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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관한 토론회 장면
ⓒ 김영조
최근 국가인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에 대한 친일 논란이 붉어졌다. 중앙대 음대 노동은 교수의 발언을 시작으로 안익태 선생의 친일 의혹이 일었고, 이에 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도 최근 이와 관련된 10여 편의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특히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친일 의혹이 있는 국가의 교체는 필연적이란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강력히 반발하는 기류도 있다. 바로 나라의 상징을 연구하는 단체인 '국가상징연구회'가 그들이다. '국가상징연구회'는 지난 4월 7일 늦은 2시 30분 인사동에 있는 식당 '아리랑' 큰 사랑방에서 '애국가'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는 안익태 탄생 100주년 기념 토론회를 겸했으며, 최근 안익태의 친일 여부를 둘러싼 논란과 이에 따른 '애국가' 교체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토론회는 먼저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이사이자 국가상징연구회 애국가분과 위원장인 김연갑씨가 발표자로 나서 '애국가의 역사성과 정통성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1992년 2백 번째 '한국환상곡'을 들으며 쓴 <국가 '애국가 연구'>의 서문에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그가 왜 애국가를 연구하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러시아 페테르스 부르크 이름 모를 거리, / 일단의 집시 악사들을 만났다. / 악사 중 한 명이 소리쳤다. / "브이 카레이스키? 유지나?-세비리아 카레스키?" / 우리의 대답도 필요없이 그들은 손짓으로 우릴 불러 세웠다. 순간, 드럼 스틱이 지휘봉이 되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 아! '애국가', / 우리의 국가 '애국가'가 러시아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 아주 색다른 4인조 금관악기만의 '애국가' 연주였다.

그날, 거리에서 그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었다. 그날 우리는 '한국환상곡' 녹화를 위해 레닌그라드 심포니 메인홀을 향해 가고 있던 중이었으니까... / 그 감동, 그리고 그날의 드미드리에프 지휘 '한국환상곡'과 '아리랑고개' 초연의 감동은 긴, 아주 긴 여운으로 남게 되었다."


이 발표의 머리에서 올해는 "무궁화 삼천리…"라는 후렴이 쓰인 애국가가 불린 지 110년,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선생이 탄생한 지 100년, 윤치호 선생이 애국가를 작사한 지 99년이 되는 뜻깊은 해임을 밝히고 있다.

또 그는 순종 황제 즉위식(1907년 8월 28일)에서 불렸던 '애국가', '독립신문' 1899년 6월 29일자에 나온 배재학당 방학 예식에서 불렸다는 '무궁화가', '신한민보' 1910년 9월 21일자에 나온 '국민가', "총회장의 사회로 개식을 하고, 일동이 기립하야 애국가를 창한 후 국기를 향하여 최졀례를 행하다"라는 '임시의정원회의록' 등을 제시한다.

또 1923년 4월 20일 임시정부 창립일을 기념하여 옥중에서 애국가를 부른 '해주 형무소 애국가 사건'과 1925년 애국가를 불렀다는 까닭으로 폐쇄한 경남 합천군 '구음의숙' 사건도 보여준다. 이후 겨레의 마음속에 나라의 상징으로 담아갔음은 물론 임시정부와 해방 이후 정부가 공식 국가로 인정해온 것 등을 들어 애국가가 대한민국을 상징해온 소중한 것임을 역설했다.

▲ 김구주석 휘호로 상해 임시정부가 발행한 안익태 작곡 <애국가> 악보 표지와 악보
ⓒ 김연갑
그는 이어 "작곡가 안익태, 작사가 윤치호 등의 친일 논란에 대해서도 '김구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한 동지에게 '우리가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했는데 누가 지었는가가 왜 문제인가'라고 한 대답은 오늘에도 유효하다. '작사ㆍ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애국가 수정ㆍ개정 문제로까지 확대해선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또 그는 "최근 불거진 안익태의 만주곡 기념음악 작곡ㆍ지휘 논란은 아직 명확한 근거도 없음을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애국가 수정ㆍ개정 대의명분은 남북통일 후 통일정부의 논의 안에서만 정당성을 갖는다"라고 주장했다.

