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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참여연대 사무실에는 약 3000통의 서울광장 조례개정 주민발의 서명용지가 배달됐다. 이를 확인하는 활동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싱글벙글한 표정이다.
 17일 오후, 참여연대 사무실에는 약 3000통의 서울광장 조례개정 주민발의 서명용지가 배달됐다. 이를 확인하는 활동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싱글벙글한 표정이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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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이야, 대박."

17일 오후 3시께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건물. 우편물을 확인하는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의 목소리에선 웃음기가 가득 묻어났다. 이날 참여연대에 배달된 서울광장사용조례 서명지는 3000여 통. 전체 서명운동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수치다. 

최근 거리서명에도 매일 1000여 명이 동참하고 있는 상황. 이제 서명 참가자는 7만7000명으로 목표인원은 4000명 정도만 남았다. 지난주만 해도 무리한 도전으로 보였던 서울광장사용조례 개정안 주민발의가 현실로 다가왔다.

물론 이중 서명이나 주소지 변경 및 오류 등으로 무효가 되는 경우를 감안할 때 8만5000여명은 참여해야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며칠, 내내 가슴을 졸이던 이재근 팀장은 일단 한숨 돌린 모습이다.

그는 지하철을 돌고 있는 거리서명팀에 전화를 걸어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쉬었다 해, 마찰 없이 진행하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승객들이 열차 내 서명을 '소란행위'로 신고해 역무원들이 저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아깝다, 3일만 빨리 태어났어도...

우편물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정리하는 데도 손이 많이 간다. 상자에 담아 우편물을 5층 소회의실로 옮긴 이 팀장은 건물 내 방송을 통해 "시간이 되는 활동가는 모두 모여 우편물을 개봉해달라"고 요청했다.

곧 박원석 사무처장, 이태호 협동사무처장 등 활동가 8명이 책상에 나란히 앉았다. 매일 서명지를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고 손으로 일일이 숫자를 확인하는 신미지 간사는 "지문이 없어질 것 같다"면서도 즐거운 표정이다.

그는 전날에도 2000여 개의 서명용지를 셌다. 이날은 저녁 7시 홍대 앞 클럽 파티에 갈 준비에도 바빴다. 이 와중에 웬 파티? 알고 보니 조례개정 캠페인활동이다.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사람들의 CC 프렌즈파티(이그나이트 서울)'에서 현재 광장 운영의 문제점을 설명한다는 계획. 그러나 일에 쫓겨 아직 멘트도 다 외우지 못한 상태였다.

다른 서명과 달리 주민발의 서명은 그 조건이 다소 복잡하다. 주민등록번호도 뒷자리까지 다 적어야 하고, 이름도 정자로 적어야 한다. 영문이나 한자 등으로 사인을 하면 법적인 서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름을 적고 다시 서명을 하니, 결국 이름을 두 번 적는 것이다.

소회의실 한쪽에는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무효 서명지가 사유별로 분류되어 쌓여있다. 주소를 안 쓴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안 쓴 경우, 서울시가 아닌 경우, 서명을 잘못한 경우 등 이유도 다양하다.

자신에게 서명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서울광장 종종 이용한다"면서 서명용지를 보내는 경기도민도 종종 있다고 한다.

17일 오후 서울광장 조례개정 주민발의 서명용지를 모아놓은 5층 소회의실에서 우편물 개봉작업을 하고 있는 참여연대 간사들.
 17일 오후 서울광장 조례개정 주민발의 서명용지를 모아놓은 5층 소회의실에서 우편물 개봉작업을 하고 있는 참여연대 간사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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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까운 서명은 1990년 12월 22일생의 시민. 서명이 마감되는 19일을 기준으로 만 19세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 시민은 3일 차이로 발의에 참여할 기회를 놓쳤다.

몇몇 시민들은 서명용지와 함께 격려 메시지를 담은 쪽지를 함께 보냈다.

"민주주의·정의·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는 수녀들의 엽서도 있고, 야근할 때 먹으라고 보낸 종로의 패밀리레스토랑 시식쿠폰도 있었다. "광장을 열자 조례를 바꾸자"는 붓글씨를 써서 보낸 시민도 눈에 띄었다.

가장 감동적인 서명은 멀리 미국 뉴욕에서 국제우편으로 날아왔다. 봉투에는 "해외 단기체류 중, 주민등록상 주소는 서울입니다"라는 글이 짧게 적혀 있었다.

외국인 2명도 광장조례 개정서명에 참가했다고 한다. 주민발의 참여 기준은 지방자치 선거 투표자격 기준과 같은데, 외국인등록증을 받은 외국인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는 투표할 수 없어도 지방자치선거에선 투표권을 가진다.

앞으로 이틀, 서울광장을 나눠갖는 마지막 기회

이날 참여연대 사무실에는 서명 방법을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이 팀장은 "용지를 내려받아 프린트한 뒤 서명해서 우편으로 보내시면 된다, 복사해서 주변 분들과 같이 보내셔도 좋다"는 안내를 반복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팩스로 보낸 서명용지는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우편을 이용해야 한다. 마감은 19일이지만 이후에 접수된 서명용지도 서명날짜만 19일 이전이면 유효하다.

급한 마음에 택배나 퀵서비스로 서명용지를 보내거나 아예 사무실에 직접 찾아오는 시민들도 있었다. 사무실 위치를 묻는 전화가 이어졌고, 간사들은 참여연대에 찾아온 시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적어도 광장조례개정서명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극복하는 모양새다.

