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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인 민주노동당 한미FTA저지 사업본부장(오른쪽)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국회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미FTA 등 경제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태인과 장하준. 최근 '민주노동당원'이 된 정태인은 새로운 명함을 내밀었다. '민주노동당 한미FTA저지 사업본부장'이었다.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인수위원회시절부터 경제정책을 짰던 그는 4년이 지난 지금 더이상 '노무현 사람'이 아니었다.

장하준은 90년 10월 한국인 최초로 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 교수가 됐다. 이후 미국식 개발경제학에 맞선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특히 서구 중심의 세계화에 대해선 강한 비판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저격수'와 '주류경제학의 대항마'로서 그들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냉소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정태인과 쉬운 말로 복잡한 경제구조를 풀어내는 장하준의 입담도 여전했다.

지난 23일 오전 <오마이뉴스>는 이들과 3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다. 한미FTA를 비롯해 양극화·고용불안·시장만능주의·광우병 쇠고기·대통령선거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진단은 명쾌했고, 해법은 분명했다.

"일본과 FTA할 때는 깐깐하더니 미국에는..."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미FTA를 꺼냈다. 대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한 단어였다. 정태인과 장하준에겐 그만큼 절실했다. "어쩔수 없이 FTA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장하준의 말이다.

"대세론처럼 잘못된 주장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세론을 따르려면 친일파 재산 환수는 왜 합니까. 그 때 그사람들은 말 그대로 대세를 따라서 제국주의 편승해서 잘 했는데….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또 한 가지, FTA가 대세라면서 자꾸 국민들 압박하는데 대세가 아니예요. 비슷비슷한 나라끼리 지역 통합하려는 것을 다 FTA로 치니까 많아보이지, 미국-한국 식으로 큰 차이가 나는 FTA는 몇 개 안 돼요."


정태인에게 다시 물었다. "참여정부 초기에 일했는데, FTA 추진방향이 이미 만들어지지 않았나"라고. 정태인은 "초기는 아니고 2003년 8월에 FTA 로드맵이 만들어졌다"고 답했다. 그 역시 이 부분에선 할 말이 많았다.

"FTA 로드맵 만들어졌을 때 미국은 맨 마지막에 가 있었어요. 이게 참여정부 임기 내에 추진될거라고 생각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국민의 정부 때 이미 시작됐던 일본과의 FTA는 진행돼 있었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현 주 UN대사)이 일본과 FTA를 탐탁치 않게 여겼죠. 일본과 협상 때 되게 깐깐하게 했어요. 가령 김 쿼터 빨리 늘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일본과 FTA) 중단됐는데, 그런 태도로 미국하고 했다면 수백번 깨졌어요."

정태인은 김 본부장이 처음부터 미국형으로 한국을 개조하겠다는 생각이 뚜렷했다고 회고했다. 미국과 FTA는 거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에 들어갔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다시 물었다. "국민들은 세계화 속에 한국이 자유무역을 해서 먹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장하준이 곧바로 맞받아쳤다.

"지금은 통상국가 아니에요? 세계에서 몇 번째로 꼽히는 통상국가에다 개방 정도도 상당히 높은 나라예요.

그런데 예를 들어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해야 된다'고 얘기하는데 반대편에서 '자동차 없이 살수 있을 것 같아?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거야?'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아니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하자는 건데 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반대쪽으로 확 몰아붙이면서, 마치 한미 FTA 반대하면 대원군 (쇄국정책) 지지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까."


"미국 제품에만 특혜주는 게 '자유'무역?"

▲ 정태인 민주노동당 한미FTA저지 사업본부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렇지 않아도 큰 목소리의 톤이 더 올라갔다. 더 들어보자.

"전 잘 믿지 않지만 주류경제학 이론으로 볼 때도 그런 식으로 개방하고 싶으면 일방적으로 개방하면 돼요. 이런 식으로 양자간 무역협정 맺어서 개방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무역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한미 FTA 맺으면 미국 제품이 아닌 다른나라 제품은 차별을 받는 건데 그건 자유무역이 아니죠. 자유무역론자들이 '우리사회를 미국식 개조하자'고 하면 국민들이 싫어하니까 '세계화 물결을 타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거죠."


정태인이 말을 이었다. '미국식 개조'가 어떻게 이뤄질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다. 물론 그는 작년부터 200차례가 넘는 여러 강연장에서 같은 이야기를 해왔다.

"한미FTA로 이제 우리의 법과 제도가 다 미국식으로 바꿔지는 거예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법률 개정이 100여개가 될 것으로 예측도 있고, 여기에 시행령 넣느냐 마느냐에 따라 숫자가 더 커지고 작아지고 하는데….

