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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휴대폰·MP3·냉장고·세탁기·에어컨…. 생활에 편리함을 더해주는 전자·IT제품이 주변에 넘쳐나고 있다. 날마다 첨단으로 포장된 이들 제품은 새로 등장하는 제품에 도태돼 버려진다. 전자쓰레기(e-waste)라는 신종 쓰레기는 이렇게 탄생한다. 이렇게 버려진 전자쓰레기는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될까. 전자쓰레기 수입대국인 중국의 실상을 두 편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 지금도 구이위의 일부 호수와 하천은 물고기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오염된 구이위의 자연환경이 재생하려면 50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모종혁

7월 21일 밤 8시 30분. 중국 광둥성 선전시 일부 지역에서 검은 비가 내렸다. 1시간여 동안 선전 시가지에 내린 검은 비는 밤늦은 퇴근길을 서두르던 시민들을 그대로 적셨다. 갑자기 내린 비를 맞은 일부 시민들은 경악했다. 빗방울이 검은데다 이상한 냄새가 났던 것.

선전 토박이인 천시(28·여)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산구에서 차를 몰고 가는데 돌연 빗방울이 흩날렸다. 빗물은 투명하지 않고 너무나 뚜렷한 검은 색이었다. 좀 이상하다 싶어 차를 멈추고 내려 빗물을 살펴보니 약하지만 뚜렷한 화학 냄새가 났다."

그보다 며칠 앞서 광둥성의 수도인 광저우시 외곽에서도 검은 비가 내렸다. <징바오>는 한 환경보호국 관리를 인터뷰해 "선전시 외곽에 있는 공장들이 불법적으로 폐기물을 태운 뒤 이를 대기 중에 방출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추측된다"고 보도했다.

선전은 홍콩과 맞닿은 도시다. 이런 지리적 이점으로 1980년 선전은 4개의 경제특구 중 하나로 지정됐다. 원주민이 불과 3만여 명에 불과했던 선전은 오늘날 인구 1000만 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20여 년 동안 연평균 28%의 경제성장을 지속하며 상하이와 더불어 중국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로 발전했다.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2.4%를 차지하는 초고속 성장의 선두주자 광둥성의 기세는 놀랍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홍콩 반환은 광둥성에 날개를 달았다. 1997년 이래 광둥성 경제는 매년 12% 이상 성장하며 2005년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쳤다. 올해는 대만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황화화 광둥성장은 "작년 광둥성 GDP 규모는 2조5900억 위안(한화 약 310조원)으로 세계 200개 국가·지역과 비교할 때 21위 수준"이라며 "2015년에는 한국의 경제규모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고도성장 달성한 광둥성의 어두운 그림자, 환경오염

▲ 2002년 국제NGO단체인 바젤 행동 네트워크(BAN)는 구이위의 실태를 처음 조사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선진국의 전자쓰레기 하치장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 바젤 행동 네트워크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은 중국 경제를 놀라운 속도로 발전시켰다.

작년 말 중국의 1인당 GDP는 2000달러 관문을 돌파했다. 1978년 100달러에 불과했으나 2003년 1000달러의 고지를 넘었다. 중국은 3년여 만에 2000달러를 돌파하면서 과거 고도 성장기에 일본이 6년, 독일이 9년 걸렸던 기록을 갈아치웠다.

경제성장은 수많은 부자들을 양산했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에 따른 피해자와 환경오염의 재앙을 낳았다.

이는 산터우시 구이위진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들여온 전자쓰레기를 분해 처리해 살아가는 구이위에선 주민들 사이의 빈부격차가 어느 곳보다 심하다.

지방정부에 꽌시가 있어 사업자금을 대출받은 극소수 사람들은 같은 동네 주민들이나 외지 출신 민공들을 고용해 떼돈을 벌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광저우·선전 일대의 고급 별장이나 아파트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이위 주민들은 높아진 경쟁 속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오늘도 전자쓰레기를 분해하며 살고 있다.

