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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3월 만주 육군군관학교 졸업식. 만주국 황제 부의로부터 은사품을 받은 박정희 생도(빨간선 안)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정운현, <실록 군인 박정희> 중

재중 소설가이자 역사학자인 류연산씨(현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는 지난 2004년 2월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아이필드)라는 책을 펴냈다. '재만 조선인 친일행적 보고서'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지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월간 <말>지에 연재했던 글을 엮은 것이다.

류씨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의 발판이었던 만주지역에서 저질러진 한국인들의 친일행적을 추적했다. 그가 추적한 '친일인사'에는 동요 '반달'의 작곡자 윤극영(간도협화회 회장)과 가곡 '선구자'의 작곡자 조두남도 포함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세워진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다는 주장을 제기해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이 출판사 사장을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류연산씨 "동북항일연군 토벌에 공을 세워 만주군관학교 입학"

류씨는 이 책에서 "박정희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오래지 않아 만주에 와서 간도조선인특설부대에 자원입대했다"며 "특설부대에 있는 기간에 그는 동북항일연군 토벌에 나섰고 그 공으로 신경육군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학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경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졸업 후 그는 간도특설부대의 군관으로 배치를 받았고 열하성과 하북성에서 팔로군 토벌에 앞장서 공을 세웠다"며 "해방 후 그는 특설부대 전원과 함께 조선의용군에 참가하려고 하였으니 거절을 당하자 직접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간도특설대 정보반에서 근무한 주재덕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박정희 친일'의 핵심근거로 등장하는 간도특설대는 일본군이 '조선인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조선인이 나서야 한다'며 만든 특수부대다.

주재덕씨는 "박정희는 졸업을 앞두고 우리 부대에 와서 석달간 견습군관으로 있었다"며 "그때 그는 하북성 전각장, 동전각장, 주가장전투에 참가했고, 팔로군 선전원과 부상을 입고 백성의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구장(區長)을 체포해 우리 정보반에 넘겼다"고 증언했다.

신경육군군관학교 입학 경로를 둘러싸고 의견 분분

▲ 만주군 시절 후배들과 기념촬영한 박정희 전 대통령. 그는 자발적으로 만주군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친일 의혹'을 받고 있다.
ⓒ 박정희 인터넷기념관
박 전 대통령은 1939년 9월께 만주로 가서 만주국 신경육군군관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이후 1940년 3월 문경소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같은 해 4월 군관학교에 입학했다. 군관학교 예과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그는 일본 육사에 편입해 1944년 4월 3등으로 졸업했다. 이후 그는 3개월간의 견습군관 기간을 거친 뒤 1944년 7월 육군 소위로 만주군에 배치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신경육군군관학교에 들어간 간 경로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신경육군군관학교는 만주국 군관을 육성하기 위한 학교지만 사실 일본 육군사관학교의 만주분교였다.

박 전 대통령이 일본 천황에게 바치는 '진충보국(盡忠報國)'이란 혈서를 써서 입학했다는 설과, 군관학교에 쓴 편지가 만주의 현지 신문에 소개돼 입학을 허가받았다는 설 등이 있다. 또 간도특설대에서 공을 세워 부대의 추천을 받아 군관학교에 입학했다는 설도 있다. 류연산씨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박정희는 특설부대 건립 초기에 벌써 입대를 하였고, 1939년 8월 24일 대사하 전투에서 최현부대에 전멸되다시피 한 특설부대에서 요행 살아남은 사람 중 한사람이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대사하 전투 후 부대의 추천을 받고 신경육군군관학교로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측은 "박 전 대통령은 1937년 3월부터 1940년 3월까지 문경 소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한 뒤 시험을 통해 1940년 만주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했다"며 "간도특설대 복무설은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라고 반박하고 있다.

"군인 박정희가 없었다면 대통령 박정희도 없었다"

▲ 재중 소설가이자 역사학자인 류연산씨의 저서. 그는 간도특설대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박정희 간도특설대 근무설'을 제기했다.
ⓒ 오마이뉴스
'박정희의 만주행적'은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박 전 대통령의 친일여부를 명확하게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교사였던 그가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들어갔다는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정운현 현 친일진상규명위 사무처장이 그의 저서 <실록 군인 박정희>(2004년, 개마고원)에서 짚은 '만주행의 의미'는 음미할 만하다.

"박정희의 만주행은 그것이 개인적인 울분에서 기인한 것이든, 시대상황이 빚어낸 시대사적 산물이든 동기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의 만주행이 '교사 박정희'를 '군인 박정희'로 바꾸어 놓았고, 그것이 이후 그가 '대통령 박정희'로 변신하는 하나의 단초가 됐다는 점이다. '군인 박정희'가 없었다면 '대통령 박정희'도 우리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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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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