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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10일 코리아연구원의 <현안진단> 제124호'에 '촛불시위와 새로운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다. 신 교수는 이 글에서 "촛불시위는 한국의 대의제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인터넷정당 등 대안적 정치조직이 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분석했다. 코리아연구원은 진보성향의 6.10민주화세대의 전문연구자, 현장지식인, 사회활동가 등이 모여 지난 2005년에 출범시킨 두뇌집단(Think-Tank)이다. <오마이뉴스>는 코리아연구원측의 양해을 얻어 글 전문을 싣는다. 이 글의 원문 및 관련 자료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2008년 봄 촛불시위는 한국정치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사건이다.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을 한 보수정권의 집권 초기에 발생한 촛불시위는 정권의 무능함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국정치의 한계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속성을 드러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세 가지 점에서 한국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촛불시위가 보여준 새로운 변화들

 

첫째, 2008년 봄 촛불시위는 노동조합·시민단체·정당이나 사회단체와 같은 기존의 조직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회운동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전의 사회운동들은 주로 사회운동가들에 의한 조직적 동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노동조합·학생단체·시민단체 등에 의해서 조직적인 방식으로 시위가 주도되었다. 이와는 달리, 촛불시위는 다양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지면서 전통적인 조직 중심의 참여와 차이를 보였다. 그 결과 촛불시위에서 기존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역할은 대단히 주변적이고 제한적이었다. 반면, 인터넷 커뮤니티의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대단히 새로운 현상이었다.

 

둘째, 촛불시위는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사회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진 한국사회의 보수화 명제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대단히 취약한 것이며, 총선에서 나타난 한나라당의 지지도도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인기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의 결과이며,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것이 단순히 정치적 차원의 보수화가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정치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셋째, 촛불시위를 통해서 기존의 정치권, 더 나아가 한국의 대의제민주주의가 한계를 드러났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와 관련하여 여당과 야당을 포함한 제도권 정당들이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지 못하였고, 국민의 요구를 수렴하지 못하면서 기존 정당들의 무기력함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뿐만 아니라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폭되면서 대안적인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다.

 

단적으로 2008년 봄 촛불시위는 한국사회의 심층에서 일어나고 잇는 사회변화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안적 정치의 탄생을 촉진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집단적 지성'의 등장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촛불시위는 21세기 한국사회가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두 가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여론형성 방식의 변화다. 90년대 말부터 인터넷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과정을 통해서 정보가 공유되고, 집합적으로 지식이 축적되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정보와 지식은 전문가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신문기자와 대학교수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은 언론과 대학과 같은 기존의 전문가 집단이 독점했던 정보와 지식이 대중에 의해서 공유되고 더 나아가 더 다양한 정보수집과 축적이 대중에 의해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합적 지성'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집합적인 정보공유와 생산된 지식의 공유 그리고 인터넷 토론을 통한 의견교환과 수렴 등 새로운 형태의 정보, 지식, 여론 형성 과정이 등장하였다. 광우병에 관한 해외의 정보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누리꾼들에 의해 수집되고, 실시간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축적되었다.

 

이러한 정보의 유통속도는 일간지나 주간지와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서 기존 언론매체들을 압도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인터넷정보가 하루 단위나 일 주일 단위로 전달되는 느린 정보를 압도하면서 기존 언론매체의 영향력을 급격하게 약화시켰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누리꾼들의 집단은 아니다. 2008년 촛불시위에 나타난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그 성격이 대단히 다양하고 이질적이다.

 

기존의 신문이나 방송과는 다른 인터넷 포털인 다음의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토론모임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와 의견이 소통되면서, 기존의 매체에 영향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점차 기존의 매체와 대립적인 성향을 지니는 새로운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관심 있는 다양한 누리꾼들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토론을 벌이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집단지성의 등장을 보여주는 예이다. 여기에서 유통되는 정보 가운데 부정확한 정보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의견들은 점차 누리꾼들에 의해서 가려지면서, 참여를 통한 여론 형성이라는 새로운 사회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다양한 인터넷 동호회들의 활약

 

촛불시위에서 드러난 또다른 새로운 변화는 기존의 사회운동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운동방식의 등장이다. 기존 시민단체들은 촛불시위를 주도하지도 못했고, 시위 참여자들을 동원하지도 못했다.

