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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백화점. 개점시간 30분을 앞둔 이른 시간인데도 정문 앞에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 아이의 손에 상자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안을 들여다보니 톱밥이 가득 있었고 햄스터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어디서 났니?"라는 질문에 아이가 대답했다.

"선착순 50명한테 햄스터를 무료로 줘요. 어제 한 마리 받았는데 오늘 또 받으려고요."

충동적으로 얻은 햄스터, 책임감 있게 키울 수 있을까?

▲ 개장 30분전부터 줄서기 시작하는 아이들.
ⓒ 전경옥
▲ 아이들이 선물로 받은 햄스터 상자.
ⓒ 전경옥
백화점에서는 '희귀동물 체험'이란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체험관에 오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햄스터를 나눠 준다는 것. 햄스터를 넣기 위한 상자를 들고 기다리는 아이들 사이로 비닐종이 하나 달랑 들고 있는 아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설마 거기에 햄스터 넣으려는 건 아니지?"란 내 질문에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동생에게 다시 집에 갔다 오라고 채근을 한다. 아이들의 줄이 길어지자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햄스터를 무료로 나눠준다고 이야기하자 얼른 줄 뒤에 가서 섰다. 충동적으로 얻은 햄스터. 과연 책임감 있게 키울 수 있을까?

10시 반.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들이 입구로 몰려갔다. 순식간에 동이 난 햄스터. 햄스터가 들어있는 상자를 안고 즐거워하는 한 아이에게 다가가 상자 안을 보여 달라고 했다. 주최 측에서 나눠준 상자 안엔 달랑 햄스터 한 마리만 들어 있었다. 아이한테 "스트레스 안 받게 잘 데리고 가서 집 빨리 만들어 줘"라고 이야기해주는 수밖에.

스트레스 받아 잘 먹지 않는 행사장 안 '토끼'

▲ 만지는 건지 누르는 건지...
ⓒ 전경옥
▲ 손으로 잡아 꺼내는 것은 다반사.
ⓒ 전경옥
체험관으로 들어가 봤다. 체험관 중앙엔 톱밥이 가득 담긴 공간이 있었고 20여 마리의 토끼가 있었다. 아이들이 동물을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는 하지만 좀처럼 조심성 없는 어린 아이들은 토끼를 만지고 안고 기념촬영 하기에 바쁘다.

낯선 환경 때문인지 구석에 몰려 앉아 있는 토끼들을 집어 바깥으로 내 놓고 안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이 내내 신경에 쓰였다. 직원이 함부로 다루지 못하도록 말리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토끼들은 아이들 무릎 위에서 혹은 손안에서 시달리고 있었다.

행사를 담당한 이벤트 회사 직원에게 토끼의 건강상태를 물었다. "개량토끼라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로 밥을 잘 먹지 않아 수시로 다른 토끼로 번갈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여름철은 백화점 비수기라 고객을 유도하고 문화마케팅 차원에서 이런 행사를 많이 하게 된다"고 답했다.

동물복지와 관련된 질문을 하자 그는 "어린 고객들은 대부분 부모들과 함께 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리라 예상했다"며 "작년에도 같은 행사를 열었는데 아이들이 동물들을 함부로 다뤄 행사 도우미를 7~8명 추가 투입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도 행사주최 이벤트 회사측에 각별한 주의를 부탁했는데도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다"며 "동물보호 차원에서 계속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내년에는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체험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체험관 안에는 20여 개의 유리관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각종 열대지방에서 사는 파충류와 양서류들이 있었다.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희귀야생동물들.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벤트 회사 측은 "관리사들이 수시로 먹이와 온도, 건강상태를 돌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문적인 관리사가 돌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물들의 건강상태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호기심 충족 아닌 생명의 소중함 배워야

▲ 열대지방에 산다는 희귀파충류 종의 하나.
ⓒ 전경옥
▲ 수족관 안을 헤엄치는 희귀종 거북이.
ⓒ 전경옥
▲ 20여종의 희귀야생동물들은 이런 수족관 안에 1~2마리씩 들어 있었다.
ⓒ 전경옥
마용운 환경운동연합 부장은 "파충류는 환경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수적"이라며 "희귀동물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파충류 등을 수입 판매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희귀동물에 대한 생태적 지식이 전무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물들의 복지를 배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호기심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동물원이 아닌 백화점에서 희귀동물들을 구경하고 직접 만져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인간의 관점 일뿐, 동물들의 복지와 생태적 관점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꼭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보는 것만이 체험일까? 햄스터를 공짜로 받고 토끼를 만져본 아이들이 동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켰을지는 몰라도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채식물결>과 SBS U포토뉴스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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