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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스트(N.EX.T) 9년만의 새 앨범 <개한민국>
ⓒ 배성록
넥스트(N.EX.T)가 해체한 것이 1997년었던가. 기억이 맞다면 '더이상 국내에서는 올라갈 곳이 없다'는 말로 해체의 변을 대신했던 것 같다. 건방진 발언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주류 음악계'에서 넥스트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시도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들은 국내 어떤 그룹도 시도하지 못했던 웅장한 사운드 연출을 선보였고, 더이상 거창할 수 없을 만큼 큰 스케일의 컨셉트 음반을 만들어냈으며, 그걸 대중적인 성공으로까지 연결시켰다.

물론 음악적 내용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1990년대의 대중음악계에서 넥스트의 음반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요컨대 넥스트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허물어지지 않을 자신들만의 거대한 동상을 구축하는데는 성공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 행보다. 완전히 해체된 듯 보였던 넥스트는 사실 사라지지 않고, '노바소닉'이라는 이름으로 갈지자 행보를 계속했다. 넥스트 음악에서 보컬을 랩으로 대체한 괴이쩍은 음악을 하는 밴드였다.

잠깐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멤버의 마약 사건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한편 신해철은 영국으로 건너가 외국인 연주자들과 함께 테크노 음악을 하는가 싶더니,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꽃미남 둘을 대동하고 나타나서는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음악과 별반 어울리지도 않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했다.

마초적이고 유치한 노랫말에 평이한 사운드가 어우러지는 '왜 결성했는지 모를' 밴드였다. 솔직히 말해 넥스트 해체 이후 신해철이 제대로 해낸 일은 음악도시 마왕 노릇이 전부가 아닐까 싶을 만큼, 그의 행보는 오락가락이고 헷갈림의 연속이었다(대선 때 노무현 지지 연설을 '잘한 일'에 포함시킬 지는 읽는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2004년 신해철의 선택은 뜻밖에도 넥스트 재결성이다. 물론 멤버는 전원 젊은 피로 교체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신해철 1인 독재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또한 해체 당시로부터 10년이라는 꽤 긴 시간이 지났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되었을 것. 신해철 생각에는 1995년 당시에는 '더 올라갈 곳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게 중요한 부분이다.

1990년대 당시에는 낙후된 주류 음악계에서 넥스트의 빠방하고 블록버스터적인 음악이 분명 우리 대중음악의 '견인' 역할을 했다고 치자. 2004년 오늘 이 시점에서 넥스트가 나서서 해야할 역할이 과연 무엇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불행하게도 나로서는 넥스트의 이 5집 음반이 대체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넥스트 4집 이전 그대로다.

CD 두 장에 무려 101분에 가까운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 거대 스케일의 컨셉 음반. <개한민국>이라는 선정적인 타이틀과 '뭔가 상징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별 것 없는' 음반 표지. 저질 기독교에 대한 질책부터 카사노바의 천태만상까지 미시와 거시, 지상과 천상을 오가는 광범위한 대상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판. 강렬한 하드록과 댄서블한 로큰롤과 서정적인 발라드가 한 음반에 묶이는 놀라운 슈퍼마켓식 구성 등….

모두 하나 같이 90년대의 넥스트가 했던 것들이다. 때문에 나로서는 이 음반이 1996년에 나왔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혹시 10년 전에 만들어 놓고 이제서야 발표하는 것은 아닐까. 음반을 가득 메우고 있는 80년대식 헤비 메탈을 듣다 보면, 그런 착각이 전혀 근거없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이 음반의 기타 리프는 정말이지, 메탈리카(Metallica)나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헤비 메탈 클리셰 투성이다. 게다가 노골적인 80년대 메탈 사운드는 2004년 현재의 '개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재료를 담는 그릇으로 적당하지 않다.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다.

이런 인상은 메탈 일변도의 첫번째 CD를 지나 모던록과 발라드가 난삽하게 뒤섞인 2번 CD를 들으면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도저히 한 음악 내에서, 한 음반 내에서 조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잡다한 요소들이 '대한민국의 현재를 비판한다'는 대전제 하나로 뭉뚱그려져 있다.

장엄하고 압도적인 대곡들과 노래방용 발라드("Satan's Bride")가, 라이브 기타 솔로("Devin's Boogie")와 펑크 메탈("아들아, 정치만은 하지마")이 한 음반에 담겨 판매될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여기가 '개한민국'이니까 벌어지는 사태일 것이다.

사실상 이 음반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거칠고 전방위적인 사회 비판도 다른 허물들을 상쇄하지 못한다. 신해철은 언제나처럼 '전지적 시점'에서 세상을 이야기한다. 전지자는 결백하며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이고, 따라서 그런 존재가 욕설과 과격한 표현들을 두루치기하며 온갖 사회 분야에 대해 늘어놓는 비판적 메시지는 공허할 뿐이다.

심지어 어떤 곡들에서는 그 과격한 노랫말이 전략적인 태도이자 선정적인 수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벌써 세 곡이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어차피 방송 활동은 발라드곡으로 할텐데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제는 방송금지 처분도 하나의 홍보 전략이 되어가는 가요계인지라, 의심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앞에서 한 말을 되풀이하자면, 나는 신해철이 굳이 넥스트라는 이름으로 이 음반을 낸 이유를 모르겠다. 이 음반은 2000년대에 나와서는 안 될 음반이다. 90년대 넥스트가 한창이던 시잘에 나왔어야 할 음반인 것이다.

이런 음반은, 가요계에 컨셉트 앨범이 전무했던 시절, 2CD 100분 러닝타임 대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그 시절, 퀸(Queen) 스타일의 코러스 오버더빙이나 리얼 오케스트라처럼 들리는 신시사이저 같은 고급 녹음 기술이 불가능했던 그 낙후된 시절, 가사에 욕 들어가면 제재받던 그 촌스럽던 시절에 나왔어야 했다.

그 때 나왔으면 박수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004년이다. 두 장짜리 컨셉트 앨범은 마음만 먹으면(돈만 있으면) 동방신기라도 만들 수 있으며, 국내 녹음 기술이 너무 좋아져서 외국 나갈 일도 없는데다가, 가사에서 욕을 하건 외설을 하건 아무런 뒤탈이 없는 그런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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