내륙지역에서 온 민공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가족이나 친척이 동원돼 운영되는 구이위 토박이 주민들의 가내수공업과 달리 민공들은 중소공장에 고용되어 하루 30위안(약 3600원) 안팎의 저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이들은 날마다 대형 트럭에 수없이 실려 오는 전자쓰레기를 맨손으로 내려놓는다.

민공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전자쓰레기를 분해하는 작업환경에 내팽겨져 있다. 이들은 컴퓨터·모니터·휴대폰·복사기·TV·냉장고·에어컨 등을 장갑만 낀 채 하나하나씩 뜯어낸다. 폐기된 제품 안에 있는 각종 부품과 금·은·구리·크롬·아연·니켈 등 고가의 금속을 추출해내야 하기 때문.

5월 9일 <중국청년보>는 구이위 현지르포를 통해 "노동자들은 컴퓨터 본체에서 쓸 만한 부품과 금속을 빼내기 위해 심한 악취가 나는 메인보드를 가열해 납을 제거해 나갔다"면서 "환기장치라곤 오직 선풍기 몇 대만 있는 실내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유독가스를 맡아가며 일한다"고 보도했다.

▲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작업을 벌이는 구이위의 전자쓰레기 분해처리공장 여성 노동자. 수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중금속 오염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 그린피스 홍콩지부
호흡기 질환과 피부병에 백혈병·암까지... 늘어만 가는 산재

날마다 독성이 강한 연기를 마시고 중금속을 만지는 구이위 주민들과 이주 노동자들은 수많은 질병에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작업 중 발생하는 각종 오염물질은 대기 중에서 맴돌면서 분해 작업과 무관한 주민들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

2005년 9월 산터우대학 의학부 의료진과 함께 현지조사를 한 그린피스 광저우지부 관계자는 "직접 작업에 참가하는 주민들과 상관없는 구이위 아이들 160여명이 심각한 납 중독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고 전했다.

구이위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던 황밍홍 홍콩 침례대학 교수는 "전자쓰레기를 분해하면서 타오르는 연기는 체내에 축적되어 뇌신경을 손상시키고 혈구를 파괴하여 암, 백혈병 등 중병을 유발한다"면서 "중금속 중독은 특히 어린이와 태아에게 더욱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

린뤄링(여) 산터우대학 부속병원 의사는 "구이위 화메이촌 한 마을에서만 백혈병을 앓는 4명의 어린이를 발견했다"며 "구이위 전체의 백혈병 환자 비율은 중국에서도 기록적인 수치"라고 말했다. 올해 초 화메이촌에 사는 천훙룽 역시 급성 백혈병을 앓다 다섯 살의 짧은 생을 끝마쳐야 했다.

▲ 2004년, 곳곳에 버려진 전자쓰레기와 노상 소각으로 인해 검게 썩은 구이위의 하천.
ⓒ 그린피스 광저우지부
오염물질에 병들어 가기는 구이위의 자연과 산천도 마찬가지다. 2004년까지 노상에서 그대로 불법 소각된 전자쓰레기에서 발생한 유독가스와 오염물질은 구이위 전역으로 퍼져나가 대기와 하천을 오염시켰다.

구이위에서 만난 왕웨이(34)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검게 변한 하천에서는 빨래를 하기도 힘들다"면서 "지하수까지 오염되어 수십㎞ 떨어진 산터우 시내에서 마실 물을 사온다"고 말했다.

잇따른 주민피해와 환경오염에 대해 천후이통 구이위진 부진장은 "공식 통계상 구이위에서 암을 비롯한 심한 질병에 걸려 사망한 환자는 극소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피부질환과 중금속 중독 외에는 중병에 걸린 환자가 다른 지역과 비슷한 수치라는 것.

