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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하는 아내를 오랜 기간 간병한 뒤 사별하고도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는 콜린 퍼뱅크씨.
 암투병하는 아내를 오랜 기간 간병한 뒤 사별하고도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는 콜린 퍼뱅크씨.
ⓒ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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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부의 노팅험대학으로 유학하는 가족단위 유학생의 경우, 대기자 명단에 등록한 후 통상 1년 정도 기다려야 학교에서 제공하는 가족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학교 주변에 거처를 마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동산에 들러 학교 근처를 살펴보고 거처할 집이 결정되면 부동산에 지원서를 제출하고, 집 주인의 승락을 받는 과정을 거치면 언제 입주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그래서 통상 최종 입주까지는 최소한 2주 이상, 많게는 한달 이상이 소요된다. 당장 임시숙소라도 해결되면, 거처할 집을 마련하는데 절반은 이루어진 셈이다.

콜린 퍼뱅크(65)씨는 이같은 가족단위 한국 유학생들에게 지금껏 자신의 집을 임시숙소로 제공해왔다. 또한 이들을 대상으로 영어회화 교육을 하고, 영국에 살아가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등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한국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유명하며, 노팅험, 특히 비스톤 지역의 한인들에게 익히 잘 알려진 사람이다

전직 독일어 교사이며 또한 40여 년을 교회의 평신도 설교자로 살아가고 있는 콜린 퍼뱅크씨. 이런 그도 몇 년 전 암에 걸린 아내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아내가 처음 뇌종양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1999년 12월로, 퍼뱅크씨는 이후 2006년 2월 호스피스에서 사망하기까지 대략 6년 가량을 간호한 셈이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오랜 동안 병간호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간호와 치료에 드는 돈 때문에 환자의 사후에는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러나, 퍼뱅크씨는 지금 아무런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남을 도우며 그의 여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비결을 물어봤다.

"모든 치료를 국가가 알아서 해줬다"

- 치료기간이 오래 걸려 무척 힘들었겠다.
"물론 중병에 걸린 아내를 보살피느라 정신적으로는 힘들었다. 그러나, 모든 치료를 국가보건서비스가 알아서 해줘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 모든 치료를 국가가 해줬다고?
"그렇다. 처음 사립병원에서 간질환 치료했을 때 외에 모든 치료는 국가보건서비스에서 비용부담 없이 이루어졌다."

- 영국에도 사립병원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국가보건서비스를 이용하는가.
"국가보건서비스는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므로 나 또한 국가보건서비스에 의해 치료받는 것을 당연하게 기대했다. 사립병원을 이용하려면 민간보험이 있어야 한다. 나는 민간보험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진 의료적 문제가 어떤 것일지라도 국가보건서비스가 잘 치료하리라 확신하기 때문에 사립병원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 정말 국가가 다 해줬는가?
"아내의 치료과정 중에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담한 것은 없다. 국가보건서비스가 치료와 요양에 관한 모든 것을 책임졌고, 아내가 혼자서 걸을 수 없다고 진단됐을 때 나는 보호자 수당을 받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진료날짜 예약하는 것"

- 아내의 치료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음 진료 날짜를 예약하는 것이었고, 아내에게 투약하는 것이었다."

- 누가 주로 아내를 간호했는가.
"아내가 호스피스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특별침대 3개가 제공되었고, 도우미(Carer)가 하루에 3번 방문하였다. 간호사가 하루 한 번씩 전화해서 아내의 상태를 점검했다. 아내에게 어떤 상황이 발생하거나 내가 여쭈어야 할 상황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가 담당 간호사에게 전화했다."

- 아내와 사별한 후 경제적 어려움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다. 아내가 사망한 후 1년 동안 사별수당을 받았다. 그리고 아내가 교사로 일해서 아내가 가입했던 사립연금과 교사연금의 일부 수당을 배우자인 내가 지금도 받고 있다."