이 김연갑씨의 발표에 이어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박정미 안익태기념재단 사무국장, 홍두표 목사(로고스 찬송가 연구소 연구원), 작곡가 김대진(중앙대 강사) 등이 토론을 했다.

먼저, 민경찬씨는 논문에서 몇 군데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을 지적했다. 머리말 중 "고종의 명에 의해 제정된 흠정 국가 '대한제국애국가'"에서 당시엔 작곡가가 없었다는 것, "1941년 광복군 성립식에서 공식적으로 연주하여 임시정부 국가로 채택했다"는 중요한 발견이지만 근거 제시가 없다는 것, "1948년 제헌국회에서 이의없이 국가로 채택하게 되었다"에서 역시 명확한 근거 제시가 아쉽다는 점을 말했다.

또 자료 1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공보' 제69호 중 "북미대한인회 중앙회가 안익태 작곡 '애국가' 신곡보의 사용허가를 요구하였으므로 대한민국 22년 12월 20일 국무회의에서 그 사용을 허가키로 의결한다"는 과연 채택인지, 이것 외에 또 있을 수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김연갑씨는 일부 근거 제시가 미흡한 부분이 있음을 시인하고 논문을 개정할 때 이의 근거를 찾아내고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 김연갑씨 발표에 토론을 하는 사람들(오른쪽부터 김연갑, 민경찬, 박정미, 김대진씨)
ⓒ 김영조
이어 토론에 나선 안익태기념재단 박정미 사무국장은 애국가 교체설은 타당치 않다며, 다음처럼 반박했다.

"안창호, 이상재 선생이 일제 때 애국가로 국민의 정서를 묶었으며, 애국가는 이미 국민의 동질성,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 또 임시정부와 해방 뒤 정부가 국가로 애국가를 채택했다는 근거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돌출되고 있는 표절성과 친일설은 학문 연구성과가 아니다.

또 일부는 1937년 불가리아 여행 때 얻어진 악상으로 작곡했다는 말을 하지만 이미 1936년 카네기홀에서 한국환상곡을 연주했다는 것만 봐도 그들이 물증은 없고, 심증으로만 공격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자막에 나왔다는 것도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일본과 독일이 동맹국이어서 일본이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도 모를 것인데도 그것만으로 친일로 모는 것은 한심하다."

그리고 나선 홍두표 목사는 "내가 어쩌면 안익태 선생 친일 논쟁의 진원지일지도 모르기에 분명히 하고 싶다. 선생은 본의 아니게 일본인 대접을 받았지만 조선인이다. 내 생각으론 그분은 어쩔 수 없이 징발당했을 것이다. 음악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분을 그동안 너무도 몰랐기에 오해의 소지도 있었다. 친일로 몰려면 명확한 판단 근거를 먼저 밝혀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어서 작곡가 김대진씨는 "노래는 음악이 30%, 가사가 70%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음악이 가지고 있는 힘은 가사와 맞아떨어졌을 때 감동을 준다. 그러기에 그동안 애국가는 나라와 민족의 상징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새롭게 제정한다면 분명하게 민족적 선율이어야 하며, 전 세대가 공감해야 하는 것이고, 세계인이 음악적 보편성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현재의 교체 논란은 분명 성급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홍보가 되지 않은 탓과 장소의 한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한 나라의 국가를 논하는 자리여서 인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또 애국가 같은 나라의 중요한 것에 대한 논란을 벌일 땐 즉흥이 아닌 충분한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야 함을 설득하고 있는 자리였다.

김연갑씨는 "애국가를 민족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고 안익태 개인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3.1 운동 때부터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온 노래인 만큼 그 안에 담긴 겨레 정신이 중요한 거지, 음악 작품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온 국민의 애국가를 몇 사람의 충동의 의한 교체론으로 흠집을 내는 일은 삼가 달라"라고 주장했다.

