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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에 쏟아지는 찬사와 비난

<베토벤 바이러스>
 <베토벤 바이러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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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일이었다. 시작 전부터 '한국판 노다메 칸타빌레(일본 드라마)'라는 별명으로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은 <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 첫 뚜껑을 열자마자 호응과 비난이 무섭게 쏟아졌다.

호응하는 측은 대체로 '캐릭터가 살아있다' '나름대로의 스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등 드라마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에 비중을 두고 높은 점수를 줬다.

반면 비난하는 측은 '연주가 엉성하다' '배우들의 운지법조차 맞지 않다' '싱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너무 작위적이다'라며 주로 음악쪽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클래식 사이트를 보면 그 반응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자주 가는 클래식 전문 사이트도 이 드라마로 시끌시끌하다. 비난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음악의 질적인 요소다. 아무래도 클래식 애호가들이다 보니 음악에 더 무게를 두고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베를린필이나 명장들의 음악을 주로 찾아듣는 그들에게 '베바'의 연주는 어림없다. (물론 모든 회원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둘째는 이 드라마가 '클래식 애호가를 성격 파탄자로 몰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특히 강마에의 오만한 독설과 '귀족' 운운하는 장면을 거론하며 불편해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부부싸움만 하고 화해는 하지 못한 꼴이다. 드라마 뒷부분까지 보면 이러한 오해는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클래식 애호가들 본인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을 '고급 음악'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나 역시 2년 전 '노다메 칸타빌레'를 매우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보았다. 따라서 나도 이번 베바에 거는 기대가 실로 컸다. 베이징 올림픽이 빨리 끝나기 바란 이유가 있었다면 아마 '베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대했던 첫회가 시작된 순간, 나는 드라마를 순수하게 즐기지 못했다. 보는 내내 왠지 머릿속이 피곤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한국판 노다메'라는 별명부터 버리자

은연중 노다메 칸타빌레와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다메에서 소재를 얻긴 했지만 색다른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라는 호기심은 '흠…어디 보자. 얼마나 잘 만들었기에… 얼마나 노다메의 그늘(?)에서 벗어났나 보자'라는 고약한 마음으로까지 바뀌었다.

첫회가 방영되고 난 뒤 포털에 뜬 베바에 관한 평가 기사를 보았다. 성공적이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실망'이라는 의견도 많았는데 그 뒤에는 항상 '노다메'가 검은 그림자처럼 딱 달라붙어 있었다. 하긴 나 역시 그렇지 않았는가.

그러나 정확히 3회까지 보고 나서 베바가 노다메와 확연히 다른 점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노다메는 철저히 음악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원작 만화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마치 스타카토처럼 경쾌하게 이어지는 에피소드에는, 항상 음악이 주인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고민과 갈등의 중심에는 음악이 있다.

갈등이라 해봤자 우리 드라마 수준으로는 갈등이랄 것도 없는 매우 쿨하고 때로는 시시한 것들이다. 쿨한 갈등 대신 그 자리에 음악을 하는 음악인으로서의 개인적인 갈등과 고뇌가 존재한다. 또 하나. 드라마에 선보이는 음악 레퍼토리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다. 드라마 상황과 배우의 심리와 딱 맞는 적절한 곡이 등장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작년 초 노다메 칸타빌레 만화를 보면서 그 속에 등장하는 레퍼토리를 죽 적어본 일이 있다.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었다. 결과는 타블로이드 신문 한면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곡들이 수두룩했다. 혀를 찼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단연 좋아할 만했다. 오히려 드라마가 그 원작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베바는 음악이 소재인 드라마다. 즉, 음악이 조연이다. 주연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일 뿐이다. 베바의 중심에는 그 화려하고 다양한 음악 레퍼토리 대신 여러 군상들의 갈등이 쇠고기의 마블링처럼 촘촘히 얽혀있다.

가장 큰 축이 되는 라이벌 구조(강마에-정명환)부터 시작해서 돈이 없어 음대에 가지 못하는 예고생,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가정주부로 살아야만 했던 첼리스트, 못다 이룬 트럼펫터의 꿈을 간직한 카바레 트럼펫터, 공무원으로 살고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등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아주 다양한 군상들이 살아있다.

