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회귀' 캔버스에 유채 50×65cm 1940
서울시립박물관 전시장 앞 마그리트전 홍보용 현수막. 아래는 전시장을 나오면서 찍은 입구 야경
ⓒ 김형순

@BRI@20세기 미술의 또 하나의 거장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영국의 셰익스피어처럼 벨기에서는 국민영웅이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역사를 시적이고 철학적인 초현실주의로 담았다. 그는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장식미술, 광고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은 3년간 준비 끝에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마그리트 재단을 비롯 뉴욕, 런던 등에 소장된 그의 걸작 중 유화 70점, 드로잉과 판화 50여점 등 회화가 120점, 사진과 영상자료를 포함해서 총 270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실은 '조제트와 그의 친구들'을 비롯 '초현실주의 시기', '광고와 장식미술', '인상주의시기', '암소시기', '초현실주의 회귀', '1930년대 회화복제', '말년시기',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서 마그리트',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 사진' 등 시대별로 전시장을 분류했다.

전시공간도 마그리트 풍

▲ '신뢰' 캔버스에 유채 41×33cm 1964-65
전시장 로비로 들어서면 보이는 대형 전시홍보물. 왼쪽에 콩바스 전시물. 두 전시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 김형순
이번 전시는 특별히 벨기에의 마그리트 공간 전문연출자인 윈스턴 스프리에가 직접 전시관을 기획, 연출하여 다른 기획전과 차이를 보였다. 이 콘셉트는 '산책과 비밀의 정원 속 미로'란다. 약간 어둔 조명에 작품이 큰 프레임에 들어가 있어 색다르다. 미로처럼 신비한 작가의 그림 정원을 산책하며 감상하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마그리트를 흔히 초현실주의자의 거장이라 부른다. 초현실주의는 인간의 합리성과 과학성을 추구한다고 자부하던 유럽에서 어처구니없이 비참하고 부조리한 전쟁이 터지자 이에 분노하여 생긴 지식인 문화운동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질서와 가치를 거부하는 데 있다. 르네 마그리트도 이런 정신을 그림바탕에 깔고 있다.

브뤼셀 왕립미술학교 출신인 마그리트는 한때 생업 문제로 벽지디자이너로도 일했다. 초기 10년간은 입체파와 미래파에 경도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에 큰 감명과 충격을 받고 화가로서의 진로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자신만의 독자적 화풍을 창조해 나갔고, 그의 독창적 발상과 초현실적 상상력은 현대미학에서 끊임없이 대두되는 화두가 되었다.

시와 철학이 있는 그림

▲ '이렌 혹은 금지된 책' 캔버스에 유채 50×65cm 1940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와 유사한 구성의 그림이다
ⓒ 김형순
마그리트는 시와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언어를 말장난이나 유희로 보았다. 그의 유명한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아래 분명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글씨를 써두었지만 사람들은 자꾸 그걸 파이프로 보게 된다. 이건 언어가 가지는 표현의 허약성을 고발한 것이다. 작가가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 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 화가로 불리기보다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다. 그만큼 그는 사유하고 생각하는 인간이었고, 오브제의 신비로움을 발굴하는 데 진력했다. 또한 불가피한 현실의 건드리기 힘든 질서를 전복시킨 문명비평가였고,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공산주의자였다.

'이렌 혹은 금지된 책'은 시적 구성과 조형성이 돋보인다. 기존의 틀을 깨고 발상을 뒤집었다. 단조롭지만 공간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또한 글자 이미지도 도입했다. 그리고 '이렌'이라는 여자이름을 붙인 것은 그 속에 어떤 성적 암시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의 초현실주의가 전위적인 초현실주의와 다른 점은 냉정한 이성적 성찰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순한 구조에 고전주의적 분위기까지 풍긴다. 그의 그림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객을 유쾌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 전복, 상식과 고정관념 깨기

▲ '순례자' 캔버스에 유채
아래 미국사진작가 듀안 마이클가 찍은 '중절모를 든 마그리트'
ⓒ 김형순

그는 주변에 흔한 문, 새, 사과, 나무, 의자, 책상, 창문, 모자, 파이프 등을 그림의 오브제로 삼았다. 하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를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거나, 전혀 엉뚱하게 배치하여 시각적 충격과 착시현상을 유발시킨다.

'순례자'도 그렇다. 얼굴 부분을 떼어 내어 제멋대로 배치했다. 그런데 이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크다.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마그리트 그림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역시 '이미지의 배반'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를 뒤집거나 장난기를 발휘한 일종의 유머정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생뚱맞게 이미지를 전복시켜 인간의 상상력에 불지른다. 꿈의 영역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도 깨어 있는 세상을 그려 우리 내부에 잠재하고 있는 뜻밖의 경이로움을 맛보게 한다.

데페이즈망, 뚫고 자르고 해체하고

▲ '붉은 모델' 캔버스에 유채 38×46cm 1953
ⓒ 시립미술관

그는 이렇게 고정관념을 깨고 신비함을 창출하기 위해 이미지를 뻥 뚫고 자르고 해체하고 재배치하는 식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을 도입했다. 이 기법은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오브제를 모순되게 대립시켜 전혀 엉뚱한 자리에 놓아 시각적 충격을 주고 파문을 출렁이게 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이 주는 재미를 이런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붉은 모델'은 데페이즈망 기법 중 '이미지 중첩'을 쓴 것 같다. 얼핏보면 불합리하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화면 가득 어떤 꿈과 비전과 환상이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 '자정의 결혼' 캔버스에 유채 139.5×105.5cm 1926
아래 '자정의 결혼' 작품 앞에서 큐레이터의 그림설명을 듣고 있는 관객들
ⓒ 김형순

그의 그림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모친의 자살은 아마도 그에게 의미와 무의미의 본질을 묻게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가 한 말 "그림은 보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작가는 제목이 그 해설의 방편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위 그림제목이 왜 '자정의 결혼'인지는 통 납득이 안 된다. 하긴 작가가 그림에 쏟은 사고의 총량을 관객이 짧은 시간 내 소화하긴 쉽지 않다. 이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거꾸로 뒤집힌 나무, 머리, 모발, 거울, 베란다 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이렇듯 20세기에서 마그리트처럼 그 수수께끼 같은 신비로움의 미학을 빛낸 화가는 드물다. 이는 아마도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없거나, 꿈의 영역을 사용하지 않고 깨어 있는 이미지를 그려 예견되지 않은 이미지를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21세기 예언자

마그리트는 100년 전의 작업을 통해 21세기 시대정신인 창조성을 예언한 셈이다. 이런 정신을 태동시키기 위한 그의 모험과 사색과 고뇌가 결국 열매를 맺게 되었고, 틀과 상식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보다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열게 했다.

그의 그림은 그림의 근본을 그리는 그림, 그림 속 그림을 그리는 농축된 그림, 그래서 또 다른 많은 그림을 낳게 하는 그림이라고 평가하면 어떨까. 현대미술사에서 그의 그림이 영향력이 큰 것은 이런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상상의 세계를 보게 하고, 삶과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한다.

▲ 미술관2층 아트숍. 마그리트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상품이 팔리고 있다
ⓒ 김형순

덧붙이는 글 | '르네 마그리트 전' 공식홈페이지 http://www.renemagritte.co.kr/
서울시립미술관 월요일 휴관. 성인 1만원, 학생 8천원, 어린이 6천원. 전화 02-332-8182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