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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할까? 이른바 'X파일'이 터져나온 이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1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삼성'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X파일로 촉발된 그룹의 위기를 타개할 만한 대책 마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보수언론 중심의 '불법 도청'으로의 여론 전환에도 불구하고, 삼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는 것도 삼성의 고민거리다.

특히 참여연대가 4일 법조와 정부, 언론계를 망라한 삼성의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발표하면서 삼성을 해부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겠다고 하자, 향후 대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의 이같은 위기에 대해 시민 사회단체 등은 이건희 회장의 책임론을 적극 주장하고 있고, 정치권을 비롯해 경제계와 전문가들도 재벌의 지배구조에 대한 제도적 개선 움직임과 삼성의 강도 높은 내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부상하는 이건희 회장 책임론

무엇보다 삼성은 최근 들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 등이 삼성본관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이 회장의 형사처벌 목소리도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도청 테이프에 대한 수사를 진행중인 검찰은 아직 삼성에 대한 수사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일부에선 불법으로 얻은 증거로 수사를 벌이기 힘들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는 현재까지 드러난 단서만으로도 수사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가 내놓은 단서는 검찰의 98년 세풍사건 수사 공소장. 검찰은 당시 이회창 후보의 동생 회성씨에 대한 공소장에 "지난 97년 9월 이회성이 삼성그룹으로부터 신세계 백화점을 통해 수집한 10만원권 수표 1만매 모두 10억원을 교부받는 등..."이라고 적었다.

참여연대 박근용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국가 수사기관이 이회창 후보 진영의 선거자금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나왔다고 밝혀놓은 것"이라며 "이번 안기부 녹취록의 자금 전달 내용도 이 부분과 일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녹취록의 홍석현 전 주미대사와 이학수 구조본부장의 대화 내용을 보면, 홍 전 대사가 이회성씨에게 97년 9월 9일과 10월 6일 사이에 30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이 회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문건에 나와 있다. 또 이회성씨는 세풍사건 재판과정에서 삼성으로부터 60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박 팀장은 "이같은 단서만으로도 검찰은 이 회장에 대해 배임과 횡령 혐의에 대해 수사해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 전달된 돈이 회삿돈일 경우 배임 또는 횡령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또 액수가 50억원을 넘으면, 특정경제가중처벌 규정에 따라 공소시효도 10년으로 늘어난다.

10년 전, 95년의 악몽

▲ 지난달 26일 오전 언론개혁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서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렇다면, 이건희 회장이 법정에 설까. 이 회장은 이미 법정에 섰던 경험이 있다. 지난 95년 검찰은 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후보쪽에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이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었다. 이어 이 회장은 같은해 11월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검사를 원망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금 검찰이 다시 이 회장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선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회삿돈이 정치권에 전달됐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홍 전 대사와 이 본부장 사이에 이 회장이 직접적으로 거론되는 대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본부장은 홍 전 대사에게 "회장님께는 처음에 5억 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경선 선언하고 하면…"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회장님께서 몇가지 방침을 말씀하십디다. 이회창한테서 보내는 것은 여러 사람 하지 말고 홍 사장(홍석현)을 계속 통하라고 하시고… 그 다음 사람(DJ)은 누구를 통하느냐,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으시면서…"라는 발언도 있다.

따라서 이회성씨에 대한 공소장과 재판진술과 녹취록 등을 종합해보면, 이 회장에 대한 배임 또는 횡령에 대한 수사와 처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권에 전달된 돈이 이 회장 개인 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삼성쪽은 그동안 불법정치자금 관련 사건때마다 '총수 개인재산'이라는 논리를 펴왔다. 지난 2003년 대검 중수부가 2002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삼성의 불법정치자금 385억원을 밝혀냈지만, 회삿돈을 규명해내지 못했다.

이학수 본부장은 줄곧 검찰과 법원에서 정치권에 전달된 385억원이 이 회장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회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보지도 못했다. 결국 이 본부장만 형사처벌을 받았고, 정부가 추진중인 8·15 대사면에 이 본부장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정치자금은 항상 개인재산?

▲ 지난달 26일 민주노동당 삼성불법정치자금 및 안기부 불법도청 대책특별위원회가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앞에서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서 이건희 회장 구속을 비롯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삼성은 이 회장 책임론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불법으로 만들어진 도청과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된 녹취록을 신뢰할 수 없다"면서 "이같은 자료만 가지고 고위층에 대해 수사와 사법처리 운운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홍 전 대사와 이 본부장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사실"이라며 "대화 내용이 실제로 실행됐다는 어떤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추론만을 가지고 법적 처리를 말하는 것은 언어 도단"이라고 비판했다.

일부에선 97년 대선 자금에 대한 처벌이 이미 이뤄진 만큼 같은 사안으로 또 다시 처벌받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검찰의 불법 도청테이프에 대한 수사에 맞춰,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도 진행할 방침을 재확인 했다. 이는 곧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고위층에 대한 사법 처리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룹 이미지와 신뢰가 추락하면서 그룹 전반에 걸쳐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점에 대해선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이어 재계 일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삼성의 강도 높은 내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내부 개혁의 목소리

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삼성의 위기는 곧 한국의 위기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 아닌가"라며 "배경이야 어찌됐든 삼성그룹 차원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을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전했다. 그는 '특단의 대책'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S증권의 전자담당 애너리스트는 "임직원 일동의 형식적인 사과문보다 총수가 직접 나서 국민에게 사과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면서 "책임, 투명경영의 실천 차원에서라도 이번 사건의 책임 당사자가 경영일선에 물러나는 모습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진방 교수(인하대 경제학)도 "검찰과 법원 등이 기업의 탈법과 편법적인 사례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정부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삼성 스스로도 보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한 자성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도 "이번 X파일의 본질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직접 개입된 불법정치자금 제공인데도, 진작 본인은 여전히 국민앞에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검찰은 도청 수사 이외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엄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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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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