이 시대에 친일 청산은 우리 겨레에겐 어쩌면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그래서 일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애국가가 분명 친일음악가의 일본을 위한 작품임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분명 교체를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명확한 증거도. 학문적 연구 성과도 없이 온 국민이 사랑하는 그리고 대한민국을 상징하고 있는 애국가의 교체를 쉽게 논하면 안될 것이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김연갑씨는 '애국가 찬가'를 부르며, 호소하고 있다.

"'애국가'! / 어제는 열강으로부터 독립과 해방을 염원하며 / 오늘은 분단조국의 통일을 손꼽으며 / 다시 내일은 한민족공동체를 지향하며 부르고 불러야 할 노래. / 백 여년 전 풍전등화의 조국에 바친 지사들의 혈서와 민중들의 지지로 갈고 닦여 / 수난사의 현장에서 불려온 노래. / 하여 '애국가'는 백 년 전의 노래 아닌 백 년간이나 불려오는 노래이니 / 어떤 노래가 있어 '애국가'의 역사성과 민중성을 대신할 수 있으며 / 그 누가 있어 역사의 혈흔 밴 유산을 버린다 하겠는가"

애국가는 작사, 작곡자 개인의 작품이 아니다.
[대담] '애국가의 역사성과 정통성 연구'를 발표한 김연갑 씨

▲ 애국기 자료를 설명하는 발표자 김연갑 씨
-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가?
"나는 국가 애국가를 국가상징물의 하나로 보기 때문에 작사·작곡자 개인의 작품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안익태나 윤치호라는 개인과는 일정 거리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질문은 나와 역시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친일 문제에 대해 회피한다는 또는 사안 자체를 온정주의 시각으로 본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 답변할 것이다.

사실 나는 국내 근대 서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신 있지만, 현재 전해진 유럽의 안익태 관련 자료는 직접 보지 않아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또한, 나는 친일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왔지만 내 견해를 내세울 정도의 전문가는 아니다. 다만, 이번 안익태 경우 그가 일본 여권으로 연주여행을 했다고 보아 당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에서 일본 외교관의 간섭과 보호를 받았을 것이어서 그 행적을 친일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을 지나치다고 보지는 않는다."

- 설령 안익태 선생이 친일을 했다고 해도 다른 친일예술가들 즉 이광수, 현제명, 김은호 등의 친일과는 다르게 보는 것인가?
"물론이다. 나라 밖이라는 상황, 당시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 특히 진주만 사건 이후 조선이 아닌 일본 여권으로 미국에 다시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상황 등으로 보아 같은 시각에서 볼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어떤 행위에 대한 해석 자체를 온정적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윤치호도 친일파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물론 명백하게 친일을 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윤치호와 애국가도 일정거리에 있다. 작사자이되 그의 의지에 의해서, 또는 그의 동의를 얻어 국가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한 남북분단 이전의 민족공동체에서의 합의에는 어쩌면 그의 105인 사건 이전의 애국적 행위는 포용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윤치호의 친일 행위를 애국가 개정론으로 확대하는 것도 명분이 없다고 본다."

- 예술인들이 문학가, 미술가, 음악가들의 친일행적과 이들의 예술성은 별개로 보자고 주장하는데 이에 동의하는가?
"나는 이에 답할 자신이 없다. 다만, 민족 자존심인 <3. 1 독립선언서>를 최남선이 기초했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하듯이, 애국가도 국가상징물이라는 사실 때문에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반 개인 예술품과는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 어떤 사람들은 "1940부터 해방까지는 일제의 압박이 극에 달해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때의 친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친일청산을 하지 말자는 얘기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나라 곳곳이 썩은 것은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데서 왔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생각은?
"친일 행적을 규명하는 것과 그 결과를 어떻게 하자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본다. 전자는 냉정하게 규명해야 한다. 나도 1980년대 앞서서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처리, 다시 말해 '청산'하는 문제는 대단히 신중한 합의를 끌어낸 뒤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우 '청산'이 과연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 규명해야 하고 청산을 해야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존 방식과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 김영조

덧붙이는 글 |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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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