서울시민들이 서울광장 조례개정 주민발의 서명용지와 함께 보낸 다양한 쪽지들. 왼쪽 아래에 뉴욕에서 보낸 서명용지 봉투가 있다.
 서울시민들이 서울광장 조례개정 주민발의 서명용지와 함께 보낸 다양한 쪽지들. 왼쪽 아래에 뉴욕에서 보낸 서명용지 봉투가 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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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발의 서명사이트를 만들자"
[인터뷰]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
지난 월요일(14일)만 해도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서울광장 조례 개정서명 성사 가능성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서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16일 전화통화를 할 때는 "(될 것 같은데) 아슬아슬하다"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3000여 명의 서명이 도착한 17일 오후, 그에게서 드디어 "성공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본격적인 강추위가 이어진 17일 이 팀장은 사무실에 남아서 전체 상황을 조정했지만, 이 팀장도 지난 6개월간 서명용지를 들고 길거리를 누볐다. 이 팀장은 "아무래도 젊은 분들이 쉽게 서명해주시고 특히 20~30대 여성들의 호응이 좋다"고 전했다.

현재 막바지 거리서명은 지하철 열차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의외로 역 주변의 유동인구가 많지 않고 바쁘게 지나는 시민들을 붙잡기도 어려워서 열차 안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지난 주말에는 스노보드 월드컵이 열리는 광화문광장에서 서명을 받았다. 당시 관리팀은 "광장 안에서는 집회시위는 물론 홍보활동·서명운동·노숙을 할 수 없다"면서 서명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7월에도 서명운동이 가로막힌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때는 서울광장에서였다. 4대강 사업 반대집회를 열려고 시민들이 모인 자리에 서명을 받으러 나갔던 이재근 팀장과 활동가들은 서명용지와 피켓을 빼앗겼다. 불법시위용품이라는 이유에서다. 길에서도 할 수 있는 서명이 광장에선 안되는 역설적 상황은 왜 조례개정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다음은 이재근 팀장 인터뷰 일문일답. 17일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이 팀장은 서명 참여 문의전화와 우편물 확인 및 개봉업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대화는 자주 끊겻다.

- 서울광장 조례개정 서명, 8만 명 달성할 것 같나?
"되는 것은 맞는데, 무효가 되는 서명용지도 있기 때문에 많을수록 좋다. 우리가 걸러내고 숫자를 세지만 서울시가 전산에 집어넣으면 오류가 더 나올 것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6개월 안에 8만 명을 모으는 게 쉽지 않다. 유권자 1%가 적다고도 할 수도 있지만, 조례를 통과시키는 것도 아니고 발의하는 것인데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 몇 만 명이 서명할 정도의 사안이면 지자체 의회에서 논의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 규정대로라면 경기도는 10만 명을 모아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광역지자체의 경우 0.5%만 돼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 서명 절차에서 개선할 점을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
"서명이 상당히 불편하게 돼 있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만으로도 신원확인이 가능한데 (뒷자리까지) 번호를 다 쓰게 되어 있다. 또 이름을 쓰고 다시 서명을 하게 돼 있는데, 법적인 서명은 정자(正字)로 이름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름을 두 번 쓰는 것이다. 이걸 시민들에게 설명하기도 곤란하다. 또 제도적으로 서명을 받을 공간도 마땅치 않다. 온라인으로 서명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게 하고 서울시가 사이트를 관리하면 되지 않나.

주민 참여를 이끌어낼 방법이 많은데 지자체들이 여기에 대한 고민을 안 한다. 사실 주민소환이든 발의든 지자체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 주민들이 직접 나서는 것 아닌가. 이를 지원하기가 싫을 것이다."

- 길에 나가보면 시민들 반응은 좀 어떤가. 항의하는 시민은 없나.
"없지는 않다. 현재의 광장운영에 찬성하는 내용으로 알고 서명했다가 전화로 취소하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왜 하냐'는 분들보다는 '도와준다'는 분들이 더 많다. 총선연대 이후 이렇게 많은 시민들을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다. '책상에서 하던' 그동안의 운동과 달리 시민들과 소통할 기회다."

- 개정안을 주민발의해도 서울시의회에서 이를 통과시킬 가능성은 적다.
"물론 어렵다. 발의해줄 용의가 있냐고 서울시의원들에게 질문지를 돌렸는데 야당 의원 6명과 한나라당 의원 2명만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현재 서울시의회 의석은 한나라당이 94석,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6석이다.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열심히 서명을 받았지만, 시의회에서 위원장 하나 못 내는 상황이다."

- 현재 오세훈 시장이 광장을 서울시 홍보수단으로 쓰고 있는데 사실상 '선거운동' 아닌가.
"지난해까지는 스케이트장이 서울광장에 있었는데 올 겨울엔 광화문광장으로 옮겼다. 서울광장은 이명박표 사업이고 광화문광장은 오세훈표 사업이니까. 스케이트 타는 시민들 사이에서 오세훈 시장 얘기가 한번이라도 더 나오지 않겠나. 사실 광화문광장은 서울광장보다 좁고 바로 옆에 차가 지나서 스케이트장을 만들기엔 더 나쁘다."

-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를 쟁점으로 부각시킬 수도 있나.
"광장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후보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선거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는 다른 단체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아직은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태그:#광장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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