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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계의 윤심덕, 비운의 안향련
ⓒ 신나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위 노래는 일제강점기 때 유명했던 윤심덕의 '사의 찬미'의 일부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소프라노로 이름 높았던 윤심덕은 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윤심덕은 유부남이며 희곡작가인 김우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고, 결국 현해탄 연락선 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동반 자살했다.

이 '사의 찬미' 윤심덕이 판소리계에도 있는데 바로 뜨거운 사랑에 몸부림치다 비운의 삶을 마감한 불세출의 여류 명창 안향련이다.

안향련은 1944년 전남 광산군 송정리에서 태어나 명창 정응민, 정권진, 장영찬에게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1995년 세상을 뜬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 김소희 명창의 수제자였다. 또 안향련은 '남원명창대회'에서 조상현, 성창순에 이어 3회 대회에서 장원을 한 소리꾼이다.

김소희 명창은 생전에 안향련을 "나를 능가하는 명창"이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이는 김소희 명창의 겸손한 표현일 수도 있으나 그 정도로 그녀의 타고난 천구성(애원성이 가미된 맑고 고운 소리)과 아무 사설에나 곡만 붙이면 소리가 될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안향련의 죽음 뒤 김소희 명창은 애통한 마음으로 제자를 위해 진도씻김굿을 해주었다.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 '소리의 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굿이 절정에 이르자 김소희를 비롯한 명창들의 슬픔이 폭발해 굿 노래를 따라하면서 굿이 깨질 지경까지 갔었다고 한다.

일부 평자는 "남자 명창은 임방울, 여자 명창은 안향련"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녀는 타고난 목에 후천적인 노력과 함께 동양방송(TBC)의 한 프로그램이 발굴, 지원하면서 1970년대 각 방송국을 섭렵해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안향련은 유부남인 한 한국화가와 못다 이룬 사랑을 비관한 때문인지 1981년 12월의 어느날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37살의 짧은 삶을 마감한다.

▲ 안향련 유고 전집음반 표지
ⓒ 신나라
안향련을 연구한 경기대 국문과 김헌선 교수는 "예술가는 적당히 불우해야 한다. 타고난 조건이 그러할 수도 있고,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해서 갈 수도 있다. 사치와 향락, 그리고 돈에 안주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질과 상통하는 남자를 찾아서 마음 속 깊이의 사랑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안향련의 판소리 예술이 훌륭했던 것은 그러한 불행한 조건을 서슴지 않고 받아들여 혼신의 예술을 위해 바쳤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녀의 불우한 삶은 남자와 동반자살하지 않은 것만 빼고는 '사의 찬미' 윤심덕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뛰어난 예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예술계에 커다란 손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김헌선 교수의 말처럼 또 다른 면으로 본다면 그러한 불우한 삶이 뛰어난 예술을 꽃피운 것일지도 모른다.

"안향련의 소리는 한이 응축된 소리로 볼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김헌선 교수는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버림 받은 그날의 좌절감은 한의 소리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심청가에 휘말리면 죽는다'는 속설처럼 안향련은 처절한 심청가 소리를 기가 막히게 뽑아냈다"고 답했다.

수리성(목이 쉰 듯한 껄끄럽고 탁한 소리)이 판소리의 절대적인 소리라고들 하지만 이 안향련의 '천구성'이 있어야 판소리의 완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안향련의 소리는 청아한 천구성이 분명하지만 수리성의 탁하고 곰삭은 맛까지 보태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판소리에 대한 나의 짧은 지식은 그녀의 세계를 분명하게 짚어낼 수 없다. 그렇지만 김헌선 교수의 다음 말은 지금 우리가 안향련의 세계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당위성을 보여준다.

"안향련의 일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어쩌면 안향련의 판소리가 음반으로 살아 있는 한 그에 대한 일생을 완성하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청중들의 몫일 것이다. 안향련의 판소리 예술은 높은 하늘에 걸려 있는 미완성의 긴장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 준다."

▲ 안향련의 소리하는 사진
ⓒ 신나라
안향련은 우연히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임방울 명창과 같은 '송정리(현재 광주 광산구 송정동)' 출신이다. 정재근, 정응민, 정권진, 박유전, 조상현 명창의 전남 보성, 송흥록,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명창의 남원과 더불어 송정리를 판소리 명창을 배출한 3대 고장으로 불러도 괜찮을 듯하다.

이런 안향련의 유고 음반이 신나라(회장 김기순)에서 8장의 전집으로 나왔다. 1~3장은 심청가, 4~5장은 흥부가가 녹음돼 있고, 6장은 춘향가 일부, 심청가 중 범피중류, 육자배기 등 민요가 실려 있으며, 7~8장은 안향련, 오정숙, 남해성 명창의 토막소리 민요집으로 구성돼 있다.

김헌선 교수는 "요절한 예술가의 생애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늘 환상을 품고, 궁금증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안향련과 비슷한 연배에서 그러한 수준을 보여준 소리꾼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향련의 소리를 거듭 듣고자 하며, 그 소리로 인해서 판소리의 우람한 숲에서 평안함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신선하고 해맑은 그녀의 판소리는 우리를 슬프고도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천재는 요절한다던가? 아까운 천재는 요절함으로써 우리에게 들려줄 소리를 아꼈다. 하지만 요절했어도 그 예술의 천재성을 다시 조명하고 빛내줄 책임은 우리들에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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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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