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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에서 CEO가 갖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문제는 그 영향력이 중소기업 단계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대기업 규모에서는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연중기획 'CEO 리포트'로 그 명암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최근 차명재산을 둘러싼 의혹과 굴업도 개발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첫 번째 주인공이다. [편집자말]
1700억. 최근 CJ '이재현님' 차명재산을 관리하다 살인미수 교사 및 배임·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전 재무2팀장 이모씨에 대한 선고공판 과정에서 튀어나온 숫자다. 이재현 회장 차명재산과 관련하여 CJ그룹이 낸 세금이 1700억 원이란 것이 이모씨의 진술이었다.

그 신빙성을 인정한 재판부가 최근 이씨에 대한 배임 등 혐의에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말 그대로 '억 소리나는' 세금은 기정사실화 됐다. 세간의 관심은 그렇다면 차명재산 총 규모는 도대체 얼마인가로 집중됐다. 최소 수천억 원은 될 것이란 이야기만 무성하다. 여기까지가 제1막이다.

해외 유학 다녀오지 않은 '비운의 황태자'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 CJ 국문 브로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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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의 교훈부터 짚고 넘어가자.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1인 지배체제라는 태생적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참으로 어렵고,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CEO 탄생이 한국에서는 요원하다는 것. 이는 재벌 3세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이재현 회장 이력을 돌아보면 확실해진다.

그의 아버지는 이병철 전 회장의 장남이었던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이맹희 전 회장에게 붙었던 수식어는 '양녕대군'이었다고 한다. 동생에게 '대권'을 넘겨주고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야 했던 아버지. 그래서일까, 이재현 회장의 성장사는 '비운의 황태자', 꼭 그것이다.

대학 다닐 때 늘 버스를 이용했다고 하고, 점심식사는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이 이병철 회장의 장손이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그는 재벌 후손하면 흔히 떠오르는 해외 유학도 다녀오지 않았다.

러브스토리 또한 재벌답지 않다.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한 부인 김희재씨는 교육자 집안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미팅을 통해 김씨와 처음 만나 재벌 3세라는 신분을 속여가며 결혼에 이르렀다는 후문이다. 

제일제당 독립, 재벌 3세와 어울리지 않는 '파격'

게다가 이 회장의 첫 직장은 씨티은행이었으니,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에서 벗어나 홀로 서기에 나섰을 때 그의 각오가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1997년 부사장 취임 당시 일성은 "설탕이나 파는 식의 마인드를 갖고선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였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이 회장이 선택한 방법은 '파격'이었다. 복장은 물론 출퇴근(플렉서블 타임제)을 자율에 맡기는가 하면, 호칭과 직급도 파괴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대화방 이름도 '이재현님 대화방'으로 바꿨다. 그 덕분에 CJ는 최고경영진부터 간부사원에 이르기까지 호칭을 '님'으로 통일한다고 한다.

경영에 있어서는 더욱 공격적이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필버그가 속한 드림웍스와 투자계약을 성사시켜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영상산업의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밥은 사 먹는 것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햇반'이었고, 국내 최초로 멀티플렉스를 도입한 것도 CJ였다.

덕분에 독립 당시 1조3천억 원이었던 매출은 약 10년 만에 8조 원으로 껑충 뛰었고, 영업이익 또한 97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50배 가까이 급 신장했다. 2001년에는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아시아 20대 유망기업'에 한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CJ가 식품 외에 생명공학, 신유통(홈쇼핑), 엔터테인먼트&미디어라는 오늘의 면모를 갖추게 된 데에는 이 회장 힘이 컸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대한민국 재벌 회장이 했다고 보기 힘든 결정" 한때 호평

CJ그룹 이재현 회장 약력.
 CJ그룹 이재현 회장 약력.
ⓒ www.cj.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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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재벌 3세로서 구설에 오르는 것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는 경복고 동문인 김씨와 친하다는 이유로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비록 혐의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는 향후 본격적인 구설수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1인 지배체제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른 것은 공교롭게도 이 회장이 CJ(주)대표이사 회장직에 오른 2002년. 당시 코스닥등록법인이었던 CJ엔터테인먼트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싼값에 인수해 수백억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 회장을 둘러싼 특혜시비가 일어났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이 회장이 선택한 방법은 정면 돌파였다. CJ엔터테인먼트 신주 인수권을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참여연대는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며 "대한민국 재벌 회장이 했다고 보기 힘든 결정"이었다고 호평했다.

