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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조루
ⓒ 최성민
거대한 산 지리산은 사방으로 열릴 만한 곳 어디에나 우람한 골을 열고 있다. 남쪽으로 난 골 가운데 서쪽에서부터 문수골, 피아골, 화개골, 악양골 등은 너른 벌과 우렁찬 계곡 등으로 인하여 활력과 넉넉함이 철철 넘쳐흐르는 지리산의 대표적인 큰 골짜기들이다.

이 골짜기들엔 대부분 하나의 면 단위 이상 마을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길이나 집들의 형색을 보면 윤기가 좔좔 흐르는데, 이는 지리산이 큰 골짜기를 통해 내려주는 풍물이 풍성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 최성민
문수골은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서 시작된다. 문수골엔 여행객들을 위한 두 개의 명물이 있다. 하나는 운조루라는 옛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문수사라는 작은 절이다. 문수골은 운조루에서 시작되어 문수사에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포장도로가 시작되는 들머리에 운조루가 들어서 있고 그 길 끝머리에 문수사가 막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조루가 있는 오미리는 지리산의 용맥이 노고단으로 솟구쳤다가 화엄사 쪽으로 급히 떨어져 멈춘 곳이다. 예로부터 풍수지리설이나 비기(秘記)에 오미리는 '남한 최고의 명당' 또는 '노령·소백 최고의 명혈'이라는 등의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또 어떤 책에는 이곳에 3대 진혈(眞穴)인 금구몰니(金龜沒泥), 금환락지(金環落地), 오보교취(五寶交聚)가 다 있다고 적혀 있다. 각각 상대(上台)·중대(中台)·하대(下台)라고도 하는데 이중에 하대를 최고의 길지(吉地)로 친단다. 그리고 이 혈을 잡아 집을 짓고 살면 그 터의 발복으로 천운의 도움을 받아 부귀 영달한다는 말을 듣고 예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 최성민
명당마을이라는 오미리에서도 핵심 명당자리에 운조루(雲鳥樓)라는 집이 있다. 이 집은 문화 유(柳)씨 종가댁이다. 어떤 책(<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는 이 집터가 금환락지라 하였고, 어떤 책(육관 도사의 풍수·명당 이야기 <터>, 도서출판 답게)에서는 금구몰니의 혈이라고 하였다.

또 어떤 책에서는 집 지은 이가 1776년(영조 52년)에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冑)라 하고, 어떤 책에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유부천(柳富川)이라는 사람이 지었다고 한다. 어떤 책에서는 유부천이 집을 지으려고 땅을 파자 뜻밖에 돌거북이 나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터가 금구몰니의 혈이라고 한다.

그 뒤로 유씨 가문은 계속 번영해 이 지방 제일의 부귀를 누리게 되었으며, 어린 아이 머리 크기만 한 돌거북은 유씨 댁의 가보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책에서는, 낙안군수를 하고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펴던 유이주가 금주령 위반으로 유배를 당하자 토지면으로 스며들어 운조루를 지었다고 했다. 운조루 상량을 올리면서 유배가 해제되자 유이주는 무릎을 탁 치면서 "과연 이 자리가 명당이다"라고 탄복했다고 한다.

ⓒ 최성민
운조루의 규모와 구조는 지금까지 내가 본 어느 전통 한옥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것이었다. 사랑채는 4칸의 몸채에 뒤쪽으로 꺾여 이어진 2칸의 날개가 달려 있다. 몸채 왼쪽 끝의 1칸은 내루형(內樓形)으로 기둥 밖으로 난간이 둘러져 있다. 이 사랑채의 구성은 궁전 침전이 그렇듯 완전한 누마루 형식을 취하였고 여기에 일반 대칭이 연립하여 있다.

또 사랑채에는 보통 큰 부엌이 없는 법인데,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는 걸로 보아 사람이 많았던 집임을 말해 준다. 더구나 본 사랑채와 직교한 누마루에서 전체 살림을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 있어 특이하다. 특이한 것은 행랑 체에 있는 '가빈터'라는 실(室)인데, 가족 가운데 어른이 운명하면, 3일 후에 입관을 하여 입관 후 3개월 동안 이곳에 안치했다가 출상을 하였다고 한다.

ⓒ 최성민
운조루는 거대하면서도 미세한 목공예품 같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탓에 지금은 이 거대한 옛집을 관리하기조차 힘들어 행색이 초라해지고 있다. 문짝 떨어져 나간 사랑채 골방엔 버려진 토종 꿀통이 나뒹굴고 있다.

사랑채 부엌에는 둘레 2m, 높이 1.5m짜리 대형 나무 절구통이 하나 있다. 제법 골동품다운 골동품 같은데, 너무 큰 탓인지 아직 사람의 손을 안 타고 내버려져 있다. 사랑채 마루 밑에도 크나큰 나무 수레가 우람한 두 바퀴에 잔해를 기대고 드러누워 있다.

▲ '가빈터'(문이 열린 곳)가 있는 운조루 행랑. 망자의 유해를 입관해 3개월 동안 이 가빈터에 안치했다가 출상했다고 한다.
ⓒ 최성민
▲ 운조루 앞 벌판.
ⓒ 최성민
운조루를 지나 천천히 걷거나 차로 오르면 30분~1시간 여 만에 문수사에 닿는다. 그 동안에 지리산의 영봉들과 쪽빛 하늘, 그리고 저 아래쪽 누런 벌이 그려내는 신선하고 풍성한 가을 색깔을 만끽할 수 있다.

가는 길 곳곳에 문수사를 알리는 간판이 서 있는데 '지리산 반달곰이 있는 곳'이라는 설명이 빠짐없이 적혀있어 호기심을 자극하며 사람을 유인한다. 나는 번식용으로 방사한 그 '지리산 반달곰'을 말하는지 알았다. 문수가에 도착하니 들머리에 '반달곰 먹이 팝니다'라는 안내문이 있고, 절 안에 들어가니 우리에 갇힌 반달곰 3마리가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 문수사.
ⓒ 최성민
▲ 문수골을 내려오면서 본 문수저수지와 너른 벌.
ⓒ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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