문제는 우리 정부가 '미국은 선진국이고 미국 제도는 선진제도다, 그러니까 한미FTA 하면 우리제도가 선진화되서 선진국 될 것이다'고 하는데, 이것이 선진경제론이거든요. 제도라는 게 그 나라 산업과 경제 행위에 따라 맞춰져 있는데, 미국 것을 가져온다고 갑자기 우리나라가 선진국되는 게 아니란 거죠. 산업구조조정만 빨리 진행될 겁니다."


이어서 구체적인 사례들이 줄줄이 나왔다. 미국의 대형 의약업체인 '화이저'와 국내업체 '동아제약'을 거론하면서, "매출액과 기술개발투자에서 100대1, 160대1 차이가 나는데, 제도 바꿨다고 동아가 어떻게 화이저가 되느냐"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이번 (한미)FTA로 국내 의약업체는 서너개만 남고 다 도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선과 철강·반도체·자동차 최종조립 정도 빼고는 나머지 제조업은 공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육성하겠다던 정밀부품산업에 대해서는 '궤멸'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했다.

"비효율적 시스템도 미국 것이면 선진인가"

이 정도면 심각하다. 하지만 정부나 보수언론이나 학자들은 여전히 한미FTA 시장개방을 통해 국내 경제가 단계적으로 체질이 좋아질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한미)FTA로 우리 산업에 경쟁력이 강화되는 부분이 전혀 없냐"고 말이다.

기자는 정태인과 장하준의 거센 반박을 들어야 했다. 좀 길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장하준 "시장 개방하면 선진기법 들어온다 하는데,우리나라에 있는 미국이나 영국계 은행들이 하는 게 뭐에요? 주택담보 대출하고 위험한 기업 대출은 줄이는 식으로 안전 운행해서 돈 많이 버는 게 선진 경영기법이거든요.

영국 은행가 격언이 있어요. 필요한 사람한테 절대 돈 꿔주지 말라고…. 우리는 위험을 줄여서 중소기업에 담보대출하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그런 거 안 하거든요. 원래 선진 금융기법이 아닙니다.

또다른 예로는 의료도 보세요. 미국이 국민소득의 15%를 의료비에 쓰고 있어요. 세계 최고예요. 유럽에서 높은 나라인 프랑스 스웨덴도 11% 영국, 한국도 6~7% 되는데, 미국이 우리나라 포함해서 이런 나라들 보다 건강 지표가 높지 않아요.

굉장히 비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이거든요. 다른 나라에 비해 2배 이상 돈을 쓰는데 건강지표는 영국보다 나빠요. 선진기법을 들여와서 우리를 발전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하더라도 왜 그런걸 들여오느냐는 거죠. 하필이면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정태인 "영국은 국가의료제도(NHS)라고 해서 세금으로 병원 전체가 운영되고, 물론 일부 민간이 도입됐지만, 우린 의료보험 시스템으로 국가보험 시스템이고, 미국은 민간보험 시스템이에요. 건강보험이 없어요. AIG(미국계 생명보험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험을 파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부자들 보험부터 만들어요. 줄 안 서고 오래 진료받고 1인실 들어가게 해준다 약속하고 1년에 1000만원, 2000만원 내라고 하면 우리나라 부자들 드는 사람들 꽤 많을 거예요. 부자들은 병원에 잘 안 가니까 보험회사·병원 다 행복하죠.

반면에 가난한 사람 가지고는 보험이 성립 안 돼요. 보험료 조금 내고 보험금 많이 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언제나 파탄이에요. 미국에 5000만명은 아무런 보험이 없이 살아가고 있거든요. 보험 없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상상 못하는데, 감기 하나에 10만원이 들어갈 수도 있고, 손가락이 곪았는데 (치료를 못 받아서) 자를 수도 있고."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장하준 "미국보다 더 심한 곳이 멕시코인데, 거기서는 예를 들어 누가 슈퍼마켓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미국 돈으로 1000불 안 내면 앰뷸란스 직원들이 실어주지 않는데요. 사람이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데…. 미국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극단적 시장논리가 도입되면 그렇게 되는 거죠. 현금 박치기로 1000불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안 간다는 식으로(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태인 "돈 많은 순서로 고급 서비스제공하는 건데, 이제 공공서비스에 다 적용될 겁니다. 부동산·교육도 잘 생각해보면, 비싼 것에 부자들이 돈을 많이 지불하잖아요. 교육에 대한 재원이 그 쪽으로 쏠리면 공교육은 무너지게 되어있는 거죠."

이들은 철도와 전기·수도 등의 민영화에 대한 폐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에 대해선 자신들의 경험담까지 털어놓으며,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이 부분은 두번째 대담기사에 자세히 풀어놓겠다.

