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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비합법적인(illegitimate) 방법으로 받았음을 암시하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상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며, 위원회의 심사절차 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 겸 노벨연구소 소장)

▲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 겸 노벨연구소 소장
지난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금년도 각 분야별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 발표했다. 반면 이 기간동안 국내 정치권은 한 언론의 보도와 관련,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로비의혹을 둘러싸고 연일 정치공방을 벌였다.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를 두고 일각에서는 '나라 망신'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언론 역시 이 공방에서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검증도 되지않은 최 모씨의 문건내용을 마치 확인된 사실인양 전제하고 정치권의 공방을 연일 중계하는데 그쳤다. 이들 언론사들은 유럽지역에 특파원을 두고 있었으면서도 노르웨이 현지 확인취재를 나선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1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있는 '2000년 노벨평화상 로비' 의혹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최규선 만났지만, 기부금따위는 없었다"
룬데슈타트 총장의 두번째 이메일

<오마이뉴스> 기사가 나간 후 일부 독자들은 최규선이 룬데슈타트 총장과 찍은 사진(<뉴스위크 한국어판>에 실림)을 들어 "최규선이 룬데슈타트 총장에 대해 로비를 시도한 것 자체는 사실이 아닌가? 룬데슈타트 총장의 답변은 로비 대상자의 해명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같은 독자들의 물음에 마치 화답하듯 룬데슈타트 총장은 14일 오후 <오마이뉴스>에 두 번째 메일을 보내 "<뉴스위크 한국어판>에 실린 사진처럼 최규선을 만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이상할 건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는 "나는 매년 수천 명까지는 안돼도 수백 명을 만나고, 그 중에는 평화상 수상을 위해 특정 후보를 홍보하려는 사람들도 포함된다"며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최씨는 물론, 어느 누구로부터 재정적인 기부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당신이 노르웨이적인 가치관에 대해 안다면 로비설 같은 것을 제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여 기자를 무안하게 했다. / 손병관 기자
가이르 룬데슈타트(Geir Lundestad)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노벨위원회가 뒷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다"며 한국내 논란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노벨위원회가 '평화상 로비' 논란에 대해 한국 언론에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은 지난주 <뉴스위크 한국어판>(중앙일보사 발행)의 최규선 로비의혹 보도 이후 처음이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1일 룬데슈타트 총장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위원회의 입장을 묻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룬데슈타트 총장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5인 위원회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위원회 회의에 빠짐없이 배석하며 수상자 결정의 실무 절차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1990년부터 사무총장을 맡아온 룬데슈타트는 또한 <뉴스위크 한국판> 보도를 통해 99년 2월 최규선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고, 최규선이 팩스로 편지공세를 하는 등 '노벨상 로비 대상'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오마이뉴스>는 룬데슈타트 총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뉴스위크 한국어판의 보도와 이를 둘러싼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공방을 소개한 후 노벨위원회의 수상자 결정 과정과 당시 김 대통령의 수상 가능성 등을 물었다.

룬데슈타트 총장은 당일 있었던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 직후 보낸 회신에서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비합법적인(illegitimate) 방법으로 받았음을 암시하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며 로비설을 일축했다. 룬데슈타트 총장은 1999년 2월 최규선과 만남을 가지고 팩스로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최규선이 그해 가을 금강산 관광 초청 의사를 밝히자 이를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룬데슈타트 총장은 또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상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며(outrageous), 위원회의 심사절차 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지난 8월 방한 중 KBS와의 회견에서도 같은 말을 했는데, 나는 이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KBS와의 회견에서 "누군가 뇌물로 매수하려는 인상을 줬다면 위원회는 오히려 반감을 가질 것이다. 노벨상 선정과정에 외부 로비가 있을 경우 해당자를 제외시키고 선정작업을 더욱 까다롭게 진행한다"며 노벨평화상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절대 살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룬데슈타트 총장은 또한 "남북정상회담이 김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노력을 추적해 왔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DJ의 업적이 해당연도 수상자 결정에 미칠 영향에만 촉각을 세웠지만, 노벨위원회는 수상후보의 '반짝 인기'보다는 '일생의 업적'에 초점을 맞춰 수상자를 결정해왔다는 해석이다.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중재,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 공로를 인정받았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가 올해 노벨상을 거머쥔 것은 시사할 만한 대목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00년에도 노벨상 후보로 추천돼 김 대통령과 최후까지 경합을 벌였으나 결국 상을 양보해야 했다.

