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가족 "우린 이미 너무 힘들고 지쳤어. 너희들이 안 막아도 우린 앞길이 막막하다. 비켜!"

전투경찰 "어머니 죄송해요. 국회 앞 100m 지점에서는 집회나 행진이 금지돼 있습니다."

 

지난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414호 신지호 의원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실신했던 '곽효철 상병의 어머니' 김운자씨.

 

그는 서울에 첫눈이 내린 20일 오후, 또 한번 길바닥에 앉아 눈물을 흘려야 했다. 상복 입고 아들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채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선 어머니들의 도보행진을 경찰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만 군 의문사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아요. 대통령이 군대를 안 갔다와서 그런지,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은 무조건 예산 타령을 하면서 군의문사위원회 해체를 주장하는데, 지난 3년간 쌓아놓은 조사전문성과 활동력 등은 무시한 채 무조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 통폐합하는 게 대안은 아닙니다."

 

"한나라당에 군의문사위 연장 필요성 호소했지만..."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14개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3개로 통폐합하는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군 의문사 유가족 20여명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군 의문사위 연장과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통폐합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손철호 소위의 부친 손오복 '군경 의문사 진상규명과 폭력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 회장은 추모제에 참석해 "우리는 눈물과 한숨, 억울함과 분통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온 군 의문사 유가족"이라며 "한나라당을 향해 군의문사위원회의 연장 필요성을 호소했지만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대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 회장은 또 "신지호 의원 방까지 찾아가 뜻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며 "칠순 노인들을 대하는 신 의원의 몰상식한 대우에 기겁할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손 회장은 "젊은 정치인이니 그가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국민의 몫"이라며 "잘못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하늘의 응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박중기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도 "다 길러놓은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 것도 억울한데 죽음의 진실조차 알 길을 막아버리겠다는 것이냐"며 "군 의문사위원회 연장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국회에 가서 누워버리자"고 주장했다.

 

또한 박 대표는 "젊은이들을 나라가 데려가 군대에 의무복무시켰다면 당연히 그 안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서도 국가가 책임지고 조사해야 한다"며 "굳이 가족이 나서지 않더라도 국가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조사하고 죽음의 원인을 밝혀주는 게 옳다"고 일갈했다.

 

이날 추모제의 사회를 맡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우리 어머니들은 군의문사위원회가 발족하면 아들 죽음의 진실을 모두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며 "군의문사위원회의 연장을 통해 11월 17일 현재 남아 있는 247건의 사건에 대해 모두 조사하라"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또 "신지호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유가족들이 막무가내로 찾아와 만나달라는 것에는 응하지 않는 게 법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의 기본자세라고 말했다"며 "그의 뻔뻔한 모습에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꽃 한 송이 들었을 뿐인데... 도보행진 안 되나요?"

 

진눈깨비 속에서 눈물의 추모제를 마친 유가족들은 국화 한 송이씩 들고 한 줄로 서서 국회 외벽을 타고 한 바퀴 도는 도보행진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영등포경찰서는 "추모제는 신고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해도 무방하지만 행진은 금지돼 있다"며 차벽을 쌓고 전투경찰 20여명을 두 줄로 배치해 길을 막았다.

 

이에 격분한 유가족들은 경찰을 향해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아느냐"며 "시민의 발을 묶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허가되지 않은 행진은 하도록 방치할 수 없다"며 "차도든 인도든 두 명 이상 집단이 모여 행진하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한동안 유가족과 실랑이를 벌였던 경찰은 만장을 둔 2명만 국회 외벽을 돌도록 허락했으며, 유가족들은 만장을 둔 2명이 돌아올 때까지 전경들 앞에서 대치했다. 그들이 원위치로 돌아온 뒤에야 그들은 해산했다.

 

한 유가족은 "군대 보냈다가 자식 잃고 꽃을 든 노인네들이 젊은 경찰들 앞에서 뭘 할 수 있겠냐"며 "노인들의 평화적 도보행진조차 막아서는 이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지호 의원 "막무가내 응대엔 응하지 않는 게 기본자세"

 

한편,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은 19일 저녁 CBS 라디오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에 출연해, "군의문사 유가족들은 어떠한 사전 통보도 없이 사무실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며 "무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상대해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신 의원은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기습적으로 사무실에 온 것은 심각한 업무방해였다"며 "그런 식으로 찾아와서 막무가내로 만나달라는 것에는 응하지 않는 게 법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의 기본자세"라고 말했다.

 

개인사의 아픔은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막무가내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자신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신 의원은 "법적으로 따지면 업무방해 행위에 명백히 해당"되지만 "정치인이기 때문에 법으로만 이 문제를 풀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신지호 의원은 이 인터뷰를 통해 이번 주 안으로 '과거사 관련 위원회 통폐합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태그:#군의문사, #신지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