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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학생반란’이나 ‘문화혁명’, ‘세계혁명’ 등 갖가지 이름으로도 불리는 68운동은 1968년에 절정에 오른 세계적 차원의 저항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68운동 40돌을 맞아 독일에서는 숱한 특집 기사가 신문과 잡지를 장식하고 있으며, 방송도 다양한 기념물을 편성하고 있다. 각종 전시회와 학술대회가 준비되는가 하면, 관련서적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보자. 1968년 2월 18일 베를린은 젊은이들이 내뿜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17일부터 이틀간 열린 ‘국제베트남회의’에 뒤이어 1만5천여 명의 청년 학생들이 베트남전에 항의하며 거리를 행진한다.

 

세계 각지에서 온 청년, 학생, 지식인들은 미국의 ‘부당한 전쟁’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의 목소리는 ‘전쟁과 기아가 없는 삶’을 위한 국제적 저항을 호소한 독일 68운동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루디 두치케의 연설에서 하나로 모아진다.

 

베를린 국제베트남회의는 이후 68운동을 이끌게 되는 중심인물들의 집합소였다. 지구촌 곳곳에서 펼쳐질 그 운동의 지도자들이 냉전의 상징 서베를린에서 한 목소리를 낸 점은 운동의 국제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베트남전 반대를 빼면 각국의 운동을 하나로 묶어주는 쟁점은 없었지만, 68운동은 서양과 동양을 가리지 않고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모든 것을 겨냥했다. 68운동이 꿈꾼 것은 더 나은, 더 인간적인 사회였다. 

 

40년 뒤인 2월 18일 아침, '도이칠란트 풍크' 독일 라디오 방송은 그날을 돌아보는 프로그램 제목을 ‘도발의 정신’으로 붙였다. 냉전도시 베를린 하늘을 수놓은 그 ‘도발의 함성’은 이내 세계를 휘돌며, 68운동으로 역사에 각인된 저항의 물결로 퍼져나간 것이다.

 

오늘날까지 68운동에 대한 평가는 끝나지 않았다. 특히 독일에서 68운동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68운동의 폭력성을 강조하거나 심지어 나치와 닮았다고 주장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전후 서독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비판의 도마에 올린 ‘진정한 민주화의 출발점’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하튼, 68운동은 ‘그 모든 상처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인 사회참여의 심화에 기여했다’는, 폰 바이체커 독일 전 대통령의 오래전 평가는 여전히 되새겨 볼만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산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68운동, #국제베트남회의, #68운동 40주년, #68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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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부산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공저), 역서로 『68혁명, 세계를 뒤흔든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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