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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대구에서 치과 의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송재학 시인이 등단 20여 만에 첫 산문집 <풍경의 비밀>을 도서출판 랜덤하우스에서 출간하였다.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송재학은 1988년 첫 시집 <얼음시집>을 비롯하여 <살레시오네 집>(1992) <푸른빛과 싸우다>(1994)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1996) <기억들>(2001) <진흙 얼굴>등의 여섯 권의 시집을 상재(上梓)한 우리 시단의 중견 시인이다. 이러한 시적 성과물로 그는 대구문학상과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송재학 시인은 산문집 <풍경의 비밀>을 펴내는 의미를 머리말인 '글을 열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산문들은 풍경의 모서리를 빌렸으나 대체로 스스로의 시에 대한 변명하는 입이 더 많다. 내 시의 본질이란 풍경과 사람의 이미지란 걸 이 글들이 서툴게나마 말해준다. 또한 그걸 독자가 내 난삽한 시의 해설로 읽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그렇다. 내게 다가온 송재학의 시는 그의 말처럼 난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시가 어려워 읽는 데 고통이 뒤따랐지만 시구를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면서 천천히 그 표현과 내용을 음미할 때의 건너오는 그 맛은 독특했다. 나는 그의 여섯 권의 시집 모두를 그렇게 읽으면서 그의 어법대로 '보여지거나 만져지거나 냄새를 통해' 그의 시를 맛봤다.

산문집 <풍경의 비밀>의 구성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나이)는 주로 유년시절 고향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제2부(풍경의 비밀)는 말 그대로 시인 직접 찾아간 풍경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제3부(시란 나에게 어떤 운명을 준비하는가)는 문청 시절 시인의 삶과 시와 문학을 바라보는 시인 내면의 무늬가 감각적으로 새겨져 있으며, 제4부(황무지에로의 접근)는 서역으로 일컬어지는 중국과 티베트, 캄보디아 같은 곳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풍광과 거기에서 솟아난 마음을 서술하고 있다.

산문집 몇 군데를 인용해 본다.

내가 가진 식물학적 상상력으로 꽃은 상처이다. 땅 아래 뿌리를 둔 날것이라고 모두 꽃을 피우지 않는다. 꽃은 날것의 생존과 상관이 있다. 꽃이 생존을 위한 생명의 순서라면 꽃은 날것의 괴로움이다. 가을에 뿜어올리는 춘란의 꽃대가 겨울을 나고 봄에야 꽃의 사치(奢侈)를 소유하는 생을 생각해보면 꽃이란 일부 기쁨이면서 대체로 괴로움의 영역이다. 노루귀에도 그 상식을 빗댈 수 있을까. 잎보다 먼저 올라오는 작은 꽃으로부터 상처를 발견하는 것은 가혹하다. -중략- 무채색인 흰색은 노루귀의 원형이다. 그리고 겨울을 견딘 영혼이 흰색을 엿보고자 했다. 그 영혼이 원한 것은 제 마음에 추를 달고 애옥살이를 견뎌보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드러난 것이 바로 분홍 노루귀이다. 흰색이란 원초적으로 겨울을 견딘 노루귀의 당당한 꽃잎의 미세함, 분홍 노루귀란 다시 세상을 견뎌내고자 하는 어린 영혼의 막 시작한 자기 앞의 생! 그리하여 우리가 노루귀를 보았을 때, 노루귀는 두 가지 색을 우리 삶에 맞춰 드러냈던 것.-「노루귀에 대한 의심」부분.

