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회식자리. 길게 이어진 상 위로 고기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술잔과 즐거운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내가 앉은 자리 앞에는 어김없이 된장찌개가 놓인다. 회식 때마다 벌어지는 광경이다. 누군가 된장찌개를 먹고 있는 나에게 묻는다.

"왜 고기를 안 먹지? 종교 있나?"
"아닌데요."

"근데 왜 안 먹어?"
"채식합니다."

"아~ 웰빙 하는구나."
"그게 아니라 동물의 고통이 느껴져서요."

"에~ 그럼 식물은 왜 먹어?(웃음)"
"그럼 당연히 개고기도 안 먹겠네?(웃음)"
"고기 안 먹고 어떻게 살아?(쯧쯧)"

항상 벌어지는 대화이니 이제 익숙해 질 때도 되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첫 번째 질문이 나왔을 때 '네, 불교신자입니다' 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는 것. 만약 그렇게 대답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늘 반복되는 질문들은 없었을 것이다. 특별한 종교도 없고 급진적인 운동가도 아닌 내가 채식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실 채식을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은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채식주의 식당이 발달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 식당에 가도 먹을 것이 거의 없어 같이 동행한 친구를 곤란하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심코 시킨 김밥 안에서 발견한 소시지. 내가 하나하나 소시지를 골라낸다고 해서 죽은 돼지가 살아오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딸이 온다고 어머니가 더운 여름 좁은 부엌에서 끓여주신 삼계탕을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나와 같이 먹겠다고 싸 온 친구의 주먹밥 위에 놓인 계란. 그 정성과 마음을 어찌 저버릴 수 있을까.

내가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요, 삶의 질을 높이자는 웰빙 바람을 탄 것도 아니다. 피켓 들고 거리에 나가본 경험조차 없고 어떠한 정치적 운동과도 거리가 먼 내가 무슨 뚜렷한 이념으로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그저 내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평생을 우유생산을 위해 젖만 짜이다 죽는 젖소, 좁은 우리에서 빛 한번 못 쬐고 살찌워져 도살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돼지.

많은 알을 생산해야 한다며 낮이나 밤이나 줄곧 좁은 닭장 안에 갇혀 알만 낳아야 하는 닭들. 더는 알을 낳지 못할 때가 되면 그들은 도축될 것이다. 게다가 병이라도 들면? 생매장당하기까지 한다! 상황이 이런데 하물며 개들은 어떨까? 나는 일상적인 식품들 속에 숨겨진 생명의 고통에 미안해할 뿐이다.

간혹 개고기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을 발견하곤 한다. 그 논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그들의 당당함이다. 전통이라는 말 속에 숨겨진 생명에 대한 무정함. 한 생명을 죽여 내 입맛을 맞추겠다는 말 속에 들어있는 무감각. 인간을 위해 살을 제공 못 할 동물이 어디 있겠느냐만. 논리가 하나의 생명이라도 덜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더 죽이자는 쪽이니 답답하기만 하다.

가끔 짐승을 사냥한 이후 제사를 올렸다는 북극의 원주민들이 생각난다. 자신의 삶을 위해 희생된 동물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려는 마음. 내가 그리운 것은 대단한 논리나 이념이 아니다. 그저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일 뿐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슬픈 일이다. 내 삶을 이어가기 위해 누군가 희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하고 매는 들쥐를 사냥한다. 하지만 그들은 필요 이상의 먹이는 잡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굶주리지 않았는데도 다른 생명을 필요 이상 먹고 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잃게 된 것은 잠깐의 즐거움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입맛과 취향을 위해서 동물들은 생명을 바칠 수밖에 없다. 나는 한 번도 채식을 주장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 하지만 늘 나를 향해 던지는 사람들의 비웃음과 냉소. 그것이 씁쓸할 뿐이다.

언젠가 회식자리에서 이런 말 한번은 꼭 듣고 싶다. 석쇠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돼지고기 한 점을 바라보며. "이 돼지가 죽을 때 아팠을까? 우리에게 고기 한 점 주기 위해서 평생을 좁은 우리에 갇혀 있진 않았을까? 미안하다. 돼지야…" 나는 아직까지 이런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