여기에 문화행사와 관변 단체사이의 각종 이해관계, 각종 사회 문제(문화특구지구로 인한 부동산 과열)도 제법 잘 비벼놓았다. 등장하는 '석란시'와 시장, 국회의원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투구에서 건져올린 음악의 숭고함, 음악이 주는 진실한 감동도 앞으로 곧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올록볼록, 천차만별인 군상들과 사건이 있어 역설적으로 음악이 더욱 빛을 발한다. 여기에서 음악은 그들을 이어주는 소재에 불과하다. 음악 본질에 대한 고민보다는 음악을 매개로 엮인 사람들과의 '음악하는 삶'이 더 중요한 요소다. 아직 드라마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출연한 레퍼토리도 대부분 우리와 친숙하고 편한 음악들이다. 이 점이 노다메와 베바의 큰 차이점이다.

당신은 1년에 공연장 몇번이나 가나

이쯤 해서 '우리는 왜 노다메처럼 음악이 주연인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느냐'라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왜 꼭 노다메같은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가? '한국판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이름부터 버려야 한다. 노다메는 노다메고 베바는 베바다. 노다메는 노다메식으로 즐기면 되고 베바는 베바식대로 즐기면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노다메가 아니라 좀더 수준놓고 향상된 음악 드라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 요소를 가지고 평가하지 말자. 좀더 수준놓고 질좋은 음악을 감상하고 싶다면 베를린필이나 빈필의 실황연주 DVD를 보면 될 일 아닌가. 아니면 음악 다큐를 봐도 좋다. 가까운 공연장에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

명색이 음악 드라마인데 현실감이 너무 떨어지지 않느냐고? 물론 가끔 엉성하긴 하다. 작정하고 평가한다면 '옥에 티'는 수도 없이 잡아낼 수 있다. 그러나 극의 분위기를 깰 정도는 아니다. 티 나게 유치하지도 않다. 우리는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지 무슨 콩쿠르 심사위원 자격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음악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착각을 한다. '얼마나 연주를 잘하는가, 얼마나 훌륭한 음악을 들려주나' 여기에 지나치게 연연한다. 2회에 깜짝 출연했던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쇼팽 연주 같은 '서비스'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진수를 살짝 감상할 수도 있다. 반드시 꼭 훌륭한 음악이 있어야만 훌륭한 음악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네티즌은 '노다메를 모방하려면 철저히 모방하지, 어설픈 리메이크는 하지말라'고 야무지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되묻고싶다. 왜 노다메를 철저히 모방해야 하나? 그리고 어설픈 리메이크는 더더욱 아니다. '오케스트라'라는 소재와 '괴짜 지휘자' '천방지축 발랄한 여주인공'이라는 점은 비슷하긴 하지만 나머지 플롯은 두 드라마가 완전히 다르다.

그렇게 야무지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묻고 싶다. 일년에 몇 번이나 공연장에 가느냐고. 클래식 공연을 본 적은 몇 번이나 되느냐고.

다양한 장르 드라마의 출연을 기대한다

<노다메 칸타빌레>나 그 외 몇몇 일본의 장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저런 장르 드라마가 좀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나만은 아니리라. 처음은 서툴게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한 드라마라면 십여 년 전 <크리스탈>이라는 드라마 이후 <베바>가 처음이다. <크리스탈>도 오케스트라가 작품의 배경일 뿐 음악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신선했다. 우리에게는 그런 드라마가 필요했다. 그런 드라마에 목말랐던 것이다.

클래식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그래서 이번 <베바>의 탄생이 참 고맙다. <크리스탈>에 비교하면 얼마나 괄목할 만한 성장인가. 볼수록 노다메와는 사뭇 다른 베바의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제 4회다. 1/3 정도 온 셈이다. 다만 한가지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제발 구태의연한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과 같은 지뢰밭은 제발 밟지말길. 밟으면 끝장이다.

베바같은 장르 드라마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비난과 비교보다는 격려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내가 <베바>를 응원하는 이유다.


태그:#베토벤 바이러스, #노다메 칸타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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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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