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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스크린쿼터 사수와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쌀과 영화' 촛불문화제를 개최하는 가운데 종묘공원에서는 농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전집회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피지기 백전백승'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뒤집어보면 '부지피부지기 백전백패'란 말도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와 관련된 소위 '참여'정부의 주장을 보노라면, 아전인수가 하늘을 찌른다. 이제 곧 선진조국으로 가는 초특급티켓이라도 구한 것 같다. 하늘에서 GDP 벼락이 떨어질 것 같다. 3류 경제소설도 이 정도면 읽는 사람도 민망하다.

통상이란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최소 양자게임이다. 그런데 떡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혼자서 김칫국을 이미 마셔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의문은 '도대체 미국은 왜 FTA를 체결하고자 하는가'로 향한다.

하늘에서 GDP 벼락이라도 떨어질 듯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2일자 미 무역대표부가 대표 명의로 미 상하양원에 송부한 협상개시 통보 서한과 2월 9일자 미의회조사국(CRS)의 한미경제관계 보고서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법체계상 조약의 비준권과 교섭권은 의회에게 있다. 경우에 따라 이 권한을 매우 까다로운 조건 하에 대통령에게 빌려주는데, 이 때 권한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기구가 미 무역대표부이다. 그래서 협상을 개시하고 종료할 때 대통령 혹은 미 무역대표부 대사가 의회에 이를 통보하고 의회와 협의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다.

통상문제 및 나아가 조약 일반에 관한 한 미의회의 행정부에 대한 권한과 통제는 분명한지라, 미 무역대표부 역시 '의회감독그룹'과의 긴밀한 협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아울러 미의회는 초당적인 '국제무역위원회'라는 행정부와 별개의 심의자문기구를 거느리고, 의회조사국이라는 별도의 초당적인 조사연구기관을 두고 있다.

위 미 무역대표부의 서한과 미 국제무역위의 2001년 한미FTA경제효과 보고서, 그리고 의회조사국의 담당자가 매년 제출하는 한미경제관계 보고서 등은 한미FTA에 대한 미의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인 근거자료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위 3가지 정도의 문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이 왜 FTA를 추진하는지, 그 협상전략은 무엇인지 대강의 얼개는 파악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한미 통상협상의 의제를 결정한다"

미국제무역위 2001년 보고서의 줄거리는 이렇다. 한미 공히 GDP나 고용 등에 그렇게 큰 영향은 없지만 적어도 FTA 체결 4년 후면 미국이 대한 무역흑자국으로 된다. 다시 말해 미국에 훨씬 더 큰 실익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보고서가 나온 이후 미의회가 한미FTA를 위해 당장 나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테러전쟁'에 몰두하였고, 이후 논공행상 차원에서 싱가폴·호주·칠레 등 경제적으로만 보자면 그다지 실익이 없는 FTA와 덩치가 훨씬 큰 전미주FTA(FTAA)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의회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초부터 한국이 미국에 FTA를 먼저 제안했고 그 해 하반기에 당시 미 무역대표부 대표를 통상교섭본부장이 만나서 FTA와 관련한 설명회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2005년 1월부터 6개월간 '한미FTA사전 실무점검회의'를 한다.

이 대목을 한국정부가 2월 21일 '관계부처합동' 명의로 작성한 '한미FTA추진과 협상전망'이라는 문건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05.7월과 9월 통상교섭본부장이 방미하여 미 의회와 업계를 설득하는 등 우리 측이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하여 미국과 FTA 체결을 희망한 25개국 중 최우선적으로 미국과 FTA 협상을 하게 된 것"(강조는 원문).

그런데 이 똑같은 과정을 미국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보도에 따르면 2005년 6월 양국간 검토가 끝난 뒤 무역대표부 대표 로버트 포트만은 "핵심쟁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실제 협상을 개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김현종 통상장관에게 말했다. 이 쟁점에는 한국의 자동차 및 의약품 수입장벽, 미국산 소고기 수입금지 그리고 외국영화상영을 제한하는 스크린쿼터가 포함된다.(미의회조사국보고서 29쪽)"

미국은 이 4대 분야에 대한 한국의 조치를 정부의 정치적 능력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간주했다. 이후 "2006년 1월 말, 한국이 4개 부문 모두를 양보한다'는 내용을 제안하였다(미 의회조사국 한미경제관계 보고서, 29쪽). 그 결과는 <한겨레신문>에도 보도됐다.

'관계부처합동' 측은 이를 "한미FTA는 정부가 오랜기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며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시킨 것"(강조는 원문)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이는 미국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주도'해서 4대 현안 모두를 내 주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면 단순히 미국을 비난하면 될 일이지만, 한국정부가 자발적으로 자국민의 건강과 이해에 직결되는 사안을 외국정부에 '팔아' 넘겼다고 한다면 스스로를 이른바 '사대매국' 정권으로 인정한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오히려 솔직하다.

