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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이 곧 사법처리될 것 같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차남에 이어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다.

죄를 지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받게 되는 법치주의 확립 측면에서 진일보하고 바람직하지만 우리사회의 부패구조가 이토록 뿌리 깊은가 생각할 때 비참해진다. 불과 4년전 김영삼정권을 몰락시킨 아들의 국정농단과 비리를 지켜보면서 타산지석은 커녕 전철을 밟은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최규선이라는 희대의 브로커가 대통령과 야당총재 주변을 배회하면서 거액을 뿌리며 이권에 개입하고 ‘정치보험’을 노렸다는 일련의 보도는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다. 여기에 일부 국회의원과 도지사가 거액의 뇌물을 받고 줄줄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은 참담하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파크뷰 분양을 둘러싸고 정치인ㆍ공무원ㆍ언론인ㆍ법조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 백 수십명이 특혜를 받았다는 보도에는 차라리 허탈할 뿐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부패는 여전하다. 부패는 불패(不敗)하는가.

부패의 역사는 길다.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과일을 따먹는 순간부터 인간은 부패라는 죄악의 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원시수렵 사회에서 공동으로 사냥한 멧돼지를 놓고 누군가 맛있는 살점을 슬쩍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무한을 추구하는 욕망이 부패를 불러오고 탐욕으로 이어지면서 윤리와 종교, 법제를 통한 규제가 나타나게 되었지만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는다.

한국사에도 부패의 ‘살점’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원병을 요청하러 고구려에 갔던 김춘추가 첩자 혐의로 감금되자 신라는 고구려 보장왕의 총신인 선도해(先道解)에게 청포 3백보(三百步)를 주고 탈출시켰다는 얘기가〈삼국사기〉에 전한다.

또 신라 화랑 죽지(竹旨)의 죽만랑(竹曼郞) 무리인 득오(得烏)가 당전(幢典)의 직책을 가진 익선(益宣)에게 불려가 부역을 하게되자, 죽지는 조(租) 30석과 기마용구를 익선에게 주고 득오의 휴가를 허락받았다는 기록이 역시〈삼국사기〉에 전한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인물은 인종 때 중서령(종1품)을 지낸 이자겸이다. 그는 관직을 매매하고 국공(國公)을 사칭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재하였다. 뇌물로 받은 수만 근의 고기가 창고에서 썩는 냄새가 시가지를 진동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후기에는 3정(三政)이 문란하여 관직을 팔고사는 것이 예사롭게 이루어지고 탐관오리가 날뛰어 민란의 원인이 되었다.

고대사회의 부정축재는 뇌물수수, 관물(官物)의 절취, 권세를 이용한 침탈 행위 등 세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에서는 법령으로 뇌물을 받은 사람을 엄하게 다스렸다.

청백리제도가 시행되고 암행어사가 수시로 지방관청을 살핀 조선전기에는 비교적 부정부패가 성행하지 못하였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관리를 장리(贓吏)라 하여 엄격하게 처벌하였다. 장리에 대해서는 죄의 경중에 따라 죄명을 몸에 새기는 자자형(刺字形)과 최고형으로 참형(斬形)등이 있었다.

조선시대 탐관오리들의 축재방법에는 결세 빼돌리기, 향임(鄕任)매매, 송사 척결시 뇌물수수, 재물 탈취 등이 있었다. 조선 말기 부패정치의 상징으로 꼽히는 고부군수 조병갑은 부임하자마자 만석보(萬石洑)의 수세를 비롯하여 온갖 부당한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등 농민에 대한 착취를 일삼았다. 이에 분노한 농민이 전봉준을 중심으로 들고 일어나 동학농민혁명의 불길로 치솟았다.

