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고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쉼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토요타 TV광고 화면.
 "최고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쉼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토요타 TV광고 화면.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지난 2004년 8월 12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이케시 도로. 당시 21살이었던 한 남성 공무원은 93년식 토요타 '하이럭스'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차량 핸들 조작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맞은편 차선에서 오는 차와 충돌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양쪽 차에 타고 있던 다섯 명이 크게 다쳤다. 핸들 조작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차량 키잡이 역할을 하는 장치가 강도 부족으로 부러졌기 때문이다.

구마모토현의 사고는 6년여 시간이 지난 현 토요타 사태를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구마모토현 사고가 있은 후, 토요타는 뒤늦게 해당 차량 33만 대에 리콜을 실시했다. 하지만 토요타는 이같은 사실을 지난 1996년 3월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리콜 대신 강도를 높인 부품을 일부 몰래 교체해준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이 때문에 30만 명이 넘는 운전자들이 무려 8년 동안 위험한 부품을 안고 차를 몰고 다녔던 것이다. 

게다다 토요타는 당시 일본 국토해양성에 부품파손 사건 등을 허위보고하는 등 사고를 철저히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의 독립인터넷신문인 <마이뉴스재팬>의 와타나베 마사히로 기자 등이 지난 2007년에 써낸 <토요타 노 야미(토요타의 어둠)>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최근 한국어로된 번역, 출간된 <토요타의 어둠>(JP뉴스 옮김, 창해 펴냄)을 보면, 일본 국가경제마저 뒤흔들고 있는 토요타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특히 그동안 '렉서스'로 대변되는 고급스럽고 자동차 안전과 성능이 우수하고,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과 세계 제1의 자동차 브랜드로 각인됐던 토요타의 이미지는 산산히 흩어지게 된다.

토요타자동차 성능은 정말 뛰어날까...충격적인 리콜 현황

무엇보다 토요타자동차의 안전과 성능은 정말 뛰어날까. 최근 토요타의 대량리콜 사태로 이같은 이미지는 크게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터지기 훨씬 이전부터 일본 국내에서조차 토요타는 '리콜왕'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같은 사실은 일본 국민들조차 잘 알지 못했다.

와타나베 기자는 자신의 책에서 "토요타의 막대한 언론 광고비뿐 아니라, 관료와 업계의 유착이 놀랄 만큼 심각하다"면서 "자동차 메이커에 불리한 정보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유용한 정보라도 숨겨지며, 이는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 전후 체제의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일본 공무원의 기업 우선주의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자동차 메이커별 리콜 자료를 요청할 때마다 "그런 자료 없다"는 식의 거짓말을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 생명보다 기업 이익을 우선하는 행정으로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면서 "행정 자료를 숨기는 관행이 국민을 얼마나 많이 죽여왔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일본 국토교통성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얻은 자동차 메이커별 리콜 내역을 보면, '토요타=좋은차'라는 환상은 산산히 깨지게 된다.

일본의 인터넷독립언론인 마이뉴스재팬이 국토교통성의 내부자료를 통해 조사한 일본내 자동차메이커별 리콜제출 건수와 대상보고 내역. 토요타자동차는 지난 2006년 리콜건수 14건에 192만7386대 차량 리콜이 실시됐다.
 일본의 인터넷독립언론인 마이뉴스재팬이 국토교통성의 내부자료를 통해 조사한 일본내 자동차메이커별 리콜제출 건수와 대상보고 내역. 토요타자동차는 지난 2006년 리콜건수 14건에 192만7386대 차량 리콜이 실시됐다.
ⓒ 창해

관련사진보기


일본의 인터넷독립언론인 마이뉴스재팬이 국토교통성의 내부자료를 통해 조사한 일본내 자동차메이커별 리콜제출 건수와 대상보고 내역. 토요타자동차는 지난 2006년 리콜건수 14건에 192만7386대 차량 리콜이 실시됐다.
 일본의 인터넷독립언론인 마이뉴스재팬이 국토교통성의 내부자료를 통해 조사한 일본내 자동차메이커별 리콜제출 건수와 대상보고 내역. 토요타자동차는 지난 2006년 리콜건수 14건에 192만7386대 차량 리콜이 실시됐다.
ⓒ 창해

관련사진보기


<마이뉴스재팬>쪽은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 동안 모두 1285건에 달하는 각각의 자동차 리콜정보를 업체별로 일일히 나눠서 집계, 분석했다. 그 결과 토요타 자동차는 2004년에 약 173만 대를 판매해 놓고, 리콜 대수는 약 188만 대였다. 2005년에도 약 170만 대 판매대수에 리콜대수는 약 188만 대였다. 2년 연속 판매대수보다 리콜 대수가 더 많았던 것이다. 와타나베 기자는 "이는 곧 자동차 결함률이 100%를 넘선다는 말"이라고 적었다.

그가 속해 있는 <마이뉴스저팬>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 동안의 토요타 자동차는 약 512만 대를 팔고, 약 511만 대를 리콜했다. 이대로만 따지면 결함률이 99.9%다.

이같은 통계를 두고, 와타나베 기자의 토요타에 대한 비판은 더욱 직설적이다. 그는 "토요타는 우선 차량을 팔고나서 나중에 고치면 된다. 결함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않으니 매스컴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면서 "까놓고 말하면, 소비자를 무료 테스트 드라이버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토요타에선 웹서핑도 정직 사유... 토요타시에선 어떤일이?

