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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11일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해고에 맞서 85호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150일이 되는 날입니다. 이날 김진숙에게 가는 '희망버스'를 운영합니다. - 기자말

김진숙 지도위원은 35미터 높이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고공농성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35미터 높이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고공농성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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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모르고 피는 꽃들을 보면 슬퍼진다. 철거를 앞둔 마을의 어두컴컴한 길을 걷다가 봤던 이름 모를 분홍꽃. 어둠에도 제 색을 잃을까 요란하게 뽐내고 있었다.
미군기지 만든다고 군인, 경찰 군홧발로 어지럽던 평택 대추리에도 달걀 만한 목련은 봄이라고 피어있었다. 곧 무너지고 곧 뿌리째 뽑힐텐데, 참 철없는 것들. 말귀 알아듣는 것들이면 주책 그만 떨고 올해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 니 모습 보는 여기 사람들 얼마나 또 마음 무너질까, 야단도 많이 쳤었다.

<소금꽃 나무>. 김진숙의 책을 사놓고 수없이 들추다가 덮었다. 여기도 꽃 또 피어있네.

"한진중공업 다닐 때,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었겠지요.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들, 황금이 주렁 주렁 열리는 나무들… 그러나 그 나무들은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할 수 없는…."

사실 몇 번을 들췄다, 덮고, 들췄다, 덮었는지 모른다. 너무 숨이 차서 읽혀지지가 않았다.

그녀가 보내야 했던 사람들. 김주익이 있었고, 곽재규가 있었고, 박창수가 있었다. 박창수 열사를 뚜렷이 기억한다. 아니 그의 죽음과 죽음 뒤에 타올랐던 뜨거운 5월을 기억한다. 막 대학생이 되고 교과서 밖의 세상을 만났던 그 해. 자고 일어나면 사람이 죽었었다.

노제와 노제… 만장과 만장 사이에서 스물 한 살은 혼돈 속에 있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최루탄이 무서웠고 연일 이어지던 화염에 불타는 도시들이 생경했다.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 벽을 부수고 주검을 빼앗아갔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달려갔던 안양병원. 박창수 열사를 외치던 눈물 가득한 목소리들. 박창수. 강경대. 이승희. 김귀정. 1991년의 일이다.

85호 크레인에 올라있는 그가 야속하기만 하다
어느 해 노동자 대회였던가. 마이크를 잡은 어떤 여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뻔하고 지루하고 그만큼 익숙했던 대회의 와중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 같은 사람들이,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용찬이 예란이에게, 준엽이, 혜민이, 준하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10년도 훌쩍 넘어, 박창수의 이름을 들었다. 한진중공업에서 또 한사람의 노동자가 죽은 뒤였다. 김주익… 높이 36m의 크레인 위에서.

"산 자는 누구나 죄인이었던 그 날 이후. 우리는 각자의 양심에 검은 리본을 달았었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이란 것도 했습니다. 129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매달아 죽은 시신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을까? 함께 하지 못했던 자책감에 몸부림을 했었고 우리 모두의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속죄한 재규형 때문에 한동안 서로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김주익의 동료 곽재규가 도크에서 뛰어내려, 그들의 양심을 대신 속죄했다는 그날 이후. 35m 크레인 위에서는 김주익의 관이 내려오고, 10m 도크 아래에서는 곽재규의 관이 올라오던 그날 이후 회사와의 싸움은 끝났었다. 그러나 2010년 한진중공업은 노동자들을 향한 정리해고의 칼을 다시 빼들었다. 바람은 잦아들지 않고 숨죽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2003년을 건너 2010년, 2011년. 유령처럼 배회하던 과거가 다시 현재로 복귀하던 날부터 그녀는 85호 크레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나 보다.

"'엄마, 회사가 너무 무섭다.' 밤새 눈물로 편지를 써 놓고는 부치지도 못한 채 그 무서운 곳으로 날마다 향하던 어린 옥선이, 태자, 미숙이, 딸끔이 들."

그녀의 이야기를 써야하기 때문에 다시 펼쳐든 책에, 회사가 무서워 눈물 콧물 빼면서 훌쩍였을 어린 여공들의 눅눅한 이부자리가 툭 튀어나온다. 더 못 읽겠다. 이런 글, 이런 삶. 그런 시간이 너무 빼곡해서, 85호 크레인에 올라있는 그녀가 야속하기만 하다.