중앙 정계에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었던 조병갑은 동학혁명으로 1년여 동안 ‘근신’하는척 하다가 복권되어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하였다. 이렇게 부패타락한 왕조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기적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패란 일상생활에서 공직자가 시민으로부터 ‘가외수입(Extra Income)'을 얻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는 공직자의 ‘가외수입’ 정도는 이미 관례처럼 되고 보다 심각한 상태는 권력형 부패로서 정경유착, 권언(權言)유착, 지방토호세력끼리의 유착이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사회의 부패원인을 한국부패학회 회장 김영종 교수(숭실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바 있다.

1) 일제에 협력한 기득권층이 이익 추구를 위한 뇌물의 시작.
2) 군사정권의 영향아래 재벌중심 경제 성장책이 빚어낸 정경유착.
3) 유교문화의 권위의식.
4) 이렇다할 부패방지법 조차 없는 제도적미비.
5) 정치인, 공무원들의 공직관 결여.
6) 부패를 자라게 하는 시민의식이 빚어낸 사회적 풍토.

▲ 5월 11일자 <대한매일> 만평 ⓒ 백무현

건국이래 역대정권은 나름대로 공직자의 부패를 근절시키고자 반부패 운동을 벌여왔다. 박정희 정권이 5.16공약으로 내건 ‘부정부패 일소’를 시작으로 유신시대의 서정쇄신, 전두환 정권의 사회정화운동, 노태우 정권의 새질서 새생활운동, 김영삼정권의 윗물맑기운동, 김대중정부의 제2건국운동에 이르기까지 부패척결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런데도 부패는 갈수록 대형화. 관행화. 제도화되는 추세에 이르고 국가적 부패지수는 높아만 간다. 새정권이 출범할 때면 어김없이 구악 청소와 깨끗한 정부를 구호로 내걸지만 얼마 안가서 그 정권 역시 부패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부패가 '풍토병'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부패를 영어로 'Corruption'이라 하는데 'cor'라는 접두사는 ‘함께’ 썩는다는 뜻을 갖는다. 마치 사과상자 속에서 한 개의 썩은 사과가 다른 사과에 옮겨져 모든 사과를 썩게 만드는 이치와 비슷한 것이다. 최근 대형 부패사건이 터질 때마다 드러난대로 뇌물로 현찰을 사과상자 속에 넣어서 주고받는 것은 한국적 부패현상의 한 단면으로서 아이러니라 하겠다.

권력실세와 브로커, 정치인과 기업인, 공직자와 업자가 결탁하여 ‘함께’ 썩게되고, 권력의 몇 사람이 썩거나 관련부처 (또는 기업)의 공직자 (기업인)가 썩게되면 부패균이 다른 곳으로 옮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함께’ 썩지 않으면 오히려 소외되거나 투서와 모략을 받게되어 불이익의 대상이 된다.

부패의 병균은 워낙 면역성이 강해서인지 좀체로 약화되거나 근절되지 않는다. 부패의 먹이사슬 현상으로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시랜드 화재참사가 일어났으며, 전직 대통령이 둘 씩이나 옥살이를 하고 현직 대통령(당시)의 아들과 그 일당이 구속되면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남겼는데도 별로 효용성이 없어 또 현직 대통령의 두 아들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부패방지를 위한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제도적, 법률적 모든 방법이 동원돼야 한다. 주요 정당 대통령후보들은 공허한 정치구호만 내걸것이 아니라 보다 확실한 정책과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부정부패의 척결은 국가의 모든 부분 특히 그동안 성역화된 권력기관 등 총체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 국민 스스로가 부정부패를 배격하고 정의감으로 무장하여 자존심을 지키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부정부패는 반드시 드러나고 처벌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청심(淸心)편에서 “뇌물을 주고 받음에 누군들 비밀히하지 않겠는가마는 한 밤중의 소행이 아침이면 이미 소문이 퍼진다”고 했다. 실제로 호텔방이나 지하주차장에서 사과상자나 골프가방으로 주고받는 뇌물도 곧 드러나고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공직자가 부패제의를 받을 경우 제의를 한 사람을 고발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때는 직무유기로 처벌하고 있다. 이것도 부패방지를 위한 한 가지 방안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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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