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 산문 : 놀림받지 말라 국민들이여!

온삶을 교육자로 살던 이오덕 선생님은 지난 2003년 8월 25일 돌아가셨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참 많은 일을 하고 참 많은 글을 쓴 선생님은 책도 참 많이 냈지만, 책으로 내지 못한 글, 세상에 내놓지 못한 글도 참 많습니다.

그 가운데 선거를 앞두고 쓰신 글 셋이 오랫동안 묻혀 있었습니다. 모두 1991~1992년 사이에 쓰신 글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때나 이때나 세상사람들에게는 읽히지 못하고 고이고이 간직하고만 계셨습니다. 어둡던 때, 정부에서는 당신 책을 '불온도서'라고 해서 모두 금서로 묶어두었고, 안기부에서 조사도 나왔고, 또 고문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터라 쉽게 세상에 내놓을 수 없던 글이겠지요. 이오덕 선생님 아드님(이정우 님)께서 이제는 세상에 내놓아 읽혀야 하지 않겠느냐고, 요즘처럼 국회의원들이 볼꼴사납게 구는 때에 세상사람들에게 이런 글을 읽히면 좋지 않겠느냐고 글 세 꼭지를 보내오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글 - 놀림받지 말라 국민들이여!]

▲ 이오덕 선생님 산문
ⓒ 이정우
며칠 전 내 방에 날아 들어온 어느 국회의원 나선 사람의 인사장을 보았더니, 유식한 말을 쓴다고 틀려 버린 곳이 몇 군데나 있었다. 이런 인사장을 부끄럼도 없이 돌리다니, 유권자들을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로 깔보는가 싶었다.

후보자들이 덮어놓고 자기를 지지해 달라고 온갖 방법으로 세력을 과시해 보이는 것도 국민을 우매한 무리로 보기 때문이다.

온갖 선물과 돈, 음식물, 관광버스-이런 것들을 제공해서 표를 사려는 것도 얼마나 국민들을 형편없는 동물로 우롱하는 짓이냐?

저질의 인신공격, 터무니없는 모략 중상도 백성들을 미혹하는 범죄행위다.

선거를 거듭하면 할수록 점점 더 타락이 되어가는 이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은 정부(노태우 정권)와 여당(민자당)이 져야 한다.

1.돈으로 당선되겠다는 사람 절대로 찍지 말자.
2.행정이 비호하는 사람 찍어 주지 말자.
3.사실 아닌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을 뽑지 말자.
4.과거에 잘 먹고 잘 산 사람 뽑지 말자.
5.지역에서 무슨 사업 해준다는 사람 찍지 말자.

국민들이여, 놀림받지 말라! 속히지 말라! 당하지 말라!


원고지 석 장을 살짝 넘는 글입니다. 노태우 정권과 민자당이 우리를 얼마나 바보로 여기는가를 비판하신 글입니다. 그러면서 다섯 가지 국회의원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4번, "과거에 잘 먹고 잘 산 사람 뽑지 말자"는 말엔 물음표를 던지실 분이 계시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참 맞습니다. 지난 날 잘 먹고 잘 산 사람들은 어려움을 모릅니다. 어렵게 사는 서민을 모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옥탑방이 무엇인지 모른다"면서 "서민의 아픔을 안다"고 말하던 후보가 생각나는가요? 지금 국회의원 가운데에도 옥탑방이나 반지하, 지하방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 하루는커녕 반나절도 있어 보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가용만 타고 다녔을 잘 사는 사람들은 휠체어로 평생을 다녀야 하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길을 다니며 부딪히는)을 조금도 알 수 없어요. 장애인들에게 주는 보조금이 너무 적어 부업이라도 할라치면 '직업이 있으면 정부보조금을 줄 수 없다'는 조항 때문에 몇 푼 안 되는 돈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을 겪어 보지 못하고, 이웃에서도 그런 이를 보지 못하니 국회의원들이 그런 나쁜 조항을 뜯어고칠 리도 없습니다.

5번, "지역에서 무슨 사업 해준다는 사람 찍지 말자"는 말에도 고개를 갸웃하실 분이 계시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 말도 참 맞아요. 지역 사업이란 "지역이 잘 되라고 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지역 사업을 빌미로 뒷돈을 챙기는 일입니다.

더불어 지역을 개발하는 허울좋은 이름 아래 지역 환경을 파헤치고 무너뜨리면서 끝내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건물과 시설을 들여놓고, 이런 건물과 시설은 또 '있는 이'만 쓸 수 있는 건물과 시설이 되기 일쑤예요.

골프장이 지역에 들어온다고 지역 사람들이 골프를 즐길 수 있나요? 골프장에서 잡풀 뽑고 농약 뿌리는 일자리나 겨우 얻을 뿐입니다. 그 대신 골프장에서 엄청나게 뿌려대는 농약 때문에 그곳 지하수는 마실 수 없는 물이 되고, 그 마을은 빠르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은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은 그야말로 어려움을 알아야 하고, 국회의원으로 뽑혀도 가난하게 살아야 하며, 국회의원은 권력이나 힘을 부리는 이가 아니라 국민들 바람과 삶을 함께 끌어올리며 언제나 국민들 눈높이로 살아야 하는 사람만 뽑혀야 한다고 외치셨습니다.


