당해 귀환하나 다시 영국으로 가 군인이 된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대를 전쟁과 함께 보낸 그는 기회의 땅 미국 디트로테이트에서 첫 개인병원을 열게 된다. 그런데 가장 붐빈다는 이유만으로 터를 잡은 그곳은 알고 보니 홍등가의 중심지였고 환자들 대부분은 가난 때문에 제때 치료하지 못해 나빠 질대로 나빠진 상태였다. 그는 가난한 환자들의 차트에 병명을 '폐결핵'으로 써야 할지, '가난'으로 써야 할지 고민하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밤, 남루한 차림의 사내가 베쑨의 집 문을 두드린다. 아내가 산고를 겪고 있는데 분만을 도와줄 의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베쑨을 시 외곽에 버려진 박스카로 안내했다. 그제야 사내가 분만을 도와줄 의사를 찾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베쑨은 영양실조에 걸린 산모에게서 아주 작고 쭈글쭈글한 갓난애를 받아냈다. 아이는 한 달이 못가서 죽을 것이었다. '신성한 의술?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말인가? 이 남자에게는 불운한 자식의 생사보다도 주급 20달러의 일자리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인술이라? 거 참 말이 좋군. 그 사기꾼들은 자신의 편안한 잠을 위해서 박스카에 사는 남자의 간청을 거부하지 않은가?' 베쑨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 의사들을 향해 거침없는 말을 내뱉는다. - 책속에서

 

모든 사람은 건강할 권리가 있다

 

이 무렵 그의 병원은 성공한 한 개업의의 도움 덕분에 성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주로 치료하던 지난날과 달리 부자들만을 상대하는 자신에게 회의를 느끼며 부자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던 터였다. 이런 중에 이처럼 가난하다는 이유로 치료받지 못한 산모를 만나게 되고 이후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더욱 자신의 모든 것들을 바치게 된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그의 병명은 폐결핵. 당시 결핵은 치료할 수 없는 병으로 환자는 하루하루 죽을 날만 세는 수밖에 없었다. 베쑨은 아내에게 이혼을 통지하고 결핵 환자들이 모여 있는 트뤼도 요양소로 들어가지만, 요양소의 규칙을 무시하고 자유분방하게 지낸다. 그러던 중 도서실에서 <폐결핵 수술>이란 책을 보게 된다. 책에는 폐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인공기흉술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때 의사들이 외과 수술을 기피하기 때문에 결핵환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간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수술을 의뢰한다.

 

문득 그는 결핵 치료술이 발달했는데도 결핵 환자의 발병률이 전혀 줄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 이유를 끈덕지게 파고들었고, 세계를 집어 삼키고 있는 또 하나의 질병, 결핵균보다도 더 치명적이고 중세의 콜레라보다도 훨씬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질병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가난'이라는 질병이었다. 그는 좌절했다. 차라리 매스를 집어 던지고 거리로 뛰쳐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을 외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국의 대공황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모든 사람은 건강할 권리가 있다.' 베쑨은 이익을 따지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치료하는 일하는 의료 공동체를 구상했다. - 책속에서

 

그의 나이 37세, 당시만 해도 폐결핵 치료를 위해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인공기흉술로 살아난 그의 관심은 오로지 폐결핵. 수술 덕분에 회복한 그는 흉부외과으로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1936년에 스페인 내란이 일어난다. 그는 캐나다 국민이 모금한 기금을 지원받는 스페인 파견 의료지원단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스페인으로 가게 된다.

 

그에게 있어 스페인행은 흉부외과의사로 7년 동안 결핵과 싸워온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스페인에 도착한 그는 폭격당한 스페인의 참상에 분노한다. 그리고 병사들을 치료하던 중 현대전의 의료체제가 가진 중대한 결점을 발견한다. 부상당한 병사들이 이송하는 과정에 더욱 악화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 그는 이동수혈대를 조직하여 전쟁터에서 수혈을 함으로써 수많은 병사들을 살린다.

 

11월, 그는 수술 중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빨리 후퇴하라는 보고를 받고도 최후의 순간까지 수술을 감행하다가 생긴 일이었다. 아주 작은 상처였지만 얼마 뒤 그는 쓰러졌다. 패혈증이었다. 감염 부위가 이마까지 번져 있었다.…1939년 11월 13일.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죽음이었다. 세균이든 사회체제든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좀먹는 것이라면 온몸으로 맞섰던 휴머니스트 노먼 베쑨. 그가 거쳐 간 마을 구석구석마다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오늘날 그는 모택동, 주은래, 에드거 스노우와 함께 중국 근대사의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모택동은 그의 동료들에게 "우리는 한 인간의 서거 이상의 것을 통곡합니다"라고 말했다. - 책속에서

 

<닥터 노먼 베쑨>(실천문학사)은 패혈증으로 쓰러진 그가 들것에 실려 중국 북부 하북성 어느 좁은 골짜기를 지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병사들을 위해 갖은 고생을 겪었기 때문일까, 책은 40대인 그를 70대 백발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렇게 시작한 책은 그의 숭고하고 지난한 삶의 궤적들을 들려준다.