 

촛불시위 참여자들은 기존의 시민운동 조직이 아니라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서 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치적인 목적을 갖지 않은 다양한 인터넷 동호회들 내에서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논의되면서 대단히 이질적인 네티즌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햇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촛불시위에 참여한 인터넷 동호회들은 주부요리 동호회인 82cook, 20~30대 남성들로 이루어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동회회인 mlbpark, 성형수술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나누는 다음 카페인 쌍코, 인테리어 동호회인 레몬테라스, 옷패션 인터넷 동호회인 소울드레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은 촛불집회 토론회에서 한 참여자가 언급한 것처럼, "황당한 정책에 어이가 없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매우 단순한 이유였다.

 

이들은 촛불시위 참가뿐만 아니라 모금을 하여 촛불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김밥과 생수를 공급했다. 뿐만 아니라, 광우병 쇠고기 반대 신문광고와 <조선> <중앙> <동아>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운동의 중심에 다양한 인터넷 동호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 기존의 운동조직과는 다른 가상세계의 사이버 커뮤니터가 현실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와는 무관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인터넷 동호회들이 촛불시위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광우병 쇠고기 반대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먹을거리 안전'이라는 단순한 생활상의 요구였다. 이들 동호회들은 한마디로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동호회들이다. 이것은 경제발전이나 사회진보의 실질적인 내용과 다르지 않다.

 

"진보신당이 갈 길은 주부들을 포섭하는 일"

 

먹을거리 안전문제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바로 삶의 기본을 위협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것은 흔히 '생활정치'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변화다. 삶의 안전과 질 문제는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촛불시위는 21세기 한국정치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계기로 민주주의의 문제가 곧 생활과 직결된 문제라는 새로운 인식이 일반사람들에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80년대는 사회의 진보와 체제 변혁을 내세웠던 변혁운동의 시대였다. 그리고 90년대 한국의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시민사회의 의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운동이 등장했다.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시민운동은 환경·경제정의·반부패·인권 등 민주주의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은 일반 시민들의 일상과 관련된 의제라는 점에서 이전의 쟁점들과 다르다. 2008년 촛불시위는 생활상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드러내는 생활정치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현상이었다. 생활정치의 주체는 남성 노동자가 아니라 생활을 책임지는 가정주부라는 점에서 생활정치의 등장은 여성의 정치적 주체화를 함의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21세기 진보정치의 내용이 무엇을 포함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것은 <시사IN>과 진보신당이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서 레몬테라스의 30대 주부의 주장에 압축되어 있다.

 

"앞으로 진보신당이 갈 길은 바로 주부를 포섭하는 길이 아닐까"

 

인터넷, 새로운 정치의 장으로 발전할 가능성 있어

 

촛불시위를 계기로 시민들의 일생생활의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라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었다. 촛불집회 기간 동안 다양한 형태의 집합적 경험을 통해서 체득된 시민의 힘은 향후 다양한 계기를 통해서 분출될 수 있는 새로운 잠재력이 되었다. 그리고 일상의 정치화로 요약되는 새로운 정치의 등장은 정치의 주변에 놓여 있었던 여성들을 핵심적인 정치적 주체로 만들었다.

 

다음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공론장은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여론이 형성되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의 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은 인터넷 정당과 인터넷 국회와 같은 제도권 정치조직과는 다른 대안적인 정치조직이 가상공간인 인터넷에서 실험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참여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인터넷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실험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촛불시위가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이러한 인터넷 정당과 인터넷 국회는 선거와 같은 현실정치에서 그 영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정치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태그:#촛불논쟁, #신광영, #코리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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