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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깎기에 앞서.
ⓒ 손현희
남편이 다리가 아파 수술까지 한 뒤, 쉬는 날에도 바깥구경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서너 달 동안 늘 집안에만 있었다. 아직도 다리가 성치는 않지만 이제 조금씩 운동도 하면서 다리 힘을 기른다. 그 핑계로 지난 6월 11일 바깥나들이를 나갔다.

마침 집 가까이 있는 '구미 문화예술회관'에서 아주 볼만한 공연을 한다고 해서 큰마음 먹고 나섰다.

구미에서 스무 해 동안 우리 문화를 지키고 살아온 구미 놀이패 '말뚝이' 공연과 장승쟁이 김종흥 선생이 준비한 '장승 깎기 퍼포먼스'를 보았다. 어쩌면 우리 부부에겐 다른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재미가 남다르기 때문에 그 욕심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지난 겨울에 큰돈을 들여 멋진 사진기를 장만하고, 그만 남편의 다리가 아파 꼼짝 못해 가방 안에서만 잠자던 녀석을 꺼내 들고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앞마당에서 치러지는 이 공연을 보게 되니 더욱 신나고 즐거웠다. 사진 찍기에도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놀이패 '말뚝이' 공연도 아주 좋았지만, 바로 장승장이 김종흥 선생의 공연은 참으로 남달랐다.

김종흥 선생은 공연하기 1시간 앞서 마당에 나와 오늘 공연에 쓰일 통나무와 연장들을 챙겨 놓고 준비했다. 그 모습을 보니 겉모습부터 아주 남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길고 흰 머리카락을 날리며 우리 전통 옷을 입고 하나하나 준비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벌써 장승이 어떤 모습일지 마음이 설렜다.

▲ 모든 혼을 담아서, 머리카락을 날리며...
ⓒ 손현희
나는 다리가 아파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서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장승 깎기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고 어떤 의식을 치를 때부터 그분의 몸짓과 눈빛은 여느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또 손놀림이 어찌나 빠르던지 이곳저곳에서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소리도 차츰차츰 더 빠르게 들렸다.

긴 도끼를 번쩍 치켜들고 곧 장승이 될 굵은 통나무를 30초쯤 꼼짝 않고 서서 노려보는 모습은 아마 그곳에 온 사람들 모두를 바싹 움츠러들게 했을 거다. 남편도 나중에 그때를 떠올리면서 '우와!'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그 모습부터 사람들 눈길을 하나로 모으기에 너끈했다.

나도 사진기로 들여다보며 퍽 놀라, 그 얼굴과 눈빛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 공연을 사진기에 담는 전문 사진가들이 몇몇 있었지만 나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종흥 선생 가까이에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 나무 망치와 끌로 나무를 다듬으며(왼쪽 사진). 장승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오른쪽 사진).
ⓒ 손현희
김 선생은 빠른 손놀림으로 통나무를 찍고 칼로 다듬으니, 통나무는 이내 장승이 되었다. 그리고 큰 붓에 먹물을 묻혀 '월드컵 우승'이라고 글 한 토막을 써넣었다. 김 선생은 모든 게 다 마무리되자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어 두 손으로 높이 들었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벅차게 했다. 마치 지금 우리 축구대표팀이 우승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30분 남짓 동안 그분의 눈빛과 몸짓, 손놀림은 참으로 놀라웠다. 사진을 찍느라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참 기뻤다.

▲ 태극기를 휘날리며.
ⓒ 손현희
▲ 월드컵 우승, 꿈을 담아.
ⓒ 손현희
그는 '예술가의 혼'이 그대로 몸에 배어 있었다. 우리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살 것 같았다. 날마다 삶에 예술혼이 깃들여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을까?

나중에 집에 돌아와 '김종흥' 선생이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찾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장승을 깎으며 이런 공연도 여러 차례 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안동 하회마을에 살면서 '목석원'이라는 장승 공원을 꾸리며 장승을 깎고 있다. 틈틈이 공연도 하고 또 하회 탈춤도 춘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가장 어울리는 장승이 사라지는 걸 매우 걱정하며,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김종흥 선생의 누리집(http://www.jangsung.pe.kr/) 인사말에 보니,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69호와 108호 목조각 이수자'이기도 하다.

지난날에 김 선생은 나무를 심고, 농사를 지으며, 밭에 하나 둘 장승을 세워 지금처럼 장승 공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영국에 엘리자베스 여왕 생일잔치에 뽑혀 갔다가 이름이 난 사람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는 '장승장이는 잡념을 버리고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걸 잊지 않는다고 했다.

김 선생은 예술가 사이에서도 꽤나 이름난 사람이었으며, 그를 누구보다 사진작가가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마도 낯빛 하나 만으로도 아주 좋은 '사진감'이 되니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되었든 그와 이야기도 한번 나눠 본적 없고 오직 사진만 찍었건만, "김종흥 선생이 품고 있는 '예술혼'만큼은 아무나 쉽게 따를 수 없는 것이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손현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누리집- 하늘그리움(http://www.eyepoem.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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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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