 

책도 두껍고(600여 페이지), 이 책을 읽던 2003년 당시 가게를 하고 있었던지라 한 달 가까이 틈틈이 읽었는데, 책을 읽는 동안 노먼 베쑨으로 인한 분분한 감동들이 일렁였다. 여하간 책을 통해 만난 노먼 베쑨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돌아보게 했다.

 

그때 내 아이들은 어렸다. 선택했다. '내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그리고 얼마 전, 청소년인 두 아이에게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허삼관 매혈기>와 함께 <닥터 노먼 베쑨>을 권했다. 노먼 베쑨의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따뜻한 인류애를, 그의 따뜻한 가슴을 우리 아이들이 꼭 알기를 바라며.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50권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기 전,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 숲 펴냄)을 통해 <닥터 노먼 베쑨>을 간략하게나마 다시 만났다. 법정 스님 덕분에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강한 감동의 첫인상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이다. <닥터 노먼 베쑨>뿐일까.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는 내 아이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들과 다시 읽고 싶은 책 등, 꽤나 가치 있는 책들이 50권이나 소개돼 있다.

 

장 지오노-<나무를 심은 사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윌든>, 프랑수아 를로르-<꾸뻬씨의 행복>, 생 떽쥐베리-<인간의 대지>, 사티쉬 쿠마르-<끝없는 여정>, 장 지글러-<왜 세셰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다산 정약용-<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조안 말루프-<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식물의 정신세계>, 제인 구달-<희망의 이유>, 김태정-<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가지> 등등.

 

지금처럼 인터넷 정보가 많지 않았던 2000년 이전에는 지금 읽고 있는 책에 언급되고 있는 책을 찾아 읽곤 했다. 지난날 법정 스님의 수필집을 참 많이 읽었던지라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책들은 거의 낯익다. 그래도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 노먼 베쑨과 함께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제인 구달이다. 2006년쯤, 법정 스님의 글을 통해 '장 지오노-<나무를 심은 사람>을 다시 읽으며 예전보다 한층 깊은 감동을 느꼈던 기억도 떠오른다.

 

우리는 여기에 50권의 책을 골라 실었지만, 선정 작업도 오래 걸렸을 뿐만 아니라 대상이 된 책도 3백 여 권에 달했다. 그만큼 법정 스님의 독서의 폭은 매우 넓었다. 인류의 정신사를 수놓은 다양한 종교의 경전들, 고전이 된 동서고금의 문학작품들, 파괴와 착취를 향해 질주해 가는 이 시대의 종말을 경고하는 의식 있는 환경 서적들, 이미 절판이 되었으나 다시 출간되어야만 할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 속에서 우리는 아쉽지만 지면의 한계상 50권을 추려 낼 수밖에 없었다. 이 기획은 단순히 '법정 스님이 읽어 온 책들은 어떤 책들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삶,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며 그 기준과 방향을 정하는데 어떤 책들을 읽어야 하는가? 로 그 주제가 확장되었다. -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책을 엮고 나서' 중

 

<닥터 노먼 베쑨>은

1952년 <메스 검-닥터 노먼 베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캐나다 리틀브라운컴퍼니에서 처음 발행된 이 책은 세르비아어, 히브리어,중국어를 비롯해 19개의 언어로 출판되었다. 캐나다 역사상 가장 널리 출판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실천문학사에서 1991년 12월 천희상이 번역해 <닥터 노먼 베쑨>이라는 제목으로 바간되었는데, 출판과 함께 대학가에서 먼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2001년 6월, 같은 이가 개역하여 재출간되었으며,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 첫 번째 권에 자리했다. 이 시리즈는 <체 게바라 평전> <스콧 니어링 자서전> <간디 평전> <비노바 바베> <노신 평전> <밥 딜런 평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책에서

덧붙이는 글 |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숲 편집부 (엮은이) | 문학의숲 | 2010-03-03 |정가:18500원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50권

문학의숲 편집부 엮음, 문학의숲(2010)


태그:#법정스님, #닥터 노먼 베쑨, #버리고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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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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