토요타의 이같은 품질 저하도 놀랍지만, 직원들의 생활상은 더욱 충격적이다. 이른바 그동안 '토요타 웨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기업들의 경영 교과서 역할을 했던 토요타식 방식의 실체가 이번 책에 고스란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와다나베 기자와 이번 책을 함께 쓴 하야시 마사아키 기자는 토요타 직원의 말을 빌어 토요타 공장을 '작은 북한'에 비유했다. 토요타의 본사와 주요공장과 기숙사 등이 몰려있는 '토요타시' 자체가 외부와 접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다.

토요타 쪽도 이런 사정 때문에 신규채용 면접이나 채용이후 간담회를 토요타시에서 하지 않는다. 나고야시 중심가에 있는 국제호텔을 빌려서 할 정도라고 하야시 기자는 쓰고 있다.

저자는 특히 토요타 직원에 대한 세뇌적 교육과 사적인 시간을 통제하는 데 기숙사가 활용된다고 한다.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식당도 없고, 한사람이 딱 누울수 있는 정도의 공간에 옷장 하나뿐인 독신 기숙사. 대부분의 기숙사가 창문 틈새에 바람막이 테이프를 붙일 정도 낡았다고 한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 대부분 직원들의 모든 생활은 업무의 연장선이다. 하야시 기자는 "업무시간 끝난 후에도 사내에서 간이축구대회 등 각종 행사를 열고, 모두 참여하는 것이 당연시된다"면서 "사원들은 행사에 가지 않을 경우 협조성이 없다거나, 일체감을 저해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썼다.

각종 행사를 통한 세뇌교육은 일상화되고 있고, 사내 규율 역시 매우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적인 이메일은 금지된다. 상사는 부하의 메일을 볼 수 있고, 부하 또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사적으로 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 회사 컴퓨터로 업무와 관계없는 사이트는 열람이 금지돼 있다. 실제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3개월 동안 정직처분을 당한 사례까지 있다고 하야시는 적고 있다.

이같은 환경 속에 직원들의 살인적인 노동현실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지난 2002년 2월 9일 토요타 사원이었던 우치노 겐이치씨가 회사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당시 나이 30살, 두 명의 딸과 아내를 남겼다. 사인은 '과로에 의한 치사성 부정맥'.

우치노씨의 아내인 히로코씨가 밝힌 그의 일상은 말 그대로 '살인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월 144시간이 넘는 잔업을 했다. 회사가 심야수당을 줄이기 위해 적용한 변칙적인 근무는 한 가정의 정상적인 생활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히로코씨의 증언이다.

히로코씨는 책에서 "렌니라 불리는 연속2교대제는 아침반은 6시 25분에 시작해, 오후 3시15분에 마친다"면서 "저녁반은 오후 4시 10분부터 한밤중인 새벽 1시까지 일하는데, 이럴 경우 생활인으로서 정말 어정쩡한 시간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치노씨는 이같은 변칙 근무 속에 엄청난 양의 잔업까지 몰렸고, 휴일에도 회사에 나가 각종 친목회 등까지 챙겨야 했다. 결국 그는 직장에서 싸늘하게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히로코씨는 남편의 과로사에 대해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치노씨의 죽음에는 세계 1위 자동차기업 토요타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자본과 언론을 다시 생각하다

하야시 기자는 "2조 엔을 넘는 토요타자동차의 영업이익은 종업원에게 강요된 가혹한 노동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요타에 대한 이같은 진실이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토요타 리콜에 대해서도 아직도 상당수 일본인들은 "토요타 문제가 미국에 의해 과장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토요타의 어둠(마이뉴스저팬 지음,제이피뉴스 옮김, 도서출판 창해 )
 토요타의 어둠(마이뉴스저팬 지음,제이피뉴스 옮김, 도서출판 창해 )
ⓒ 창해

관련사진보기

<토요타의 어둠>을 쓴 이들은 매년 1000억 엔(약 1조3000억 원)이 넘는 돈을 메이저 언론을 비롯해 출판사, 광고 분야에 쏟아 붓는 '돈의 위력 때문'이라고 적었다. 와타나베 기자는 "일본 제일의 광고선전비에 목줄이 잡힌 언론사들이 토요타 경영자 입장에선 편파적인 정보만 흘러 보낸다"고 지적했다. 토요타는 일본언론에게는 성역인 셈이다.

결국 최근 토요타 사태를 보면 언론이 자본에 굴복해 침묵할 경우 어떤일이 일어날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미 3년 전에 일본 내 소수지만 독립적인 언론인들이 토요타의 실체를 고발했지만, 토요타는 광고를 미끼로 언론의 입을 틀어 막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후 토요타는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자신들의 파멸을 자초한 꼴이 됐다.

한국의 최대 자본권력인 삼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토요타 방식을 연구하고 따랐던 삼성이었고, 막대한 광고비로 일부 진보언론을 뺀 대다수 언론을 평정한 것도 삼성이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가 내놓은 <삼성을 생각한다>를 두고, 한국판 <토요타의 어둠>으로 여겨지는 것도 당연하다. 기업이든, 언론이든, 진보든, 보수든, 비판과 견제가 없는 권력은 결국 부패하기 마련이다.


태그:#토요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