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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피스 공화국의 수도. 예술가들의 활동이 끊이지 않는 미술관.
 우주피스 공화국의 수도. 예술가들의 활동이 끊이지 않는 미술관.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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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피스 마을로 진입하는 다리. 이 다리는 만우절 하루 동안 국경이 된다.
 우주피스 마을로 진입하는 다리. 이 다리는 만우절 하루 동안 국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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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연안에 위치한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는 여러 모로 참 재미있는 나라다.

리투아니아는 최근 동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며 유럽 내 개발도상국가 중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꼽히고 있고, 그런 이유로 한국인들도 리투아니아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 경제적 차원 외에도 수준 높은 무대예술과 여러 특출한 예술가들 역시 리투아니아의 명성을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높이고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빌뉴스의 옛 시가지를 걷다보면, 거대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조화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여기에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예상치 못한 볼거리들이 상당히 많아 나그네들에게 여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빌뉴스의 옛 시가지를 감싸고 흐르는 실개천 빌넬례. 그러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그 실개천을 주저없이 '강'이라고 부른다. 그 강을 지나면 우주피스라고 하는 마을이 나온다.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너 마을'이란 뜻인 이 곳은, 파리의 몽마르뜨와 맞먹을만 한 독특한 색깔을 띤 예술인의 마을로 불린다. 공식적으로 이 지역은 1998년 몽마르뜨와 공식적으로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세계 어디든 강은 개발과 미개발의 경계를 그어준다. 그런 배경에서 이 '강 건너 마을'은 한때 빌뉴스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이쪽에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에 독특한 색깔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빌뉴스의 옛 시가지와 맞먹을만한 리투아니아 최대의 볼거리 중 하나로 떠올랐다. 물론 주변 집값이 상당히 오르는 경제적 효과도 따라왔다.

11년 전 다큐멘터리 감독이 건국... 한국 대사는 소설가 하일지

우주피스 마을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된 건 11년 전.

이 때부터 리투아니아의 저명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로마스 릴레이키스의 제창으로 매년 4월 1일 만우절마다 그 마을에 사는 예술인들은 정말 거짓말처럼 하루 동안 독립을 한다. 그래서 그 곳은 리투아니아에 있는 또 하나의 독립국, 즉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불린다.

올해 4월 1일에도 어김없이 우주피스는 독립을 선포했다. 우주피스의 독립기념일(?)이 되면 우주피스에 진입하는 두 개의 다리는 우주피스 공화국의 국경으로 변모한다.

그 곳을 통해 입국하는 모든 이는 여권을 지참해야 하며, 그들이 만드는 비자를 받아야 입국이 가능해진다. 한 때는 국경에서 모든 차량에 별도의 차량번호를 붙여주기도 했으나, 올해는 엄격한(?) 여권검사 대신 운전자들과 관광객들의 손바닥에 비자를 찍어주는 식으로 간결해졌다.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여권 검사를 사라지게 한 센곈협정이 우주피스 공화국에도 작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닐까.

우주피스 공화국의 볼거리는 단순히 이런 다리 위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초로 우주피스 공화국을 제창했던 로마스 릴레이키스 감독은 그 이후 11년 간 우주피스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재정부 장관, 경제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 여러 신하들이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고, 전 세계에 우주피스의 예술정신과 자유를 홍보하는 200여명의 대사들까지 활동하고 있다. 한때는 군대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보안관 한 명이 노란색 차를 타고 다니며 우주피스를 지키는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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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 가지고 오셨어요?' 국경에서 운전자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주는 국경수비대원.
 '비자 가지고 오셨어요?' 국경에서 운전자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주는 국경수비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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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피스의 상징인 천사상과 우주피스 공화국 국기.
 우주피스의 상징인 천사상과 우주피스 공화국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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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11년 동안 우주피스 공화국의 외무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는 토마스 셰파이티스씨에 의하면, 이미 한국에서도 우주피스의 대사가 활동하고 있다. 다름 아닌 소설 <경마장 가는 길>로 유명한 하일지씨다.

하일지씨는 리투아니아와 우주피스를 방문한 후 빌뉴스의 아름다움과 추억을 내용으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면서 우주피스 대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에게 직접 대사 임명장을 전했다는 셰파이티스 외무부 장관은 하씨에게 꼭 안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외무부 장관에 의하면 만우절은 예술가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대개 사람들은 거짓말과 환상을 항상 헷갈려 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이라는 거짓말을 통해서 돈이나 경제 같은 골치 아픈 문제를 잊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런 차원에서 만우절은 우주피스 공화국의 독립기념일로 가장 적당한 때다.

빈민가를 예술 마을로 바꿔낸 리투아니아의 지혜

이 공화국의 대사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에만 대사를 파견한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화가라 자칭하며 '바람'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비즈간타스 베야스씨(그의 성 자체에 바람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우주피스에서 여러 해 활동하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착한 영혼들만 갈 수 있다는 천국의 대사직도 맡고 있다.

비즈간타스씨는 "꼭 천국에 가서 활동을 하는 것만이 대사의 업무는 아니다, 천국을 우주피스에 알리는 것도 대사의 중요한 할 일"이라고 전한다. 비즈간타스씨는 천국과 낙원을 닮은 것 같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대사직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천국 대사는, 만우절 행사는 우주피스 국민들의 생일과도 같은 날이라고 행사에 대한 소감을 전해줬다.

"행복할 권리도, 행복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우주피스에는 별도의 헌법도 있다. 전부 41조에 이르는 우주피스 헌법 중 대표적인 조문을 소개한다.

▲ 사람은 누구나 빌넬례 강변에 살 권리가 있으며, 빌넬례 강은 사람 옆을 흐를 권리가 있다.

▲ 개에겐 개가 될 권리가 있다.
▲ 고양이에겐 주인을 사랑할 의무가 없지만, 어려운 시기에는 그를 도울 의무가 있다.

▲ 사람에겐 행복할 권리가 있다.
▲ 사람에겐 행복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 누구에게나 눈에 띄지 않고 유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 사람에겐 아무런 권리도 갖지 않을 권리가 있다.
▲ 사람에겐 그 권리를 가끔 등한시할 권리가 있다.
올해는 특별히 리투아니아의 미래를 만들 어린이들이 행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우주피스의 정신과 관용·합을 가르치는 다채로운 이벤트가 펼쳐진 것도 그 때문이다.

1년에 단 한 번, 그것도 몇 시간 동안 번개처럼 진행되는 행사지만, 우주피스 공화국은 리투아니아만의 독특한 색깔과 예술정신을 보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리투아니아 최대의 빈민가이기에 자칫하면 불행과 가난의 중심으로 변질될 위기에 놓였던 이 마을을 예술과 관심의 대상으로 불러일으킨 리투아니아의 예술가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해준다.

한국에도 그런 달콤한 환상이 정말 거짓말처럼 도래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어린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
 어린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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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대사직을 맡고 있는 '바람'씨(왼쪽)와 외무부 장관 토마스(오른쪽).
 천국대사직을 맡고 있는 '바람'씨(왼쪽)와 외무부 장관 토마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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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