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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에 많이 부르는 '어린이 노래'의 한 구절이다.

그 어린이 날이 끝나고 정확히 10일이 지나면 오는 날이 있다. 바로 스승의 날. 세종대왕 님의 탄신일에 맞춰 만들어 놓은 이 스승의 날 때문에 푸른 5월이 아이들과 교사들의 마음을 푸르게 멍들게 하기도 한다.

갑자기 5월이 무슨 푸르둥둥하다는 얘기를 하냐고? 여기서 5월 얘기를 꺼내는 까닭은 '촌지'문제가 풍선처럼 커지는 때가 바로 이 때쯤이기 때문이다. 촌지문제에 대해 말을 하려고 하니, 지난 해 5월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노동자들이 노동절에 쉬듯, 스승들은 스승의 날에 쉰다? 스승의 날은 법정공휴일이 아니었는데 지난 해 임의단체인 '서울시초등교장협의회'라는 데서 쉬게 만들었다. 아직도 대화와 토론보다는 명령과 복종이 미덕으로 통하는 학교현장인지라 서울 초등교사들 모두는 본인들의 뜻이 어떻든 이날 집에서 쉬게 되었다.

아마 교장단의 이런 결정이 작년 5월 초쯤에 나왔을 것이다. 방송은 이 때다 싶었는지 왁자지껄했다. '서울 지역의 교장들이 촌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승의 날 쉬기로 했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1999년 5월 11일 5학년 우리반 교실. 학습시간에 앞서 교사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를 뒤적이고 있는데 아이들이 언제나 그렇듯 왁자지껄했다. 이럴 때는 나는 언제나 그렇듯 '조용히 하라'고 엄포를 놓아야 하는데 이 날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왜? 아이들이 바로 스승의 날 문제, 정확히 말해서 촌지문제에 대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어서 그랬다.

"스승의 날 학교 와! 왜 안 오냐? 작년에도 왔는데......"
"안 온데. 방송에도 나왔어"
"왜 안 온데?"
"촌지 때문에 안 온데. 뉴스에서 그러더라."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본 한 여자아이가 말하자, 이 작은 논쟁은 곧 정리되었다. 나는 못들은 척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5월 14일 아침 8시 40분 우리 반. 열려 있어야 할 교실 뒷문이 닫혀 있고, 문짝 한쪽에 "앞문으로 오세요"란 쪽지가 걸려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 앞문으로 다가서자 "야 온다!"란 말이 밖에 있는 내 귓가에도 들려왔다. 드디어 앞문을 열자 종이폭죽이 터지고, 풍선 50여개가 나를 반겼다. 그리고 아이들의 노래소리.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언제 준비했는지 스승의 노래 복사지가 아이들 손에 들려 있고, 오르간과 바이올린, 플릇과 같은 악기들도 함께 박자를 맞췄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잠꾸러기들이 선생보다 일찍 나와야 한다면서 6시 30분부터 7시 사이에 모두 학교에 왔다고 한다. 난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15만원 촌지 교사 첫 뇌물수수죄 적용.' 지난 해 11월 10일 조간신문엔 재판부가 95년에 학부모 2명으로부터 각각 10만원, 5만원을 받아 챙긴 어느 교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요사이 언론보도와 사회인식을 보면, '돌멩이 속에 쌀이 섞였는가? 아님 쌀 속에 돌멩이가 섞였는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정도로 지나친 느낌이 든다. 옥의 티를 잡는 것은 옥을 더욱 옥답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최근 촌지교사와 무너지고 있는 학교교육에 대한 사회인식 또한 이랬으면 좋겠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면 순수한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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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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