오랫동안 콜린 퍼뱅크씨의 병 간호를 지켜봤던 이웃 데이비드 훌리(61)씨는 "퍼뱅크씨는 비록 오랜 간병 끝에 아내와 사별했지만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여행을 같이 하는 등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며 "원래 그의 성격이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이는 국가보건서비스에 크게 힘입은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퍼뱅크씨의 경우처럼 배우자가 사별하는 경우 국가보건서비스의 병원에 소속된 담당자가 '사망 배우자'를 돕는 서비스가 있고 또한 교회와 여러 자선기관에도 동일하게 사망배우자를 돕는 서비스 담당자가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인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보건서비스(NHS)' 홈페이지
 영국인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보건서비스(NHS)' 홈페이지
ⓒ 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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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서 치료 못받는 일은 없다

훌리씨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국가보건서비스를 포함한 영국의 다양한 사회보장체제에 대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도 지금 90세가 넘은 어머니가 계시지만 국가보건서비스의 주치의를 통해 언제든지 사회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지금도 받고 있어서 내가 항상 곁에 있지 않더라도 걱정을 덜 수 있고 또한 걱정을 덜고 있다."

이와 같이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는 콜린 퍼뱅크씨가 뇌종양 환자였던 아내의 오랫동안 치료와 간병 그리고 사별 이후 지금까지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삶의 완충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그 중요한 역할에 변함이 없다.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도 어떤 점에서는 제도적 결점이 없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돈)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환자가 사립병원을 이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치료과정 중에 경제적 비용부담이 발생하지 않는다. 외래진료와 입원치료, 선택진료, 비급여, 식사비용까지 국가보건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모든 의료서비스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무상으로 제공된다.

또한 필요한 경우 병원에서 진료가 끝나 환자가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지역간호사(Community Nurse)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주기적으로 가정 방문하여 나머지 치료를 계속하게 된다.

이처럼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는 1948년부터 제도가 시행된 이후 60년 동안 노동당과 보수당의 여러 차례 정권교체에도 오늘날까지 '영국인들에게 사회경제적 요건에 구애 받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하는 근간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인들에게 국가보건서비스는 건강유지를 위한 최우선의 방법이자 보루이며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과 꿈이 아니라 이들이 60년째 누려오고 있는 일상적인 현실인 것이다.

한국의 암환자 보호자 "마지막 남은 피아노도 팔았다"

기자는 5년 전 한국에서 어느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암환자 가족을 만나기 위해 서울의 한 병원 암병동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많은 암환자 보호자 중에서도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이 40대 초반 여성은 남편의 병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한 가닥 희망이라도 놓지 않으려는 듯 그 동안 남편의 병 간호에 정성을 들였던 여성보호자에게서 들은 얘기는 한국 사회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울먹이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남편의 병원비를 위해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팔 수 있는 것이 피아노였는데, 그것을 판 돈이 오늘 통장에 입금됐다."

각기 다른 두 사회에서 만났던 암환자 보호자,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내와 남편의 동일한 질환(암)에도 한국의 여성보호자와 영국인 퍼뱅크씨의 삶이 크게 다르게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만약 퍼뱅크씨가 한국인이었다면 지금 그는 어떤 생활을 해 나가고 있을까? 또한 한국의 40대 여성 보호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무엇이 두 보호자들로 하여금 차이를 느끼게끔 하는가. 국가? 사람? 경제적 차이? 두 사람의 경우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의 사회제도적 차이가 두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국가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을 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좋은 정책과 제도, 튼튼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한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후세대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 유방암을 앓고 있는 필리핀 아내가 한국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뇌졸중을 앓고 있는 남편과 두 자녀를 남겨두고 홀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슬픈 현실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오늘도 어느 중증 질환자의 가정에서 병원 치료비를 위해 가정의 소유물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지금은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지 않는가? 국민 개개인의 삶과 관련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 한국 사회가 개인의 사회적 위험에 얼마나 제도적으로 뒷받침 하고 있는가? 그것이 국가의 역할 아닌가?


태그:#국가보건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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