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 5일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7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고, 그 뒤 6개월 동안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만들어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고영직 기자는 문학평론가다. <편집자주>
▲ '삼성기사 삭제 파문' 이후 회사측 주도로 만들어진 <시사저널> 899호(2007.1.16일자)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충정로 시사저널 편집국에 놓여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른바 '짝퉁 시사저널'이라는 이름의 유령 매체가 출현했다. 이 유령 잡지는 23명의 <시사저널> 기자 이름이 쏙 빠진 채 전국의 가판대에서 마치 진품처럼 유통되고 있다.

나 또한 '설마' 하는 마음에 지하철 가판대에서 3000원을 주고 이 유령 잡지를 샀는데, 책장을 넘기는 순간 '피식' 하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80쪽짜리 짝퉁 <시사저널>에 실린 기사를 보니, 이 잡지에 빠진 것은 기자 23명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언론의 자유만큼 언론의 책임을 생각한다"고 선언한 <시사저널> 고유의 창간정신 또한 흔적조차 없이 종적이 묘연해졌다는 사실이다. 진짜 본전 생각이 났다.

기자이름 뿐 아니라 기자정신도 없는 지면

@BRI@나는 짝퉁 시사저널을 발행한 현 경영진의 결정은 독자에 대한 넌센스에 가까운 추문이라고 생각한다.

1989년 창간 이후 불편부당한 입장을 줄곧 견지한 주간지의 대명사 <시사저널>의 '명성'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매체의 선호도와 명성에 관한 최종심급의 위치에 있는 독자들의 자발적 선택과 판단을 빼놓고서는 <시사저널>의 명성과 명예를 논할 수 없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발행인 겸 편집인' 금창태 사장이 노조 측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몇달 전부터 '짝퉁 시사저널'의 발행을 위해 콘텐츠 제휴와 편집위원 위촉 등 파업에 대비해 인력을 충원한 점은 독자는 안중에도 없는 지극히 상식 밖의 행태였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말해 현 경영진은 <시사저널>의 수많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를 스스로 저버린 문화적 반달리즘(Vandalism, 문명파괴)의 행태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지난해 6월 19일 삼성 기사 삭제 사건으로 촉발된 <시사저널> 사태는 지금껏 어느 누구도 가지 않은 '복제언론'을 만들어내는 배짱 마케팅으로 현실화되었다.

한국 언론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념비적 짝퉁(!) 제899호 <시사저널>을 짯짯이 보면서 <시사저널> 특유의 격조있는 문장과 품위있는 편집을 전혀 맛볼 수 없었다.

그가 내뱉는 '정치적 정자'가 나는 불쾌하다

▲ 서울 중구 충정로 시사저널 편집국.
ⓒ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훈 편집국장 시절의 저 깐깐한 기사 문장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다. 제899호 '짝퉁 시사저널'의 지면에는 '증오 바이스러스'를 확산하려는 위험한 정치공학적 도상 실험과 함께 말의 타락 현상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을 따름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사 문장을 보라. "자신의 정치적 정자(精子), 즉 노무현 세력과 철학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12쪽)"

김행 편집위원이 쓴 커버스토리 '노무현, '2012년 혁명'을 꿈꾼다' 제하의 기사에서 '정치적 정자'와 같이 질낮은 표현을 보면서 한 사람의 독자로서 씻을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식의 문구는 이 기자의 상식을 의심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응당 기자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인 비판의 도덕이 아니라 오로지 특정 세력을 향한 증오와 적대감 외에는 여타의 이성적 자각 능력을 느낄 수 없었다.

이 유령 잡지를 발행한 뒤 발행인 겸 편집인이라는 분이 자못 만족감을 표시했다는 어느 누리꾼의 말이 정녕 사실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랄 따름이다.

문제는 문장의 격조만이 아니라, 취재의 깊이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인 류근일 씨를 다룬 '스페셜 인터뷰'에서 <시사저널> 특유의 비판적 안목과 인터뷰어로서의 문제의식을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홍선희 편집위원의 질문은 좌·우의 시각을 아우르면서 우리 사회의 상식의 회복과 강화를 위해 헌신했던 <시사저널> 편집국의 균형감각을 기대한 독자로서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나를 비롯해 <시사저널>을 보는 독자들은 "이제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외롭지 않다(32쪽)"는 식의 류근일 씨의 회고 타령이나 '뉴라이트 특강'을 듣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이 잡지를 사보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시사저널>의 명예를 죽이지 말라

쌓는 것은 힘들어도 한순간에 까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명예'이다.

제899호 '짝퉁 시사저널'은 지난 십수년 동안 온갖 상처와 모욕을 견디며 자립경영과 편집권 보장을 위한 전통을 스스로 쌓아온 <시사저널>만의 명예를 암장(暗葬)한 일종의 '명예살인'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시사저널>이 쌓아온 명예는 권력·금력·종교 등 그 어떤 성역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불굴의 탐사보도 정신을 스스로 목숨처럼 사수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지난해 추석 특집으로 책 전체를 '삼성 대해부' 기사로 파격적으로 편집한 <시사저널>을 잊지 못한다. 무엇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JMS교 등 이른바 성역없는 종교 문제를 과감히 추적 보도한 사례 또한 잊을 수 없다.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으려는 기자정신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9일 오전 서울 중구 충정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노조 집행부가 회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현 경영진은 오기와 배짱으로 제2, 제3의 '짝퉁 시사저널'을 만들어 <시사저널>의 아름다운 명예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 그런 무개념·무원칙·반(反)독자 지향의 해적판 잡지 따위가 시장에 유통되는 것은 무엇보다 참 언론을 바라는 뭇 독자들의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헤치는 도발 행위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맹목적인 '증오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논조와 편집 그리고 빈약한 취재의 철학으로는 이 경영진이 기대하는 경제적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적어도 <시사저널>이라는 제호를 달고서는, 이 경영진이 어떠한 형태의 판갈이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이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는 점을 왜 자각하지 못하는가.

현 경영진은 문화적 반달리즘 행태를 그만두고, 노조 측의 주장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 파국을 향한 '삽질'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 경영진이 자신의 강한 힘이 아니라 신뢰의 강한 힘을 믿는 인식의 전환이 있기를 바란다.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는 <시사저널> 노조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오기를 단 한 사람의 독자로서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그날이 우리 사회의 상식의 회복에 기여하는 날이 될 터이다.

태그:#시사저널, #짝퉁 시사저널, #복제저널, #반달리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