20년 전 최루탄보다 더 독하게 매운 자본주의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13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13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다.
ⓒ 유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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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가 파업을 했다. 사측은 바로 직장폐쇄를 했고. 언론은 시급히 자동차업계에 큰 일 닥쳤다는 기사를 타전했다. 자동차 산업이 휘청이고 경제가 희생되고. 이 나쁜 노동자들, 이기적인 집단. 며칠 소식이 전해지더니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그네들 연봉이 얼마라더라, 귀족들이 자기 밥그릇 싸움한다고 한국 경제를 통으로 들어먹는다는 조중동의 기사가 뒷받침됐다.

살인적인 야간노동으로 1년 6개월 사이에 5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현실. 자면서 일 좀 하자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요구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없었다. 부분 파업 2시간 만에 직장폐쇄를 해 버린 사측의 도발은 언급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을 고의로 들이 받은 용역 얘기도 빠져있었다.

그런데 파업 중인데도 그 회사 유성기업의 주가는 뛰었다. 부품을 독점한다는 회사 소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벌인 일이었다. 노동자들이 죽건 말건, 공권력이 들이 닥치건 말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볼모로 한 경제 발전이 필요한 나라에서 사람들은 더욱 잔인해져 가고 있었다. 임산부까지 연행한 경찰들의 야만보다 자본주의가 더 무서웠다. 20년 전의 최루탄보다 더 독하게 맵고 독하게 진저리 처졌다.

이런 세상이다. 이런 세상일 뿐인데, 포기하면 되는 걸. 남들 다 외면하고 사는 거, 모른 체 하면 그만이지. 그녀에게 가 닿지도 않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노동자들이 애써 쌓아올린 생존의 사다리는 늘 위태위태한데. 사다리조차 타고 오르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마다 해고 되고 해마다 살아나고 해마다 다시 죽어 가는데. 그녀는 왜 그녀 말마따나 인간의 꿈을 꾸고, 그 높은 곳을 올랐을까. 불편한 세상이다.

산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져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 그리고 또 그러한 인연을 이어 붙이고, 또 이어 붙이려고 자꾸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 기륭전자에서, GM대우에서, 대우조선, 그리고 한진중공업에서. 자꾸 어딘가로. 살기 위해 오르는 사람들 속에서, 살기 위해 올라 죽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사실, 스무 살 그때처럼 불타는 거리에 서 있는 듯하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내려올 수만 있다면

김주익이 목을 맨, 129일을 넘어 150일 향해 달려가는 6월 11일. 1987년 시민들, 노동자들. 그들 모두의 스무 살을 맞는 해.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그녀의 소금꽃나무를 찾아 간다고 한다. 철모르고 피어 무던히도 사람 속을 썩이던 그 꽃나무들. 사실은 사라질 운명 때문에 미안하고 미안해서 오래 쳐다보지도 못하고 사죄해야 했던 꽃들 마냥 황금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을 소금꽃나무를 향해.

"낙타가 죽으면 저도 살 수 없다는 걸, 욕심에 어두운 인간들은 종종 잊는다.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 출현하기 전부터 낙타는 살아 있었고, 낙타는 멸종하지 않았다. 숙명처럼 길을 걸을 뿐, 결코 쓰러지거나 지름길을 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스스로 목이 타 죽더라도 낙타의 등을 베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지 모른다. 사라지는 무수한 생명에 소스라치게 놀라, 깊은 잠을 청하지 못하는 연약한 심장을 지녔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다. 그녀의 소금꽃나무는 그래서 늘 슬프고 안쓰럽다.

"길은 걷는 만큼 줄어든다. 이 길도 언젠가는 끝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머잖아 우리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예전의 우리는 이미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의 압승이라는 게 맹목적인 추종의 결과라는 것도 알게 됐고, 월드컵 경기장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고, 50만 원의 보상금을 받고 그 터전에서 쫓겨났던 철거민들의 눈물 위에 지어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축구공을 농락하는 선수들의 현란한 발재간보다는, 다섯 살부터 하루 300원의 임금을 받고 공을 만들다가, 강한 본드의 영향으로 일곱 살에 두 눈을 실명한 소녀 소니아의 노동에 우리는 주목하게 될 것이다."

김진숙에게 가는 희망버스 웹자보 캡쳐화면
 김진숙에게 가는 희망버스 웹자보 캡쳐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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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조수원 열사를 추모하는 문화제에서 그녀가 읽었던 글. 그녀가 이까지 빠지는 듯한 몸살에 시달리며 '난 언제까지 이런 추모사를 쓰며 살아야 하나' 한탄했던 그런 글들 속에서 희망은 삐죽이 솟아 올라 있었다.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희망의 가치를 모른다. 좌절해 보지 않은 사람은 다시 서는 일의 거룩함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우리가 타는 희망버스는 사실 희망버스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그녀의 절망과 한진 중공업, 유성, 쌍용, 재능교육, 쓰리엠, 콜트콜텍, 국민체육진흥공단, 발레오공조코리아, 한일 파카유압, 포레시아… 그리고 해마다 곳곳에서 해고되는 무수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절망에 공감하는 버스일 것이다.