노벨상은 100년 이상 쌓아온 권위와 함께 수상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노벨상에는 로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나 지나온 역사는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 노벨평화상 수상자격 시비와 함께 로비 의혹에 휘말렸던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 총리.
대표적인 경우가 1967년 "핵무기를 제조, 보유, 반입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천명한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1974)로, 당시 일본기업들이 대대적인 로비에 나섰고, 사토 총리 사후 20여 년이 지나 "69년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협상 당시 닉슨 미 대통령과 유사시 핵무기의 일본 재반입에 합의했다"는 내용의 비밀각서가 폭로돼 공적에 평화상 수상결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럼에도 노벨상을 둘러싼 로비 의혹과 수상자의 자질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노벨상이 축적해온 권위를 보여준다. 1905년 테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몇몇 평화상 수상자들의 자격 시비가 불거져 나왔지만, 최근 20년간 수상자들의 면면은 "노벨위원회가 절대로 상을 받아서는 안될 사람에게 상을 주었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반박하기 어렵게 한다.

특히 중국과 미얀마 정부가 각각 달라이라마(89년)와 아웅산 수키(91년)에 대해 자질 시비를 걸고 수상 의미를 폄하하는 것은, 티벳 독립과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이는 평화상 수상자격 시비가 항상 온당한 문제제기가 되지 못하고, 반대세력들의 정치공세에 불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노벨위원회 스스로도 김 대통령의 수상을 둘러싼 '로비'가 있음을 인정한 적이 있다. 2000년 11월초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한반도 국제심포지엄에서 한 독일학자가 "김 대통령이 로비를 통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어색한 침묵 끝에 올라브 욜스타드 노벨연구소 연구실장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김대중 정부로부터의 로비가 아니었다.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된다는 로비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욜스타드 실장이 '역로비'를 추진한 정치적 반대자로 지목한 사람들은 여전히 야당이지만, 곧 정권을 잡으리라는 기대에 들떠 있다. '정상회담 뒷돈 거래설'을 제기한 야당은 <뉴스위크 한국판> 보도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벨상 반납운동'을 운운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조선, 중앙, 동아 3대 보수언론들도 "김 대통령 진영이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일개 브로커 같은 사람을 동원해 이른바 'M-프로젝트'라는 계획을 세웠는가의 여부이고, 둘째는 이 계획이 실제로 추진됐는지의 여부가 밝혀져야 한다" (조선), "문제는 국가기관이 로비에 동원됐느냐는 것과 함께 흑막이 개재된 '기획로비'가 있었느냐는 부분을 청와대가 말끔히 밝히면 될 일이다" (중앙), "국민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노벨상 로비설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동아)고 청와대를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 룬데슈타트 사무총장은 오슬로대 국제관계사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연구실에서의 룬데슈타트 총장 모습.
그러면서도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청와대에 대해 "노벨상 로비'를 했냐"고 다그치기만 할 뿐이지, 로비를 받아 김 대통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심사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 노벨위원회에 취재 내지 진상조사를 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애당초 이들의 '노벨상 로비 의혹' 공세 자체가 '국내용'이었고, "이제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었으니 한 걸음 물러나자"는 계산이 깔려있었는지는 모른다. 지난주말부터 한나라당이 노벨상 의혹 공세에서 발을 빼는 것이 그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정파적 이해를 앞세워 한 국가의 위신마저 내던진 한국정치의 혼란상을 접하고 노벨위원회가 한국인에게 또다시 선뜻 평화상을 줄지는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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