이에 린뤄링은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민공들인데 질병에 걸린 경우 작업장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려보내진다"고 반박했다. 그는 "암, 백혈병 등과 같은 중병은 오랜 시간 동안 검진하고 연구해야 한다"면서 "병에 걸린 원주민도 선전이나 광저우로 가서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아 통계수치상 낮아 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그린피스 광저우지부가 산터우대학 의학부와 함께 벌인 현지조사에서 대부분의 구이위 주민들은 각종 호흡기 질환과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린피스 광저우지부
▲ 과거 구이위에서 바로 불태워지던 전자쓰레기는 지방정부의 집중적인 단속으로 소각장소를 광둥성 북부 산간지역으로 옮겼다. 24시간 동안 운행되는 불법 소각로는 각지에서 들어오는 전자쓰레기를 태워 대기오염을 유발하고 있다.
ⓒ <남방도시보>
재가공해 새 제품으로 판매하고 선진국으로 수출까지

전자쓰레기로 인해 중국의 산하와 노동자들은 골병을 앓고 있지만 부를 쫓는 자본의 논리는 암울한 현실에 눈감고 있다. 전자쓰레기 가운데 외형이 쓸 만한 제품을 재가공해 새 것처럼 판매하고 웬만한 부품은 그대로 재활용한다. 추출한 금속은 저가 상품의 원료로 이용되어 해외 수출까지 이뤄지고 있다.

6월 12일 중국 국영 CCTV는 "외국에서 수입된 전자쓰레기가 몸을 치장한 뒤 전국 각지로 되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CCTV는 "미국·일본 등에서 수입돼 이젠 쓸모없어진 복사기가 약간의 가공과 수리를 거쳐 신제품으로 둔갑하여 멀리 신장 위구르자치구와 헤이룽장성까지 팔려나간다"면서 "일부 제품은 중고품이 아닌 신제품으로 둔갑하여 판매되기도 한다"고 고발했다.

7월 24일 선전시 화창베이루 전자상가단지를 찾은 기자도 같은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중고품을 파는 상점에는 일본어로만 메뉴표시가 붙어있는 제품이 적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가게 주인은 "일본에서 직접 들여온 중고품"이라며 "전압도 110V에 설명서도 일본어로만 되어 있는 단점이 있지만 가격은 새 제품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고 추천했다.

전자부품을 전문으로 파는 상가에도 중고 부품만 모아놓고 파는 상점이 많다. 지난 3일 <남방도시보>는 "일부 전자쓰레기는 'Made in USA' 'Made in Japan'이라는 원산지 표시가 붙어있다는 이유 하나로 외국산 신제품으로 변신한다"면서 "추출된 부품들도 종류, 규격 등에 따라 분류되어 수요처를 찾아 팔려나간다"고 보도했다.

7월 12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제프리 웨이던하머 애시랜드대학 교수의 연구를 인용, "미국 할인판매점에서 수거한 싸구려 아동용 장신구와 열쇠고리 등에서 나온 구리와 주석은 미국에서 폐기된 전자제품에서 쓰였던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에서 수입된 전자쓰레기는 중국 내에서 다양한 금속이 추출되며 이는 이를 싸구려 액세서리나 상품 원료로 쓰인다"면서 "미국 환경청은 전자쓰레기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알고도 방치하다가 올 1월에야 뒤늦게 TV, 컴퓨터용 CRT(음극선관) 등의 수출을 규제했다"고 비판했다.

한국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린피스 광저우지부는 "바젤협약에 따라 전자쓰레기 무역은 불법이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 파악이 힘들다"면서도 "광둥성 항만에서 파악된, 한국에서 오는 전자쓰레기 화물량은 미국·일본에 이어 3번째"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이 전자쓰레기를 수출해 중국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환경오염을 불러오면서 추출물로 가공된 상품을 다시 사들이는 웃지 못할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 선전 화창베이루의 한 전자상가. 구이위를 비롯하여 여러 전자쓰레기 분해단지에서 나온 전자·IT제품의 부품은 이곳에서 중고품으로 팔려나간다. 일부는 새 상품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 모종혁
▲ 중고 부품만 판매하는 한 매장. 여러 선진국에서 들어온 전자쓰레기 덕분에 중국에서는 원하는 각종 부품을 다 구할 수 있다.
ⓒ 모종혁

태그:#전자쓰레기, #구이위, #환경오염, #직업병, #바젤행동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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