절망의 시대, 희망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 떠나는 버스일 것이다. 다시 서는 일의 거룩함을 확인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탈 수 있다면 어쩌면 진짜 희망버스가 될 지도 모르는.

나는 20년 전의 박창수를 향해, 낙타의 등을 베지 않고 그저 조용히 사라져도 괜찮다고 알려준 그녀를 향해… 걸어간다. 그녀가 기필코 승리해, 85호 크레인에서 환하게 웃으며 내려올 수만 있다면, 철모르는 소금꽃나무들 모두 아름답다, 아름답다 말해줄 수 있겠다.

문정현 신부부터 배우 김여진까지... 희망버스 탄다
현재, 다양한 분들이 함께 희망의 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과 평화바람 분들이 군산과 전주 지역 분들을 모아 '희망의 버스'를 만들어 주시기로 했습니다. 평화바람에서는 12일 오전 아침 밥, 200인분을 마련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기륭전자, 동희오토, GM대우, 홍대청소용역노동자, 쌍용차 정리해고자, 재능교육비정규직 등 힘들게 투쟁하는 자리에 늘 함께 해온 '갈비연대' 분들이 11일 저녁 뒷풀이 음식을 내주시기로 했습니다. 전남 순천에서 하이스코비정규직 투쟁에 함께 했던 박정훈 님과 또 그렇게 전국 어디를 비롯하고 비정규투쟁 노동자들과 함께 해온 들풀한의원 원장님 등이 '희망의 버스-순천'을 출발시키겠다고 합니다.

김여진님과 함께 하는 '날라리 외부세력' 분들과, 쌍용차 정리해고자들과 함께 해주시는 레몬트리 공작단 분들도 함께 하시겠답니다. 연대 문화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용산에서 '끝나지 않는 미술전'을 열어주었던 파견미술가 모임 분들과 '촛불방송국'을 운영해 주었던 미디어 활동가들, 그리고 얼마전 인권영화제 개막작 '종로의 기적'을 올렸던 <연분홍 치마> 분들과 김미례 감독님도 오시겠답니다. 판화가 이윤엽 님의 판화공방과, 만화가 이동수님의 캐리커쳐, 노순택님 등 사진가 분들 오셔서 다양한 문화 참여공간을 열어주시겠다고 합니다.

지구행동네트워크 분들과 여성노동자글쓰기 모임 회원분들 함께 하고, 두 차례에 걸쳐 김진숙과 한진투쟁을 지지하는 신문광고 내주었던 하종강, 박준성 선생 등이 희망의 버스 승차를 권유하고 계십니다. 김세균 선생께서 부산, 경남, 울산 지역 교수님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노나메기 재단(준), 진보의 합창,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등 다양한 분들이 희망의 버스에 함께 하십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를 위해 지금도 앞장서 싸우는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발레오공조코리아, 재능교육비정규직 등 노동자 분들이 함께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분들의 참여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 버스는 다만 고공농성 150일째인 김진숙씨와 한진중공업 해고자들만을 위한 버스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버스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를 촉진하기 위한 간절한 염원의 버스입니다. 모든 정리해고자들과 비정규직들의 절망을 딛고 우리 사회가 조금은 안전하고, 평등하고, 평화로웠으면 하는 희망을 담는 버스입니다. 무엇보다 즐겁고 유쾌한 버스입니다.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연대의 문화를, 그 기쁨과 환희를 나누는 버스입니다. 이 사회는 늘 우리에게 낙담과 무거움을 강요하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더 밝을 것입니다.

부디, 내가 아니라도 하지 마시고, 누구라도 먼저 희망의 버스를 제안해 주십시오. 6월 11일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이들이 저 외로운 시대의 망루 밑으로 함께 달려오는 기쁜 꿈을 꿔보면 좋겠습니다.

* 각 지역에서 희망의 버스를 만들어주시고, 대략의 참석 인원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참여게시판 : 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
* 서울 참가자들께서는 6월 8일까지는 꼭 참석 의사를 사전에 말씀해주십시오. 버스 대절, 식사, 숙소 마련 등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 꼭 함께 가시고 싶은데 참가비 마련이 어려우신 분들은 그냥 오셔도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박진 기자는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김진숙, #희망버스, #한진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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