남도 미황사와 대둔사 그리고 무위사는 마음의 절집이다. 무위사에는 고려 벽화가 있어 몇 해 전에 본 돈황의 막고굴 벽화와 연결되고, 대둔사의 대웅전은 대둔산 주봉에 안긴 것이 아니라 개울을 건너 주봉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 잡은 겸허함이 정답고, 미황사는 대웅전과 부도탑이 눈물겨운 곳이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오래 머무는 곳은 미황사 대웅전이다. 아니, 대웅전의 주춧돌이다. 주춧돌에 새겨진 조각이다. 대웅전 주춧돌에 조각을 새긴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연꽃과 게의 조화야 불교미술의 주요 콘텐츠이지만 주춧돌을 그냥 둘 수 없었던 마음이 사연을 보태면서 다가온다. 그걸 미황사 발톱이라 불러본다. 미황사 대웅전의 주춧돌은 발톱을 가진 생물이다. 발톱을 자주 깎지 않는 건 게으른 시인과 다름없다. 발가락에 꼬물거리는 건 때 많은 발톱이지만 절집의 긴 발톱은 연꽃이나 게의 모습으로 게으름을 피우다가 훅! 불면 사라지다가 금방 한 뼘씩 자라는 능청마저 가졌다. 남해의 리아스식 해변이 모차르트의 희유곡(嬉游曲)이라는 것은 다른 시인의 말이기도 하지만, 달마산의 스카이라인을 꼭짓점으로 세우고, 대웅전 주춧돌의 발톱과 부도탑을 밑변으로 연결하면 아름다운 트라이앵글이 만들어진다.
-「발톱」부분.

모든 인식은 감각에서 유래한다는 감각론의 유물적 편향을 믿고 싶다면 달이 뜨기를 기다려야 한다. 욕지도에 가려면 맑은 날과 보름달이 떠받쳐주어야 하듯. 달빛이 수면에 깔리더니 금방 파도와 함께 몽돌밭을 적시면 달빛은 산산이 부서져 파편만 남는다. 파편은 그러나 사라지는 게 아니고 보는 사람의 심장을 찔러 사람은 피칠갑하듯 붉다. 지금 나는 달빛을 피투성이 붉은색으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무엇이 달빛의 환한 색을 붉은색으로 물들였나. 달빛을 붉은색으로 피칠갑시킨 상상은 달빛에 기울고픈 나의 정조이다. 달빛만 그런가. 달빛을 실어 나르는 파도는 또 어떤가. 파도는 달빛처럼 밀려와서 부서지다가 다시 바다로 쓸려나가는데 몽돌의 아래와 위 그리고 옆에서 자갈자갈 소리를 낸다. 중국어는 4성을 가지고 베트남어는 6성, 살윈강 근처 소수 민족은 12성, 욕지도의 파도는 16개의 성조를 가지고 온갖 소리를 빚는다. 그때야말로 감각은 화엄세계처럼 완전히 열려서 파도와 달빛과 소리를 담는 귀와 눈은 일치하여 귀는 파도의 것이다가 눈은 달빛의 것이 되기도 한다. 극단적인 감각론자들은 이성마저도 감각의 한 변형으로 본다.
-「사물은 보여지거나 만져지거나 냄새를 통해 나와 비슷해진다」부분.


나는 <풍경의 비밀>을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팽팽한 긴장감과 감각적인 문체로 풍경에 다가서는, 그 풍경의 미적 인식을 그려내고 있는 송재학의 산문에 깊이 중독되었음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모네의 수련을, 자코메티의 조각을, 바슐라르를, 카프카를, 김현을, 정현종을, 이하석을, 이성복을 좋아했던 송재학 시인!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그가 좋아하고 그리워한 사람은 중학교 때 장남의 짐만 덜렁 지워두고 먼 곳으로 떠나버린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아버지를 만나려고 아니 아버지를 온전히 떠나보내려고 서해안 소래포구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위해 끙끙 시를 쓰고 있는 송재학 시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걸까'는 독자의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

그리고 송재학 시인은 <삼국유사>를 좋아하고, 유사의 현장을 찾아가 헤매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도 그것을 즐기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티베트 등의 서역도 마찬가지. 이처럼 '풍경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그는 늘 길 위에서 걷고 있으며, 책 속에서 살고 있다. '풍경의 비밀'을 다 읽고나니 시인 송재학의 내면 풍경의 비밀을 다 본 것만 같아서 다시 그의 시집을 펼쳐들고 싶어진다.

덧붙이는 글 |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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