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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만약 미국 외신에 광우병 발생 보도가 나오면 어떻게 하겠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미국 언론도 오보를 많이 한다. 수입중단을 한다면 우리스스로 확인을 하고…. 국민건강에 위험이 있다면 당연히 (수입중단) 조치를 한다."

 

기자 "헷갈리는데, 광우병 발생하면 (수입)중단하는 것인지, 국민건강 위험 줄 수준 아니면, 수입을 계속 하겠다는 것인지…."

김종훈 "상황을 가정해서 말하면 어리석은 답변일 것 같고, 광우병 발생해서 위험 정도가 어디까지냐,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20일 오후 3시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2층 브리핑룸. 1시간을 넘긴 기자회견이었다. 정부는 어렵게(?) 미국쪽과 추가협의를 가져 검역주권 등을 보다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부가 이날 공개한 편지(레터) 형식의 문서는 그동안 한미 양국 정부가 검역주권 등에 대해 밝힌 입장을 재확인한 수준이었다.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을 둘러싼 미국 내수용과 국내 수입용과의 차이 역시 보다 명확히 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기존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새로운 것이 없었다.

 

오히려 광우병 발생시 곧바로 수입중단이 아닌, '국민건강에 대한 위험'이라는 일정 수준의 전제조건을 분명히 하면서, 검역주권이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또 이번 추가협의 과정에서 그동안 논란이 됐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전제조건인 '동물성 사료금지 조처' 부분은 협상테이블에 올리지도 않았다.

 

결국 이미 '부실협상'으로 낙인 찍힌 한미간 쇠고기수입위생조건 합의문이나 합의요록 등은 그대로 유지된다. 시민사회단체와 통상전문가들이 요구해온 전면적인 재협상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오해를 없애기 위해 내놓은 보완대책은 오히려 정부의 대미 협상력 부재와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의 불씨만 더 키운 셈이 됐다.

 

어렵게(?) 추진해 내놓은 한미간 추가협의 2가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미 무역대표부 수잔 슈워브 대표와 교환한 편지형식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김 본부장은 "상당히 격식을 갖춘 장관급 인사들의 서명이 담긴 서류를 서로 교환했다"면서 "수입위생조건 5조와 관련해 국민 건강보호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의 양측간 차이점을 어떻게 명확히 하느냐가 주된 논의였다"고 말했다.

 

한미간 추가로 합의한 내용은 검역주권과 관련, 현행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따라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각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한미 양쪽은 지난 8일 한승수 총리의 담화문과 슈워브 대표의 성명 내용을 재확인하면서, WTO 동식물검역협정(SPS협정)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20조에 따라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확인했다.

 

현행 수입위생조건 5조에는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수입을 금지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한 총리의 담화문 내용이 광우병 발생시 즉각 수입중단이 아니라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경우'라는 전제가 달렸고, 슈워브 대표 역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이같은 주권적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검역주권' 되살렸다고? 실효성도 없고 사실상 유명무실화

 

이는 곧 우리 정부가 '국민 건강의 심각한 위협'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에는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WTO 위생검역협정 5조7항에는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에도 국민 건강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을 경우 수입을 잠정 중단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따라서 검역주권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문화했다는 정부 주장은 설득력은 크게 떨어진다. 오히려 기존 검역주권 자체의 실효성이 떨어져 사실상 유명무실화될 가능성도 크다.

 

김 본부장도 "과학적 입증 책임은 한국에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협은 우리 정부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며, 그래서 (검역)주권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은 광우병이 발생하고, 국민건강에 위험이 있을경우 중단을 하는 것"이라며 "만약 미국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협의를 하고, 해결되지 않을 경우 WTO 분쟁절차에 따라 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판단만을 따르도록 한 현재의 수입 위생 조건의 해당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고 이번에 한미 양국이 교환한 서한만으로는 결코 한국 정부는 수입 중단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SRM 부위는 미국 내수용과 수출용이 같을 것" - "검역주권 넘기는 꼴"

 

검역주권 이외에, 한미 양국은 논란이 됐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의 한미간 부위 차이에 대해서도 "미국의 SRM 규정을 미 내수용이나 수출용 쇠고기에 동일하게 적용한다"고 합의했다.

 

이어 만약 한국에 들어온 미국산 쇠고기가 이같은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 한국 검역당국이 수입위생 조건에 따라서 반송이나, 검역중단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도 포함됐다.

 

김 본부장은 "현재의 합의문을 보더라도 미국 국내에서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국내로 들어올 수 없게 돼 있다"면서 "그럼에도 SRM의 부위를 두고 양국간 차이가 있다고 하니, 이 부분에 대해서 보다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합의 자체가 자칫 더 심각한 검역주권 침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송기호 변호사는 "서한 내용에 '미국은 내수용, 수출용에 같은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 기준을 적용하고, 한국은 미국의 기준에 맞춰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검역을 하겠다'는 것이 있다"며 "이는 한국 정부가 정해야 할 특정 위험 물질 기준을 미국에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그의 주장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각국 나라마다 자국에 맞는 특정 위험 물질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미국 특정위험물질 기준에 맞춰 검역을 하게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특정 위험 물질 기준을 대폭 완화할 경우, 한국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송 변호사의 지적이다.

 

결국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한미간 추가합의 내용은 새로운 것은 없으면서, 오히려 국민적 불안이나 논란의 불씨는 더 키웠다는 평가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한미 양국이 무엇때문에 그렇게 어렵게 추가협상을 했는지 의아스럽다"면서 "양국 대표 서한은 검역주권 등의 본질적인 문제를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위생조건 5조 삭제를 포함한 전면적인 재협상만이 정부의 할 일"이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저항은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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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산 쇠고기, #김종훈, #송기호,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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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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