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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 진영의 독립적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가 지난 3월 공식 출범하며 주최한 국제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싱크탱크의 역할과 과제에 대한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삼성으로부터 7억원의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희망제작소(상임이사 박원순)가 최근 진보적 지식인들의 잇따른 비판에 직면해 이 금액의 전액 반납을 포함해, 향후 처리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희망제작소 측은 "삼성이 갖고있는 재벌의 상징성과 박원순 변호사가 갖고있는 시민운동의 상징성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며 "당초 예정된 '우리시대 희망 찾기' 연구사업은 이 지원금과 관계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순 변호사도 "삼성이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원하고 싶다고 해서 이번 지원을 받게 됐다"며 "학자들이 '재벌인 삼성의 7억원 지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고 틀린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같은 문제제기에 긴장을 가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고 공감한다"며 "진보적 연구소가 소액 기부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업의 공익 기부는 필요하다"며 "기업의 좋은 기부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기원 "삼성 재정에 기대는 연구소가 얼마나 진보적일지"

김기원 방송대 교수와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지난 3일과 10일 각각 <한겨레>와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희망제작소가 삼성 돈 7억원을 지원받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3일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박 변호사는 재벌과의 생산적 긴장관계를 주장하지만 근년간의 그의 활동에서 그런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비판했고, 강준만 전북대 교수도 10일 "재벌의 지원을 받는 모델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못 박았다.

김기원 교수는 "오랫동안 시민운동에 몸바쳐온 박 변호사의 공적은 아무리 존중해도 지나치지 않고 희망제작소를 설립한 취지나 운영상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도 아니"나, "재정을 주로 삼성에 기대는 연구소가 얼마나 독립적이고 진보적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삼성을 걸리버에 비유하면서 써내려간 이 글에서 김 교수는 "소인국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나쁜 마음을 먹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져 결국 추방당한 걸리버와 삼성은 비슷하다"며 "반도체를 중심으로 국제경제전쟁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삼성이 작년 불법도청 사건에서 보듯 정계·관계·법조계·언론계·학계를 좌지우지 하는" 이중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삼성의 덫'에 노동계와 시민운동계도 부분적으로 걸려들었다면 지나친 것이냐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김 교수는 "진보세력이 삼성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했다. 최근의 화두인 '진보의 위기'는 도덕적 우위가 흔들린 데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는 진단도 내렸다.

강준만 "박원순 이름이 재벌 돈 받는 데 쓰여서야"

▲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자료사진).
ⓒ 이종호
강준만 교수는 김기원 교수와는 다른 색깔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진보적 연구소의 독립성이나 진보성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박원순 모델'의 희소성과 중요성에 방점을 찍었다.

강 교수는 "지금과 같은 '박원순 모델'은 박원순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면 지속될 수 없는 모델"이라며 "박원순이라는 이름에 기대를 건다는 건 그가 전국적 여론을 조성하고 지방의 시민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는 것에 기대를 건다는 뜻이지, 그의 이름으로 돈을 끌어오는 것에 기대한다는 게 아니다"고 해석했다.

이어 "돈없이 시민단체나 진보적 연구소를 할 수 없는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지만, "시민들의 소액 기부금을 광범위하게 얻어내는 방법을 통한 지속가능성과 전국적인 확산이 가능한 일반 모델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 교수는 "서민의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한 장씩 내놓게 하는 게 진짜 참여이자 개혁"이라며 "그 돈을 내놓게 하기까지 쏟아야 할 피와 땀은 엄청나겠지만, 그게 이루어지면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특히 강 교수는 "시민단체나 진보적 연구소가 재벌 돈을 받는 것엔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지만, 박원순이라는 귀한 이름이 그런 일에 쓰이는 건 우리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기업 돈, 독이냐 약이냐

이같은 논란이 확산되자,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운동 관계자는 "과거 기업들이 걸핏하면 내던 정치자금과 달리 기업의 사회공헌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다수의 소액 기부가 시민단체나 진보적 연구소의 근간이어야겠지만 기업의 사회적 기부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은 원론적 차원의 주장일 뿐"이라며 "현실적으로 소액 기부자들의 힘만으로 시민단체나 진보적 연구소를 운영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고백했다.

이 관계자는 "학자들은 월급 받으면서 비판만 하면 되니까 별 문제 될 게 없지만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감내해야 할 어려움은 상상하기 힘든 생활적 고통이 따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어 그는 "시민단체가 기업 돈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에서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돼왔던 게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진보적 연구소의 경우에도 이 논란의 한 가운데에 포함돼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진보적 담론을 생산해내는 연구소의 운영은 별개로 취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진단인 것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희망제작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실린 창립선언문.
ⓒ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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