곧바로 다음 해에는 '변칙 증여' 의혹의 당사자로 떠올랐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CJ가 헐값에 인수하여 이 회장에게 넘겨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시 이 회장은 주식 전량을 CJ에 반환한다는 방침을 내놨고, "향후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 투명성 확립에 디딤돌이 되기 바란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랐다.

드러나는 한계... '5%룰' 사실상 무시, 가족지배 강화

CJ그룹 본사 사옥.
 CJ그룹 본사 사옥.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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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파격'은 거기까지였다. 동시에 한국 재벌이 허용할 수 있는 '최대치'가 어디까지인지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5년 3월 시행된 '5%룰'을 다룬 보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특정 기업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면, 보유주식과 주식구입 자금 출처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토록 한 '룰'을 이 회장이 어긴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자금 출처를 밝히지 않은 몇몇 재벌 2∼3세에 포함됐다.

당시 보도를 보면 "이 회장은 3668억 원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 신고는 했지만, 정작 어디서 얼마의 돈이 생겨 주식을 샀는지 밝히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사고'는 연달아 터졌다. 다음해인 2006년에는 급식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이 회장이 외국에 체류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다시 2007년에는 "사업과 큰 관련 없어 보이는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을 계열사인 엠넷미디어를 통해 매입하려던 일"이 보도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1인 지배'의 부작용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오히려 '가족 지배'는 강화되는 모습이었다.

2004년 말 이 회장 누나인 이미경씨가 CJ엔터테인먼트 및 CJ미디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전까지 CJ엔터테인먼트 상무로 미국에 있던 '누나'였기에 재계에서는 '남매 경영'이 본격화된 것으로 해석했다. 2006년에는 장남 선호씨가 CJ 미디어의 개인주주로는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마저' 전해졌다. 그때 선호씨의 나이는 17세였다.

굴업도 개발 목적 "회장 가족의 재산 증식"

그 다음은 다시 제2막. 무대는 '엉뚱하게도' 외딴 섬, 굴업도다. 최근 환경훼손을 우려하는 시민·환경단체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골프장을 포함한 종합휴양관광지를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CJ. 그 선두에 C&I레저산업이란 '듣보잡' 계열사가 있다. 물론, 알고 나면 '알맹이' 회사다.

주요 주주가 이재현 회장 가족이다. 2009년 3월 31일 기준, 이재현 회장 지분율이 42.11%, 장남 선호씨 37.89%, 장녀 경후씨 20%로 나타나 있다. 이 대목에서 다시 등장하는 '1막의 이씨', 그는 다름 아닌 C&I레저산업 감사로 굴업도 개발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굴업도 개발이 기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회장 가족의 재산 증식"을 위한 것이란 주장이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CJ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굴업도 Ocean Park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11개 시민단체는 이같이 주장하면서 "수천억 원의 차명 비자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물의를 빚은 점을 사죄하고 굴업도 개발사업을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24일 경제개혁연대도 논평을 통해 "CJ측은 차명자금에 대해 국세청에 자진신고하고 관련 세금도 납부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규모가 총 얼마이고 언제 어떤 종류의 세금을 납부했는지 등 사실관계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아 의혹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결코 흐지부지 처리될 사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굴업도 개발로 인한 산지훼손 예상도.
 굴업도 개발로 인한 산지훼손 예상도.
ⓒ 한국녹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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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퇴색한 '온리 원'... 어쩔 수 없는 '원 오브 뎀'?

"(19)93년 6월,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에서 분리되자 오너인 이재현 상무는 '문어발 확장이냐, 한 우물 파기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햄릿의 고민'에 빠졌다. 제일제당의 튼튼한 재무구조로 보아 문어발식 확장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지만 그가 1년 반의 장고 끝에 지난해 초 내린 결론은 'Only one(오직 하나)'. 유망 업종 하나만 선택, 금메달을 따내자는 것이었다." (1996년 10월 14일자 <동아일보>)

'Only one', 세상에서 하나 뿐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자는 뜻을 담고 있는 CJ의 핵심 모토로 알려져 있다. 허나 이제 CJ는 국내외 계열사가 130개에 이르는 '문어'가 됐다. 그 지배권을 지키려다 그룹 외부로 배어 나온 '먹물'이 '1막의 이씨'고 '2막의 굴업도'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지분율이 낮아지는 것이 '순리'임에도,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이를 거꾸로 되돌리다 보면 흙탕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1인 지배체제의 속성이다. 한때 "우리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디딤돌"로 평가받았던 이재현 회장, 그도 어쩔 수 없는 'One of them(그들 중 하나)'이었는가.


태그:#CJ, #이재현, #굴업도, #재벌,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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