<2> 시 하나 : 국회의원 현수막

[이오덕 선생님 시 - 국회의원 현수막]

▲ 수첩에 적은 이오덕 선생님 시
ⓒ 이정우
과천 전신전화국 앞에
먹자빌딩이 있다.
그 먹자빌딩 옆에는
서울에서 안양으로
안양에서 서울로 다니는
큰길이 있어
거기
국회의원 후보자들 현수막이
길을 가로질러 하늘에 춤춘다.
길 양쪽 가로수는 현수막을 붙들고 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흔들려 몸살을 한다.
플라타너스 작은 나무일수록 현수막 붙들기 힘겨워 마구 밑둥치부터 흔들거리면
그 현수막은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흔들거리며 사람들 눈을 끈다.
저 현수막 주인은 저렇게 춤추는 제 이름을 쳐다보고
저도 같이 우쭐거리며 좋아할까.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저 이름을 부러워할까, 미워할까.
그러나 아무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어른들은 모를 것이다.
저 현수막을 붙들고 밤낮 흔들거리면서 울고 있는 나무들을.
앞으로 스무 날을 밤낮으로 흔들거리다가 뿌리조차 뽑혀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밖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91.3)


이오덕 선생님은 시를 무척 좋아하십니다. 세상에 내놓지 않고 공책에 가지런히 적어 놓은 당신 시만 해도 공책으로 쉰 권 가까이 됩니다. 수첩에도 틈틈이 시를 적어 놓으셨고요. 살아 계실 때 왜 시를 세상에 내놓지 않았나 궁금하면서 아쉽습니다. 이렇게 우리들 모자라는 눈을 바로잡고 일깨우는 시를 왜 진작 내놓지 않으셨는지 안타깝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내거는 걸개글 때문에 몸살을 앓는 거리나무들. 그 나무들 걱정을 하는 사람은 어린이밖에 없다는 외침. 참으로 옳은 말씀이고 맞는 말씀입니다.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 때문에 줄기가 온통 시커멓게 되어 버린 거리나무들. 그 나무는 선거철이 되면 국회의원 걸개글을 몸에 둘둘 말아야 합니다. 때 되면 관청에서 내거는 걸개글로 몸살을 앓습니다. 그런 나무는 그런 온갖 짓거리를 견뎌내야지, 그러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으면 '보기 나쁘다'는 관청 사람들 말에 따라서 뿌리가 뽑혀서 쓰레기통으로 보내집니다.

가만가만 헤아려 봅니다. 정작 쓰레기통으로 가야 하는 건 따로 있지 않느냐고요.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것들이 외려 다른 이들을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있지 않느냐고요.


<3> 시 둘 : 우는 소리, 고함 소리

[이오덕 선생님 시 - 우는 소리, 고함 소리]

▲ 수첩에 적은 이오덕 선생님 시
ⓒ 이정우
오늘도 오후의 햇빛이
내 책상을 환히 비쳐주고 있는데,
어디서 골을 울리는 확성기 소리.
눈으로 보는 글자를 확성기 소리는
마구 휘젓고 뭉개어 버린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마디도 알 수 없지만
다만 그 소리는 내 귀와 머리를 울릴 뿐이고,
그저 징징 짜고 울고 하는 소리다.
그러더니 한참 뒤에는 목소리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아주 성난 목소리다.
온통 있는 힘을 다해 성난 고함 소리 지르고 또 지르고.
그러나 그 말도 한 마디 못 알아듣겠다.
다시 또 다른 사람의 노래부르듯하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아, 국회의원 합동연설회는
이렇게 울고 짜고 고함치고 협박하고
노래부르고, 제멋대로다.
저래서 당선이 되어 의사당에 가도
여전히 제멋대로겠지.
울고 불고 짜고 협박하고,
백성을 멋대로 주무르고 농락하겠지. (91.3.21)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온갖 잘못과 부정부패로 나라를 어지럽히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네 국회의원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져 오는 동안 한 번도 탄핵안을 내놓지도 않았고 쫓아내지도 않았습니다.

쫓아냈다면 우리들, 국민이 쫓아냈습니다. 국회의원 자신들 권력과 잇속을 챙기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앞장서면서 '국민을 협박'했으나, 어느 누구도 국민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고 높임말도 쓰지 않습니다.

방송사에서 편파보도를 한다면서 항의하러 간 국회의원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높임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 국회의원은 선거철에만 국민에게 높임말을 씁니다. 우리들 국민은 선거철에만 굽신거리는 그런 국회의원에게 늘 속아 옵니다. 속은 다음에 욕하고, 또 속고 또 욕하고…. 욕할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사람을 잘 가려야지요. 무턱대고 뽑은 다음에 욕만 한다면 똑같은 일이 다시 되풀이될 뿐입니다.

제멋대로 소리치고 협박하고 울고 짜는 국회의원 후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들이 국회의사당에 가서도 제멋대로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4> 옳은 목소리를 기다리며

에밀 졸라는 뒤레퓌스 사건이 터졌을 때 "진실을 땅에 파묻으면 언젠가는 더 큰 힘으로 터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어수선하다며,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몇몇 언론사와 몇몇 정당에서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참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금씩 우리 삶을 아름답고 알뜰하게 가꾸려는 징검다리이기 때문에 어려움도 부딪힌다고 보아요.

"국민에게 나오는 권력"을 "국민에게 빼앗는 권력"으로 여긴 국회의원과 온갖 기득권 세력을 내쫓는 징검돌이기에 나라가 어수선해 보일 수 있지 싶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에서 조금도 어수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쁩니다. 서울 광화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한목소리로 참 민주를 외치는 사람이 뭉치거든요.

지난 열두세 해 동안 묻힌 채 빛을 보지 못한 이오덕 선생님 유고를 만난 뒤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반가움과 짐스러움을 함께 느꼈습니다. 좋은 글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에 반가운 한편,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야말로 이런 목소리를 내며 올곧게 살아야 한다는 짐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잘 살고 싶다면, 아름답게 살고 싶다면 평화와 민주와 하나됨과 평등을 이루며 살자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떤 짐이 있더라도 헤쳐나가야겠지요? 유고를 보내 주신 이정우 선생님(이오덕 선생님 아드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