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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다. 선거 결과를 두고 일각에서 국민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서울 수도권 고학력 중산층의 보수화를 지적하면서 ‘서울 지역주의’라고 하는 신조어를 들먹이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또 다른 목소리는 20대 젊은 층이 경제 이기주의화되고 보수화되어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준 것이 한나라당 압승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럴까?

젊은 세대의 보수화가 이명박 압승의 원인이라고?

과거 대선과 평면적으로 비교하면 20대와 30대는 확실히 한나라당 후보에게 매우 많은 표를 몰아주었다.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30% 수준의 지지를 표시한 젊은 세대는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이회창 후보에게 과반이 훌쩍 넘는 56.3%의 지지를 보냈다. 보수정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현상만을 두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다른 세대와 달리 유독 20대, 혹은 30대만 한나라당 지지로 쏠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하나는 과연 범여권이 지난 10년 동안 변함없이 국민에게 ‘개혁진보세력’으로 인지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단 젊은 세대의 투표율을 확인해보자. 최종적인 연령대별 투표율이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선거 직전 투표의향 조사를 참조해 보면 20대는 이번 선거에서 절반 이하만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고 30대도 절반 약간 넘는 유권자만 투표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인다(평균 67%가 반드시 투표한다고 가정했을 때 20대는 51.6%, 30대는 56.9%가 투표의향을 밝혔다. 실제 투표율이 63%이니 이보다는 약간 더 낮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참조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차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 참고로, 지난 16대 대선의 전체 투표율은  70.8%, 20대의 투표율은 56.5%였다.

이번 대선에서 세대별 투표성향을 가장 근접하게 알 수 있는 자료는 출구조사다. 방송사들이 진행한 출구조사가 크게 오차가 나지 않으므로 출구조사를 1차 자료로 활용하여 분석해 보자(여기서는 연령대별로 집계를 한 SBS 출구조사를 활용하겠다. SBS 출구조사 결과는 이명박 51.3%, 정동영 25.0%, 권영길 3.0%, 문국현 5.8%, 이회창 13.8%로 실제결과와 근접했다). 출구조사 결과를 놓고 볼 때, 20대 젊은 세대의 투표 성향은 어떤 특징을 보이고 있을까.

이명박 후보에게 가장 낮은 지지를 보낸 것이 20대

첫째, 어느 연령대 보다도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지지율이 낮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20대의 이명박 지지율 42.5%나 30대의 40.4%는 우리사회에서 흔히 진보적인 세대로 여겨지는 386세대(40대)보다 무려 10%나 낮은 수치다. 이명박과 이회창을 합쳐도 마찬가지 결과다 나온다. 20~30대의 지지율은 40대의 그것보다 훨씬 적다. 결국 젊은층이 이명박을 지지해서 이명박이 압승했다는 얘기는 완전히 오도된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히려 20~30대가 다른 세대만큼 보수적인 투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 당선자가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상 지난 몇 달간 20~30대의 이명박 이탈 경향은 다른 어느 세대보다 두드러졌으며 일단 이탈된 표심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선거 2개월 전인 10월의 경우, 이명박의 전체 지지율은 50~60% 수준에 달했다. 그러나 BBK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20~30대의 이탈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고, 실제 투표 결과 40대 이상은 50% 이상의 지지를 보냈지만 20~30대의 지지율은 40% 초반 수준에 그쳤다.

투표를 앞두고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대학생의 16% 가량이 최근 한달 사이에 지지 후보를 바꿨으며, 그중 63%가 이명박 후보로부터 지지후보를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은 비리사건에 실망했다”는 것이 이유였다(한겨례 신문, 12.13). 이명박 후보의 비리와 거짓말에 대해 가장 정당하게 대응한 것도 결국 20대와 30대인 셈이다.