"한미간 경제규모와 의존도상의 불균형을 놓고 볼 때, 대개 미국이 한미 통상협상의 의제를 결정한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래 미국의 불만은 한국의 보건복지부, 식약청 그리고 환경부 등 전통적으로 외국 정부나 기업과 거의 접촉이 없는 '국내용' 관계부처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의 대한 전략의 한 요소는 이러한 현안에 한국의 내각이 나서게 만들어, 해당부처에 압력을 행사하게끔 하는 것이었다."(위의 글, 16쪽)

쉽게 말해 미국의 통상전략은 몇몇 '촌스러운' 부처가 미국의 요구를 듣지 않을 때 국무회의 전체 안건으로 만든 뒤 해당 부처를 고립시켜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게끔 압력을 넣는다는 말이다.

아마 스크린쿼터가 미국의 이런 전략에 말려든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문화관광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쿼터축소에 반대했다 하더라도 이미 국무회의 내에서는 특히 경제부처 연합군의 십자포화 속에서는 '집단이기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국이 요구한 4대 핵심쟁점은 이렇게 아예 협상테이블에 올라보지도 못한 채 명을 다 하고 만다.

▲ 17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사수·한미 FTA 저지 사전집회에 참석한 농민단체 회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동맹 대치구도에 한미FTA 갈등구도... 대회전 될 듯

오래 전 한덕수 재경부장관조차 FTA는 "고도로 정치적"인 사안임을 고백한 바 있다. 그렇다. FTA는 이미 한국사회 전체를 고도로 정치화시키고 있고, 잠복된 정치적 에너지를 매우 빠른 속도로 활성화시키고 있으며, 또한 빠른 속도로 한국사회를 빅뱅 상태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발비나 황이라는 미 보수 씽크탱크 헤리티지재단 소속 한국계 네오콘이 가당치 않은 그러나 틀리지도 않은 말을 한 바 있다.

"…국내에서 노무현 정부는 잘 조직된 특수 이익단체들의 격렬한 저항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공적인 목소리를 확보한 반정부적인 시민층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취약한 민주주의 상황에서 노 정부는 국내 정치적 압력집단의 변덕에 희생될 것이 아니라 이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이 네오콘은 "한미양국의 지도자들이 협상과정에서 등장하게 될 긴장과 대내적 정치싸움을 관리해 내지 못한다면, 한미동맹은 영원히 손상될 위험이 있다."

"한미FTA협상 결렬=한미동맹 파탄"이라는 괴기스런 대국민협박은 비단 미국 네오콘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보수언론·보수학계 도처에서 들을 수 있는 신종 담론이다.

이 신종 담론은 한미동맹을 배후로, 한미FTA를 목표로 내걸면서 네오콘을 포함한 미국-보수기득권층-독점재벌, 그리고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신주류 사이에 새로운 동맹의 건설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대중적 반미정서로 인해 지난 10여년간 지위변경을 강요받아온 친미블록을 중심으로 '새로운' 앙시앙 레짐(구체제)의 건설을 시도할 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FTA협상 중 원산지 증명과 관련 개성공단 생산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 것인지 문제와 2007년 12월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정권재창출 관련 핵심적인 필요조건으로 보이는 대북 빅딜 등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네오콘이 노무현을 지지할 것인지 지켜볼 대목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신종괴담은 친FTA세력의 히스테리를 반영한다. 실제로 미국으로서 가장 소망스럽지 않은 시나리오는 한국대중이 동아시아의 반미요새가 되고, 한미FTA는 결렬되는 경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상황이 악화될 때 미국은 자신의 안보이익과 경제실익 그 사이 어딘가에서 모종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FTA를 통해 친미 대역전 드라마를 구상할 지도 모를 한국의 친미블록으로서도 한미동맹 자체가 결정적 타격을 입는 것은 결코 수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올 한해는 기존의 대치선인 한미동맹의 '강화-유지-해체' 구도에다 FTA의 '체결-저지' 구도가 중첩되면서 최근 10년동안 보기 힘들었던 대회전이 예고된 것이 아닌가 한다.

두 개의 방향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 지는 당연 두 힘의 벡터량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사실은 FTA에 반대하는 새로운 대중운동의 실력이 한미동맹을 위협할 정도까지 성장하는가가 결정적이라는 점이다.

즉 미국과 노 정권에게 'FTA냐, 동맹이냐'의 선택을 강요할 수준이 되는가, 바로 여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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