대선에서 이슈화가 왜 안 될까? "범여권이 더 찬성"

이들 이야기만 듣고 있자면, 한미FTA는 한국 경제와 사회에 거의 재앙 수준에 가깝다. 하지만 많은 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그 폐해를 피부로 못 느끼는 것 또한 현실이다. 물론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한미FTA를 반대하는 국민들은 꾸준히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대통령선거까지 맞물려 있는 시점이다. 그래서 물었다.

- 언론들이 부각시키지 않은 측면이 있을수 있지만, 한미FTA가 이번 대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 같다. 정치진영에서도 대세론에 휘말려 찬반 논의가 의미가 있느냐는 의견도 많은것 같은데.

정태인 "현재 이슈가 안되는 건, 범여권으로 본다면 다 찬성이에요. 천정배만 반대고 나머지는 찬성이라서 이슈가 안 되는 거죠. 한나라당 다 찬성이었죠. 범여권 후보가 더 찬성이에요. 손학규 지사가 제일 적극 찬성이에요. 민주노동당은 다 반대에요. 그러니까 당내 경선에서는 똑같으니까 이슈가 안 돼요.

이제 본선에 가면 민주노동당은 반대고 나머지는 찬성이 확실해지는데,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얘기가 얼마나 언론에 반영돼서 주요한 이슈가 되느냐가 문제죠. 한미FTA 반대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적어도 40%의 국민이 반대하기 때문에 이건 요구해야 돼요. 국회에서도 대부분 국회의원들이 꼼꼼히 살펴보고 찬반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 없어요."

장하준 "읽기도 힘들게 만들어놓은 거 아니에요?"

정태인 "그래도 읽어야죠. 이게 얼마나 큰 정책인데. 제가 알기로는 그래도 한미FTA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 5명 이내입니다. 나머지는 몰라요. 앞으로 75명의 이상의 의원들 서명을 받아서 국정조사를 요구할 거고, 그 때 좀더 꼼꼼하게 살펴볼 겁니다."

- 국정조사 요구는 이번 9월 달 정기국회에서?

정태인 "아마 정부에서 그 때 (한미FTA) 비준 동의안을 한 번은 국회 상정할텐데 국정조사가 시작되고 있으면 (비준동의안 상정을) 못할 겁니다. 국회의원이 꼼꼼히 조사하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상정)할 수 없는 거잖아요."

장하준 "현재 인식이 너무 안일해요. 이게 국민 건강의 권리가 위협받을 뿐 아니라, 국민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잖아요. 일자리도 위협 받거든요. 미래를 볼 때 미국과 FTA 맺는다는건 분업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건데….

굉장히 큰 이슈인데 이걸 마치 농민 몇백만명 좀 희생하고 우리 다같이 미국차 좋은 차 타고 쇠고기 먹고 잘살지 뭐, 이런 식으로 보수 언론은 몰아간단 말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보수언론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 자손들의 미래조차 좋은게 아니란 겁니다. 안일하게 '(한미FTA) 별 거 아닌데, 약속(협정문 체결)도 했고 대강 하지' 이렇게 넘어갈 이슈가 아니거든요."

▲ 정태인 민주노동당 한미FTA저지 사업본부장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국회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미FTA 등 경제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시장만능론+토건국가... 이건 최악이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한미FTA가 국민들의 선택에 중요한 바로미터가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정태인은 "한미FTA라는 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좌우하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라며 "아직 피부로 못느낄수 있지만,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국민들이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물었다. "현재까지의 대선전망을 보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쪽 집권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두 분의 우려가 현실이 되겠다"고. 정태인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찌보면 그가 오늘 대담에서 진정하고 싶은 말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장만능론 더하기 토건 국가, 이것 최악이거든요. 한미FTA 막으면 되는게 아니라 과거 체제 좋다는 거냐? 아니거든요. 그러면 (한미FTA) 막으면 대안이 뭐냐는 것이고, 한미 FTA 찬성하는 쪽은 어떻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지 정교한 논거를 대야합니다.

(한미FTA) 반대하는 쪽은 한미FTA 없는 상태에서 어떤 대안을 내놓고 성장하고 분배고르게 할것이냐, 이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막연히 삼성이니까 잘 하겠지'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따져 보면 무엇이 현실적인 공약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5년 전 노무현 후보 정책에 관여했지만 민주노동당 세 후보(권영길·노회찬·심상정)의 공약이 훨씬 구체적이에요. 선명성 경쟁하다 보니까 일부는 비현실인 것이 있지만 5년 전보다 훨씬 구체적인 정책 세우고 있고, 이념적으로 일관돼 있다고 볼 수 있죠.

꼭 보수쪽으로 정권이 넘어가서 신자유주의가 확실히 전개될 것이다, 하기에 따라선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민주노동당이 한미FTA 반대하는 40% 국민들을 흡수하면 대통령 되는 거죠."

태그:#한미FTA, #정태인,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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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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