물론 20~30대에서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다른 세대보다 미약하나마 다소 높게 나타난 결과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는 인터넷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막판에 BBK 관련 동영상 파문의 영향을 받아 이명박 후보로부터 이탈해 이회창 후보에게 쏠린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당하다. 단순히 지지율만을 두고서 젊은 세대가 극우보수에 더 관심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낡은 틀을 벗어나고 있는 20대

두 번째 특징은, 20대가 정동영 후보에게도 가장 낮은 지지를 보냈다는 점이다. 참고로 정동영 후보에게 높은 지지를 보낸 세대는 40대와 30대였다. 이는 20대가 노무현 정권의 경제실정에 대해 가장 가혹한 비판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40대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고 있는 30대는 여전히 과거의 낡은 민주 대 반민주(수구)의 틀에 가장 단단히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 번째 특징은, 20대와 30대가 반신자유주의적 개혁진보에게 가장 높은 지지를 보냈다는 점이다. 20대는 문국현 후보에게 전체 평균 지지율의 3배에 해당하는 15.9%라는 매우 높은 지지를 보냈고 권영길 후보에게도 역시 평균 이상의 지지를 보냈다. 30대의 경우도 권영길 후보에게 평균지지율의 두 배에 해당하는 6.1%의 지지율을 보였고 문국현 후보에게도 9.9%의 높은 지지를 보냈다. 이는 386 세대인 40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다. 30대는 다소 이념지향적인 측면을, 20대는 경제와 참신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는 정도다.

국민 보수화가 아니라 ‘시대를 대변하는 진보’ 부재가 문제

그렇다면 17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나타난 20대의 ‘의지’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종합적으로 판단해볼 때, 이전 선거에 비해 20대가 보수 정치세력에게 투표하는 경향이 늘어났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단지 20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전 세대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할 점은 20대가 보수화되고 있다는 측면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화 정도가 어느 연령대보다 가장 적다는 지점이어야 마땅하다. 사실 엄밀히 말해 국민이 보수 정치세력에게 투표 행위를 한 것을 두고 국민이 보수화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오히려 국민의 진보적 욕구를 표출해 낼 ‘시대를 대변하는 진정한 진보’가 없기 때문에 현재의 정치 공간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사실상 사이비 진보개혁세력으로 판명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인 대통합민주신당이나 정통 진보 사회운동세력이 국민의 진보적 욕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아래의 어느 대학생의 진보와 보수에 대한 발언이 이를 입증한다.

“진보라고 하면 독재 정권에 대항한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진보는 도덕적 우월성을 갖췄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정권에서 '진보=도덕적'이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386 정치인의 비도덕성을 봤기 때문이다. 또 대학사회에선 진보라는 학생 운동권이 다른 의견을 잘 안 듣거나 너무 투쟁적으로 나가는 모습이 환영 받지 못하고 있다. 진보 진영에 대해 자연스러운 반감이 생긴 것 같다.”(중앙일보, 12.20)

반신자유주의 민주화 개척 희망은 20대

또한 중요한 시사점은 민주 대 수구의 낡은 틀에 갇혀 있는 386세대 보다는 20대가 반신자유주의 민주화 전선에 가장 앞장 설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치솟는 대학 등록금에 더해 평균 취업 사교육비가 200만 원을 넘어섰고, 대학 졸업 후 취직까지 평균 10개월을 허비해야 겨우 취업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청년실업률은 평균 실업률의 2배를 넘어 20대 후반의 백수가 무려 100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도 한다. 20대는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경제구조 아래 성인식을 치르기 무섭게 생활적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들 20대에게 있어 이러한 고통은 자칭 ‘민주화 세력’, ‘개혁진보세력’이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정부가 가져다 준 것이지 신자유주의 보수세력인 한나라당이 강제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나라당 통치경험을 겪어 보지도 못했다. 한나당이 그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할 원조 신자유주의 세력이라고 기성 세대가 아무리 얘기해 봐야 20대는 믿지 않는다. 기성세대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라고 할 대통합 민주신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이 가장 낮게 나온 이유다. 이들이 유일하게 경험한 집권 정치세력에 대한 불만이 누구보다 높은 것이다.

대신 그들은 비정규직 해소와 중소기업 부흥, 사람중심 진짜 경제를 구호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일정한 계선을 그은 새로운 인물인 문국현 후보에게 누구보다 높은 점수를 주었다.

대한민국의 20대, 그들은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세대보다 진보적이었으며, 어느 세대보다 낡은 구조를 깨고 새로운 시대적 지향을 터득하고 있으며 2008년 반신자유주의 민주화의 새로운 길을 앞장서 개척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다. 386 세대나 기성세대는 20대의 보수화를 개탄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낡은 프레임과 자신들의 보수화를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스트플랫폼(http://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대선, #20대보수화,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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